푸른 논둑 위로 바람결을 따라 도는 노란 바람개비를 따라 사람들의 행렬도 이어졌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3주기를 맞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그립고 애틋한 마음으로 모인 1만5000명의 추모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렀지만 그를 그리워 하는는 이들의 슬픔은 여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둘러보는 추모객들은 그의 인생이 담긴 전시물을 보며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가난 때문에 반장도 하기 싫어했지만 논밭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아버지의 왜소한 등을 보며 '세상을 바꿀 거야'라고 다짐하는 어린 노무현, 군사정권에 강탈당한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를 보며 변호사의 꿈을 꿨던 청년 노무현, 시민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갔던 대통령 노무현은 여전히 애틋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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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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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을 세상을 두 눈에 담았던 부엉이 바위로 오르는 길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불을 붙이지 못한 담배를 꺼내 물어든 중년 남성, 말없이 계단을 오르는 젊은 여성, 그 누구 할 것이 바위에 올랐던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이 떠올리는 듯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섰던 그 자리는 이젠 출입금지 구역이 돼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다.
부산 인제대를 다니는 강지헌(23)씨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많이 말했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깊이 동감한다. 그 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분은 '사람 대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 추도식을 마치고 권양숙 여사, 노건호씨, 문재인 전 문재인재단 이사장이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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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권양숙 여사, 노건호씨와 함께 참배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상주' 역할을 했다.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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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3년, 이 날은 이제는 슬픔은 접어두고 고인을 온전히 보내는 탈상날이다. 하늘도 이를 알듯 햇살은 따가울만큼 강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1년이 지난 날 그리고 2주기에는 마치 고인이 눈물을 쏟아내듯 큰 비가 내렸다.
이날 추도식의 화두 역시 '사람 사는 세상, 민주주의'를 꿈꾼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부엉이바위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공터에서 열린 추모식 '그대 잘 지내시나요'에서 "그의 다 이루지 못한 꿈을 더욱 절박하게 우리들의 갈망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탈상에서 우리는 그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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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혹은 기도하는 듯 손을 모으는 추모객들도 추모식 이름인 '그대 잘 지내시나요'라는 인사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였다. 30명의 시민들은 마지막 순서로 "발자국도 없는 길을 터벅터벅 홀로 걸어간 바보도 있지 않았는가"며 "그의 마지막 발자국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자.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만 더 가자"라는 추모사를 읊었다.
추모식이 끝난 오후 4시경, 시민들은 봉하마을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 초등학생 6학년에 올라가는 딸의 손을 잡고 일산에서 온 장삼현(47)씨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고 비석에 적힌 글귀를 조그맣게 읊조렸다.
장씨는 기자가 말을 걸자 목이 메이는지 허공을 쳐다보며 울음을 삼켰다. 그는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가진 자보다도 가지지 못한 자들의 편에 있으려 했던 점이 그립다. 딸에게도 그 정신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함께 왔다"고 말했다.
▲ 1만5천명(주최측 추산, 연인원)의 시민들이 추도식에 참석했다.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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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도식에 참석한 정연주 전 KBS 사장.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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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딸과 함께 온 한 여성(49)은 "5·18 광주를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게 됐고 정치에 대해 알게 됐다"며 "아직도 2002년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대선이 앞에 있으니 (아무래도 더 넘어서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또 "문재인이나 김두관 같은 이들이 말 그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넘어서야 야권에 대한 실망이 잦아들고 변화가 올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워낙 큰 분이라 다시는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뛰어넘어야 비슷하게라도 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재단에서 묘역을 관리하고 있는 임태성(36)씨는 "3주기는 이제는 놓아주고 싶고 이제는 남겨진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계기가 됐음 한다. 희망을 찾아내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마음을 추스려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산자가 죽은 자를 잊지 못하면 저승에서도 편히 지내지 못한다고 믿는 한국적 정서에 따라 이제는 노 전 대통령을 보내려는 사람들. 그리면서도 이제는 그를 보내고 그를 뛰어넘으려 하는 이 때, 이를 막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정치검찰과 보수언론이 아닐까.
▲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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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입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바람개비'를 만들어 추모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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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몇 일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의 뭉칫돈이 발견된 것 같다고 언론에 흘렀고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보수언론의 칼춤은 다시 시작됐다. 21일에서야 검찰은 "뭉칫돈과 노건평씨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라고 말하며 발을 뺐지만 이미 유족들과 시민들의 가슴은 다시 한 번 미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건호씨는 "3년이면 희미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그분에 대한 애증과 논란은 계속 진행형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며 에둘러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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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양숙 여사가 추도식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추도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 / 묘역 앞에 선 권양숙 여사. ⓒ허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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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온 여성도 "뉴스에서 속보가 뜨는 것을 보고는 '노무현 대통령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겠다'란 생각이 들더라"라고 분노했다. 부산에서 온 강대일(64)씨도 "신문이라는 게 만인에게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오히려 약한 자를 더 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안 본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그리는 마음에 눈시울이 벌개진 이석무(76)씨는 "조중동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해 결국 칼날이 다시 본인에게도 돌아왔다. 조중동이 다시 살아나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있지 않나"라며 안타까워했다.
생전 기득권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를 외쳤던 노 전 대통령을 권력을 잡은 뒤에도 세찬 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이날 이 자리에 모인 시민들도 아직은 다르지 않은 세상에 있다. 그럼에도 '좋은' 바람이 분다면 그건 노 전 대통령이 일으킨 바람, 희망의 바람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논둑에 이어진 바람개비를 보며 다시 희망을 생각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나라, 혹은 이를 넘어선 세상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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