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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2:25
이제는 더 이상 당신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으나 전국운영위가 다시 개최된 지금...
인터넷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민주적 절차마저 지켜지지 않는 진행자로써의 이정희 대표의 모습이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 판단돼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글을 올립니다.
이번의 글이 정치인 이정희 대표에게 드리는 글로써 이것이 마지막이기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한 말씀 드립니다.
박정희의 유신과 죽음, 광주민주화 항쟁과 서울의 봄, 전두환의 10.26과 6.10항쟁을 경험한 사람으로써 하는 말이니 부디 거부하지 마시고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도덕의 정치화와 정치의 도덕화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상기하며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도덕의 정치화는 명확히 이분법적 사고에 빠집니다.
내가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라는 것이지요.
정치라고 하는 것의 자리가 들어설 공간(토론과 타협, 조정과 조화, 다양성의 인정 등)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정치가 도덕화하는 것은 그 반대의 효과를 창출합니다.
언제나 부패의 위험을 갖고 있는 정치가 도덕적 행위들(민주적 절차를 따르는 것, 소수를 배려하는 것, 이익에 눈이 멀지 않는 것, 당내 일정 계파가 당직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 투명성과 정당성, 열린 조직 등)로 이루어지면 정치는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증진이 목적이 됩니다.
제가 보기에 비례대표 부정선거 문제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대해 이정희 대표가 견지하고 있는 관점은 개인적 시각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전형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저는 마치 이정희 대표의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성녀가 되려하는 잔다르크의 변형적 광기를 보게 되며...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과 당원들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모습이란 히틀러의 나치당이 광기 어린 재림을 보는 듯합니다.
이를 테면 내가 옳으니 너희는 그르다라는 도덕의 정치화를 실현하려는 것 같습니다.
진상조사가 잘못 됐으니 예단하지 말며, 설사 문제가 있다 해도 실수의 차원이니 누구의 잘못도 없다,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란, 특히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 하에서 정당의 존재라는 것이 당원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그 당의 지향점과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동의와 선택이 투영된 것입니다.
민주주의 룰과 절차, 보편적 상식을 벗어난 결사조직이라면 그것은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운 KKK단의 행태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투명한 조직논리요?
그 동안의 투쟁과 고난, 희생에 대한 정당성이라고요?
부당하게 비난받는 당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지켜내겠다고요?
지금 이정희 대표가 보여주는 모습이란 종부세를 무력화시킬 때...
한나라당의 의원들이 종부세 때문에 단 한 명의 피해자가 나와도 반드시 그를 지켜내겠다는 억지 춘향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듣지 않으려 마음을 닫으면 충정어린 애정의 말도 악마의 말처럼 들리며...
보지 않으려 마음을 정하면 진실이 코앞에 있어도 온통 거짓으로 보이는 법입니다.
진정성이 있는 정치지도자라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토론과 협상을 통해 목표한 것의 거의 대부분을 이룩해냅니다.
몇 가지 사안에서 진전이 있었고...
일부 오해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단서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이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들입니다.
회의석 상에서 보여지는 이정희 대표의 모습이란 진보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의 말까지 아예 듣지 않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정희 대표는 누군가의 음모가 작동해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가 과장됐고...
그래서 자신이 나서 편파적인 회의 진행이 된다고 해도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만 보여줄 뿐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따라서 이정희 대표에게 제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들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에서 빛나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들로 제 마음을 대신할까 합니다.
먼저 하늘이 아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말부터 인용하겠습니다.
“히브리인 예수는 선과 정의감에 대한 증오, 히브리인의 눈물과 슬픔을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죽음의 동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가 만약 선과 정의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에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그도 사는 것을 배워 대지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웃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이정희 대표가 선과 정의감에 대한 증오, 민주노동당 출신의 당원들의 눈물과 슬픔만 알고 있을 뿐이며...
그것만 대변하고 지키려 합니다.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들 사이에서만 있지 말고 국민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그들의 삶과 생각, 말과 소망을 들어야 합니다.
도덕경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발끝으로 서는 자는 확고하게 설 수 없으며,
보폭이 가장 넓은 걸음으로 걷는 자는 가장 빨리 걸을 수 없다.
하려고 하는 일을 자랑하는 자는 어떤 일에도 성공하지 못하며,
하려던 일을 자랑하는 자는 세월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
이정희 대표님이 민주노동당을 지켜온 당원들의 역사에 대해...
그 피 눈물 나는 고통의 시간들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들이 바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껏 해왔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은 도덕경의 내용과 무엇이 다른지요?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진리의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T.E.로렌스가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견해란 얼마든지 말로 논쟁할 수 있는 문제이며, 확신 또한 수정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투쟁은 오직 비물질적인 논리의 옹호자들이 다른 논리의 옹호자들을 맞서서 저항할 만한 수단이 더 이상 없을 때 비로소 끝날 수 있다.”
이정희 대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민주노동당 출신의 당원들의 견해를 관철시키려는 행위의 모든 것이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의 항복을 받아내기 전에는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자세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이것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로렌스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가 이렇게 나오는 대는 윗글과 같은 심리에서 나오는 것일 뿐 그것이 정의나 진실에 가까운 것도, 비슷한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민주노동당 출신의 당원들의 허울 좋은 우상에 신성을 씌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정희 대표가 비례대표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보고서를 볼 때마다...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 들어와 민주화 투쟁에 보낸 날들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의 판단력은 편향되고 견고해지며, 마침내 스스로 구원자인 신의 위치에 오르려 하는 것입니다.
결국 당신이 원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출신의 당원들로 당을 재편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에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나가라는 것 아닙니까?
통합민주당을 지지한 사람들과...
지금도 사회의 모든 곳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이번 사안에서 아예 배제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정희 대표가 하는 행위의 모든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류가 수없이 많은 희생을 통해 이룩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이며 제도적인 가면을 쓴 채 오직 자신의 견해만을 달성시키겠다는 아집과 편견만이 보일 뿐입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그렇게 해서 통합진보당을 장악해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당신의 고집 때문에 수많은 시국현안들이 묻혀버리고 있고...
국민들은 이 짜증나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자신이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어쩔 수 없이 듣고 보고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상하시렵니까?
조중동 프레임이요?
원래 그런 놈들 아닙니까?
정치적 음모라고요?
당신이 지금 있는 곳이 정치의 현장 아닙니까?
정보통신 사업을 해본 저로써는 프로그램 소스니 로그 기록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부실한 변명인지를 모르지 않습니다.
통합진보당 투표 시스템이 소스를 오픈하지 않는 애플의 폐쇄적 코드라도 됩니까?
모든 프로그램 개발자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한 소스 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만 받아내면 진실은 명백히 드러납니다.
로그 기록은 왜 또 있답니까?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기술적으로 봐도 너무 어이없는 말들을 하고 계시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은 그만하시죠.
변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없이 수정하는 프로그램은 이 세상의 모든 프로그램의 보편적 한계입니다.
프로그램을 짤 때 변수의 수를 제한하는 것도 프로그램이 무거워지는 것을 막고자 함인데, 거기서 오류가 발생하고, 그것은 IT 업계에선 기초적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정희 대표님, 이제 구구한 변명으로 사태를 호도하지 마시고...
진보의 가치와 철학을 실천하고 그 영역을 넓히려고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역사의 죄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내려오시죠.
대다수 국민들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이 힘겨운 하루하루로........
P.S. 오늘 문재인 이사장님의 공동정부 구상도 가능하다는 기사를 읽고 역시!!!!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꼭 그렇게 돼서 정권을 되찾아 노무현 대통령 때 완성하지 못한 4대 개혁 입법을 통과시켰으면 합니다.
오늘 아고라에 늙은노령으로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