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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전두환은 통합진보당 이석기의 롤 모델

댓글 5 추천 6 리트윗 1 조회 237 2012.05.18 08:26

 

 

1980년에 전두환은 모든 언론을 장악한 상태에서 국민의 피를 제물로 바쳐 정권을 잡았다. 두환이의 신군부는 광주를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아 독재정권의 맥을 잇는 데 성공하였다. 그로부터 22년 후인 2012년 5월 12일에 이석기로 대표되는 당권파는 모든 언론의 스폿 라이트를 받으면서 이제 막 콧수염이 나기 시작한 진보를 아작내면서 이석기와 김재연에게 구캐의원 배지를 달아주었다. 감지덕지한 석기는 진성 당원들의 명예회복이 민주주의의 절차와 진보 세력의 순항에 우선한다고 화답하면서 배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주장한다. 두환이나 석기 둘 다 제 살길을 찾기 위해 국민과 치킨게임을 벌려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그 뻔뻔함에서는 이석기가 아직도 더 분발해야 함을 부정하지 못 하겠다.

 

‘1980년 5월 18일 16시 이후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운동권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까지 닥치는 대로 살상·폭행하는 것을 목격한 광주시민들은 두려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고, 그 결과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까지 거리로 나서 시위에 참여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광주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계엄군은 5월 21일 13시경 전남대와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를 한 후 철수했다. 이 날 저녁 광주광역시 외곽으로 철수한 계엄군은 광주 외곽도로 봉쇄작전을 펼쳤으며, 이 과정에서 차량 통행자나 지역 주민들의 희생이 발생했다. 5월 27일 0시를 기해 계엄군은 상무충정작전을 실시해 무력으로 도청을 점령했다. 열흘에 걸친 광주 민주화 운동 결과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상이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등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위키백과 인용)

 

2012년 5월 12일에 경기 고양 ** ***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제1차 중앙위원회서 단상 위로 진격한 통합당원들은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회의를 중단시키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였다. 당원에 의해서 당원이 구타당하고 당원과 당직자에 의해 대표단이 짓밟히는 개탄스러운 폭력에 (폭력현장 후기 보기: 박봉팔 닷컴) 꼴보수 언론 조·중·동은 환호작약했고 민주시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이석기에게는 당원, 구체적으로는 자신과 한배에 타고 있는 당권파 수족들의 명예가 범진보 세력의 명예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아주 유아적인 수준의 민주주의 보다 더 중요했다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있는 전두환처럼. 앞으로 혹시나 그가 뭔가 반성의 말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더라도 믿지 못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도 난 광주민주화운동의 책임자인 두환이의 말을 믿어줄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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