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5
0
조회 179
2012.05.10 12:23
"고객은 왕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고객은 항상 옳다!" 이것도 많이 들어본 말이다. 정보의 쓰나미에 네이버 전성시대다. 정보는 넘치고, 여론은 항상 진리다. 위키디피아로 대변되는 인터넷의 직접참여가 포률리즘의 전형이 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사생아인 댓글이 지배하고, 다수가 정의고 소수는 언제나 진리가 아니다. 이제 바야흐로 무작위의 대중들이 진리를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 무한한 삼성의 돈이 진리고, 막강한 조중동의 여론도 진리다.
이제 진리는 대중들이 결정한다. 정보를 전달하는 창구를 장악하고, 조중동과 진보라는 한경오도 어쩔 수 없다. 대중들의 시선에 영합하여 그들의 가치인 자본을 살찌운다. 진리와 대중사이를 가로막는 언론이 그래서 중요하다. 막히느냐 뚫느냐다. 막히면 독재고 뚫으면 민주주의다. 뚫었다고 민주주의는 아니다. 극단의 비극이 파시즘이자 일본 군국주의다. 쏠림은 언제나 희비극의 쌍곡선이었다.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지금의 통합진보당 이정희에 대한 비판이 과연 합당한가?
이정희와 맥거핀 효과
문명이 멸망하기 전 전조가 있다. 마야문명과 앙코르와트가 하루에 무너진 것이 아니다. 징조는 있었고 대응은 "희생양"이었다. 사회적 기반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희생양으로 시스템을 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멸망에 대한 기대를 자위했다. 서구의 역사도 희생양으로 비켜가기를 희망했다. "마녀사냥"이다. 중세 신들의 시대에 소빙하기를 거쳤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후변화로 농업생산이 저조하자 그들은 희생양을 찾았다. 마녀사냥이다. 마녀는 항상 약자인 여자였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도 마녀사냥이 진행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종교적 이유라고 하지만 가뭄으로 농산물 생산이 부족하면 급격하게 마녀사냥이 늘어난다. 현재 아프리카 마녀사냥의 특징이 있다. 이들은 나이가 많은 여자라는 특징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궁핍한 시대에 그들은 생산능력이 저하된 여성을 심판하여 처형한다. 해결 방법은 날씨와 연동하여 대출을 늘인다. 가뭄에 농산물의 수확이 저조하면 대출로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면 "마녀사냥"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정희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다. 적정선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정희와 이석기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야하나. 시스템의 문제인지 이정희의 문제인지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시스템의 문제라면 이정희가 책임을 지더라도 해결난망이다. 마녀사냥의 전형적 형태다. 소고기 수입에 책임을 지고 이명박 정부의 농수산부 장관인 정운천이 물러났다. 바뀌었는가 묻고 싶다. 시스템은 오히려 강화되고 공고해졌다. 마녀사냥이 전부도 아니고 해결방법도 아니다란 것이다. 이정희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있다. 맥거핀 효과처럼..
부족한 정보
아직 명확한 정보가 부족하다. 그리고 다수의 부정선거가 있는 것은 명확하다. 공개가 필요하다. 이미 선거 전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은 선거 후에 정리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야권연대를 강행하고 진행했다. 이것은 큰 실수다. 문제를 키웠다. 통합진보당의 문제만 아니라 민주통합당과도 연계된다.
당권파로 대변되는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과도한 시선도 부담이다. 이슈의 확대만 있지 정확한 소스도 없다. 마녀사냥의 복사판이다. 그들이 실정법을 위반하면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내전의 상태에 진행된다. NL과 PD의 해묵은 갈등도 노출된다. 당내 주도권 싸움이 엿보인다. 적게는 민노파, 진보신당파, 참여당파의 당권경쟁까지 더해졌다. 목표는 분명하지만 속내는 살수를 감추고 있다.
이미 선거 기간 중에 "참여당파"에서 지도부가 합의한 사항이 흘러나왔다. 유시민 참여당 지지사이트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4.11총선이 끝난 후, 부산시의원인 이청호가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함의가 있는 대목이다. 지도부가 확약한 사실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되었는가. 내부적 합의도 없는 공당의 형태가 아니다. 부정선거에 대한 당내경선은 어디까지나 내부문제다. 부정선거를 실행한 당원들의 익숙한 행태가 문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내부적 합으로 정제할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이들이 이제는 종북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비당권파의 목적이 어딘지 가늠할 수 있는 이유다. 진보신당파와 참여당파는 부정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묵과하지 않았는가. 경기 단원갑의 문제는 이미 경선 중에서 불거졌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전체 계파는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보의 완전한 공개로 의심을 제거해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정희는 마녀다. 작금의 상황이 마녀로 몰리고 있다. 조중동과 한경오에 진보신당파와 참여당파도 가세했다. 이정희가 과연 마녀인가. 이정희가 마녀라면 화형대에 올려라. 이정희가 도둑이면 도둑의 죄를 물어야 한다. 이정희가 강도라면 강도의 죄를 물어야 한다. 이정희가 살인을 했다면 살인의 죄를 물어야 한다. 이정희의 범법 행위만큼 죄를 물어야 한다. 진보신당파와 참여당파는 더 가혹한 마녀로 몰고 있다. 이것은 진보세력에게 큰 상처가 될 것이다.
누구든 죄 없는 자는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진보신당파와 참여당파는 죄가 없는가. 공범이 아닌가. 당신들은 이정희가 지은 죄만큼 만 돌로 쳐라. 사퇴라는 강수로 해결의 실마리마져 놓아버린 당신들의 욕심이 과하다고 느낀다. 보수든 진보든 문제는 항상 일어난다. 문제는 해결이 중요하다. 동네방네 방방뛰어다니며 고함칠 필요가 있는가. 책임은 문제만큼 지면 된다. 민주주의의 절대 법칙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오히려 이것도 가혹하다. 대한민국의 법률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정희가 이룩한 성과가 있다. 진보의 저변을 넓혔다. 진보도 유연하구나 하는 대중의 기대가 있었다. 이제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정치노선에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묻자. 통합진보당의 내부정리가 필요하다. 설마 이정희가 그 모든 부정의 짓거리를 했다고 믿는 것이 아니지.
에필로그..전쟁은 항상 있었다. 외부의 적이든 내부의 적이든 대중들을 단결시키는 촉매제였다. 독재자들은 이런 상태를 잘 이용했다. 대중들의 공포심을 이용한 수단이었다. 지역감정의 배경은 전쟁이다. 외부의 적을 향하는 전쟁은 오히려 치유가 빨랐다. 가까이로는 베트남전, 1차대전, 2차대전이었다. 지금 이들 전쟁의 당사자들을 보면 언제 전쟁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전은 아주 위험하다. 상처가 더 오래간다. 미국 남북전쟁의 결과로 10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남부와 북부의 정치성향은 다르다. 남부는 공화당 북부는 민주당을 다수 지지한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상처가 더 곪아터진다.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아직도 앙숙이다. 한국의 남과 북도 내전으로 아직도 가까이 하지 못 한다. 일본의 오사카(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쿄(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그렇다. 통합진보당은 내전을 멈춰야 한다.
삶이란 장기적으로 가변적 편차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