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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3 13:33
정의는 없다
애초에 정의는 없었다.
우리가 애써 외면했다.
네가 나에게 유용할 때
나도 너를 돕겠다는 거래처럼
정의는 철저히
품앗이로 전락해버렸다.
뚜렷하게 객관적이면
이미 효용가치가 없다.
편견만이 확실한 유가증권일 뿐
하지만 그 편견조차도
거래 정지된 신용카드처럼
한도 초과된 정의를
구색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불의에 당할 수밖에 없는
퇴락한 정의의 무덤이다.
한 낱 포장지로 전락한 정의를 조롱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불량품처럼
화려한 불의는 늘 당당해 왔다
버티면 뭐하랴
정의가 질긴 만큼
꺾으려는 유혹도 집요한데
그러고 보면 역사는
간사한 자들의 교묘한 자기변명이다.
정의를 위선으로 매도하고
불의는 불가항력으로 두둔하면서
결국 빛바랜 정의는
기억의 창고 속에 처박힌
무명 화가의 망가진 자화상이다.
그리고 죽은 정의에 대한 전설은
살아남은 불의한 자들이
겨우 생색으로 던져주는
한 조각 선심일 뿐
어쩔 수없이 정의는
불의의 토양일 수밖에 없다.
시: 쉬리 변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