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home > 노무현광장 > 보기

사냥의 목적

댓글 2 추천 0 리트윗 0 조회 88 2012.05.11 10:16

사냥의 목적은 잡는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죽여서 잡느냐와 생포다. 죽여서 잡는 건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고 생포는 저장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녀사냥도 사냥의 본질은 같다. 죽이고 살리는 차이는 사냥감의 용도가 결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를 고민해 보자.

 

고사성어 "어부지리"를 보고 있다. 사냥의 목적은 포획이지만 위험을 최소화한 포획이다. 위험에 직면 했을 때 무리하게 포획하려하면 생명을 담보해야 한다. 대등한 힘겨루기는 "어부지리"처럼 공멸을 뜻할 뿐 명분이 아니다. 팽팽한 신경전이 곧 대등한 힘겨루기다. 양 측 힘이 소진하면 수확을 얻는 자는 따로 있다. 

 

두 진영이 사냥 중이다. 죽이려는 목적, 살려는 목적, 길들이려는 목적 복잡하고 다양한 의도들이 여전히 팽팽한 지금 양 측의 사냥은 범위를 벗어 나 생존의 기로에 놓여진 "어부지리"가 되었다.

 

부정은 나쁘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제거를 목적하면 그게 더 나쁘다. 이미 정화의 차원은 넘어 선 듯 보인다. 책임론이 갖는 의미 또한 무색해 졌다. 묘책은 없고 점입가경이다.

 

다시 사냥이다. 생포는 가두어 기르는 의미도 있지만 반려의 의미도 있다. 지금 이 세상의 사냥꾼들은 반려를 고민할 때다. 상생 공존 이 것을 배제한 원칙 상식의 적용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반려의 기본은 길들임이다. 폭력의 길들임 애정의 길들임 이 차이를 겪고 있다. 

 

인정하고 배려할 때 신뢰의 길들임이 가능하다. 반려를 목적한 사냥이었다. 폭력은 반려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강한 폭력의 길들임은 저항을 부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잘못은 인정하고 상대는 배려하고 공존하자며 허물을 덮을 때 해법이 드러난다.

 

아비는 결코 제 자식의 과를 크게 꺼내 놓고 성토하지 않는다. 잘못은 알되 자식이 겪을 고초를 최소화 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방어를 펼치는 모습을 두고 원칙이나 상식 같은 것을 가져다 붙이지 않으면 좋겠다.

 

원칙과 상식보다 우선한 본능이므로 인정하고 배려하며 공존을 논하는 것이 살 길이다. 

목록

twitter facebook 소셜 계정을 연동하시면 활성화된 SNS에 글이 동시 등록됩니다.

0/140 등록
소셜댓글
머야바보야 sokt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