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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23:51
낮에 낮선 전화 번호가 떴다. 친구 누나다. 이혼, 실패, 위로 그런 이야기들......
그녀석에게 전화를 건다.
'나에게 할 말 없어.' 그녀석 무슨 소리냐며 시치미를 떼고 말을 돌린다. 계속 '나에게 할 말 없어.' 물었다. 한참을 뜸들이더니 법원에 서류 제출하고 버스타고 오는 길이란다. 말문이 열리자 변명을 늘어 놓는다.
열심히 산다는 거 그래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나?
아니 세상은 적당히 약아야만 성공할 수 있어.
기준, 판단 모두가 제 몫의 인생을 사는 것이지만 이녀석 이리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게 마음을 쓰리게 한다. 생계도 어려운 처지 가게는 망했고 집도 급매로 팔아 빛을 갚고 그래도 남은 빛 당장 방 얻을 돈도 없을 만큼 궁핍한 처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담배만 두 세갑 피워 댄다며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살면 된다는 소리를 한다.
도인 같은 소리들이 역겨웠다. 그래서 화를 냈다. 그 놈 위로가 필요한 걸 알지만 화가 났다. 제 인생이 뒤틀린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아서 더 화를 냈다. 귀를 닫고 자기 위로에 빠진 그 녀석 모습이 패 줄만큼 미워서 더 화를 냈다.
'밥이나 꼭 챙겨 먹어 이 새끼야.' 알았다며 이따가 라면이나 끓여 먹겠단다. 담배를 많이 펴서 밥도 안 넘어 간다며 허탈한 웃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녀석 지난 삶을 보면 열심히 산 건 분명한데 늘 궁핍했다. 약지 못해서 미련해서 속길 잘해서 그러면서도 엄한 일들에 고집이 세서 힘들게 사는 것 같다.
도울 길 그게 애매해 졌다.
난 지금 후회한다. 위로가 먼저였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화부터 내고 말은 나의 성급함...
밥은 챙겨 먹었나 확인해 봐야 겠다. 그런데 또 화를 내게 될까봐 갑갑해 진다. 상의 그 걸 해 보고 싶었던 건데 지금 이 녀석은 내가 제 눈에 안들어 있는 것 같아 더 화가 난다.
파산, 의욕상실 가게라도 인수해 다시 기회를 만들고 싶은데 이 녀석 지금 상황은 포기뿐이다. 말도 건네기 힘든 자포자기를 보면서 계속해서 화만 치 솟는다.
그래도 꾹꾹 참고 밥은 쳐 먹었나 확인해 봐야할 것 같다. 안 처먹었다면 낼 찾아 가 강제로라도 입에 쑤셔 박고 와야 겠다. 이 녀석 제 길 제 방식만 버리면 도울 길이 있는데 그 걸 알려 주기가 참 어렵다.
오늘 밤이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