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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 23:34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산화한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바로 내일이네요.
저에게 5.18은 짧았던 '서울이 봄'이 무너지는 시점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역사상 6.25 다음으로 불행한 기억입니다.
저는 그때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동네에 살았던 현재 통합민주당의 전병헌 의원이 재수 동기였습니다.
아무튼 그때 종로학원에는 광주 출신의 재수생들이 많았고...
저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공부는 뒷전에 밀어둔 채 놀고 먹고 마시기에 바빴습니다.
물론 유신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터질듯 넘쳐났습니다.
'서울의 봄'이 한창일 때도 학원과 서울역 광장을 오가며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물꼬를 튼 '서울의 봄'을 만끽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울의 봄'이 군부 독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뒤이어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에 대한 전두환의 살인 진압작전이 감행되기 며칠 전부터 광주에 대한 소식은 단 하나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와 전주 출신의 친구들은 집에 연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중무장한 군인들이 미국의 묵인 하에 진압작전에 들어가고 며칠이 지나자 모든 상황이 종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의 우리나라 언론과 방송은 광주에 관한 소식을 일절 전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민주화항쟁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들의 국가 전복기도로 왜곡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광주민주화항쟁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건의 절도사건이나 약탈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언론과 방송은 광주를 무법천지의 아수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중심에 지금 KBS의 사장인 김인규와 방통대군이었던 최시중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뉴욕타임즈 같은 외국 언론의 국내 발행판마저 광주 관련 기사가 삭제되거나 검은 색으로 덧칠해져 볼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뉴스나 보도를 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입소문에 의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음에 이르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뿐입니다.
광주와 전주 출신의 친구들은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은 우리들만의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그러다가 광주가 군인들에 의해 진압된지 한 달쯤 지났을까요?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에게 광주 출입이 허용됐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광주로 향했습니다.
헌데 거기서 제가 본 광주란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몇 건물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을 제외하면 모든 건물과 도로가 말끔히 정리돼 있었습니다.
미치 전쟁의 상처를 은페하지 못한 곳에는 높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을뿐 광주는 너무나 조용했고 깨끗했습니다.
완벽한 위장!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죽은 영령들의 외침이 산 자의 머리 위를 떠돌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아예 5.18 항쟁에 대해서 말조차 꺼내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친척 중 죽은 분들과 사라진 이들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갔습니다만 어느 누구에게서도 살아 있는 사람의 활력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웃음에는 삼켜버린 슬픔이 가득했고...
멍한 시선에는 분노마저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숨막힐듯한 분위기가 광주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10대 후반에서 20대 광주 시민들을 만나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가에 의해 발표된 숫자는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광주는 그 자체로 은폐되고 침묵이 강요된 죽음의 도시였습니다.
사상자에 대한 역사의 진실이 무었이던 간에 제가 5.18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본 것은 살아 남았지만 그것을 치욕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치욕과 굴욕감, 터질 듯한 분노를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는 광주 시민들의 표현조차 못하는 슬픔과 회한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이 오면 저는 끝내 방관자일 수밖에 없었던 그 며칠 동안의 광주를 떠올립니다.
동시에 그렇게 많은 국민들을 살해하고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전두환에 대한 살의를 억누르기 위해 심한 고역을 치릅니다.
아직 그날의 상처는 아물지 못했습니다.
아직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가해진 역사의 잔인함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날에도 권력 편에 서서 뉴스와 보도를 왜곡하고 차단시켰던 작자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미치도록 나를 슬프게 하지만...
아직까지도 구천을 떠도는 이름 모를 영령들은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내립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