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
0
조회 111
2012.05.09 12:45
[취재파일] 통합진보당 '막가는' 폭로전
5월 8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이른바 '진상조사위원회와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인 이정희 공동대표 측에서 마련한 것으로, 당권파 당원들 3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앞서 이 대표 측은 당사자인 진상조사위에 참석을 요구했지만, 비당권파가 주축이 된 진상조사위는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지난 4일 오후부터 '무박 2일'로 진행된 통합진보당 전국 운영위에서 이미 10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고, 이번에도 '소모적인 설전'만 거듭될 뿐이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 이정희 대표, '비공개 대표단 합의' 공개
사전에 배포한 공청회 자료집을 통해 이정희 대표는 "이번 사태의 근원은 3월 18일 비례대표 경선결과 개표부터 3월 21일 결과 공고까지 기간 동안, 대표단이 정치적 해결이라는 명분으로 당 선관위의 독립적 의사 결정을 방해한 데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정희 대표가 밝힌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3월 18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이 종료된 뒤 19일부터 주로 경북 지역 현장 투표에서 선거인 명부 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오옥만 후보(국민참여당 출신) 측에서 윤금순 후보(민주노동당 출신 비당권파) 측을 상대로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 중앙선관위는 오옥만 후보 측 이의를 받아들여 일부 투표함을 무효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는 투표함을 무효 처리하더라도 윤금순 후보(비례대표 1번)와 오옥만 후보(비례대표 9번)의 순번이 바뀌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대표단이 선관위의 결과 공고를 미뤄 달라고 요청한 뒤 정치적 해결을 도모했다는 것입니다. 대표단은 이의 제기가 계속되거나 자칫 검찰 고발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대표단이 직접 나서 오옥만 후보 측에게 "적어도 비례 10번까지는 무난히 당선될 것이니 결국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해 4.11 총선이 끝난 직후 진상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이정희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당시 대표단이 비공개로 합의한 내용을 공개한 것입니다. 비당권파인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도 이번 사태의 공동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 이정희 대표 "대표단이 비례대표 순위 뒤바꿔"
이정희 대표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영희 비례대표 후보(민주노총 출신)와 노항래 후보(국민참여당 출신) 관련 건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대표단이 민주노총과의 관계 때문에 노항래 후보에게 양보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이정희 대표의 '고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비례대표 경선 당시 거제 지역 투표소에서 선거관리인의 서명이 통째로 누락됐습니다. 당 선관위는 규정에 따라 투표함 전체를 무효 처리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영희 후보의 표가 170여표 나왔기 때문에, 이 투표함을 유효 처리하면 이영희 후보가 비례 8번이 되고, 무효 처리하면 노항래 후보가 8번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영희 후보는 "당이 선거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왜 후보에게 지우냐"고 이의를 제기했고, 노항래 후보가 '원래 8번이지만 양보해 10번을 배정받았다'는 내용을 공고하는 것을 전제로 관련자들이 합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네명의 공동대표(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가 이 일에 실질적으로 관여해 당사자들을 설득하거나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실행하게 했다고 이정희 대표는 밝혔습니다. 이 대표는 "유시민 대표의 자필로 함께 결정문안을 마련했고 선관위에 전달해 그대로 발표하도록 했다"는 내용도 공개했습니다. 이정희 대표는 공청회 모두 발언을 통해 "대표단이 두 후보의 순위를 뒤바꿨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대표단이 나서 당원들의 투표 결과를 무시했고 개별 후보에게 희생을 강요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정희 대표는 "두 경우 모두 매우 잘못된 결정이며 행동이었다"고 참회했습니다. 이어 자신을 당의 윤리위원회 격인 당기위원회에 회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정희 대표가 당기위원회에 회부된다면 비당권파인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대표도 함께 회부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당권파 "어디 한 번 해볼까요?"
공교롭게도 이정희 대표가 거론한 사례들에선 모두 비당권파 후보들만 연루돼 있습니다. 당연히 비당권파 측에선 "이번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대해 당권파의 책임이 가장 큰 데도 '물귀신 작전'을 펴고 있다", "자신들이 더 불리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앞서 유시민 대표는 지난 '무박 2일 운영위'에서 이정희 대표에게 "비례대표 후보 조정 과정에서 대표단 사이에 오간 말을 다 얘기할까요?", "비공개 회의록을 찾아와서 한 번 해볼까요?"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에 맞서 비당권파는 당권파의 최대 약점으로 꼽혀온 '유령 당원' 문제를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5월 7일 열린 대표단 회의에서 유시민 대표는 "모든 문제의 핵심은 우리 당의 당원 명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데 있다"며 '유령 당원' 문제를 공개적으로 끄집어냈습니다. 당원 명부에 등재된 사람들이 실제 당원인지 즉각 전수 조사에 나서자고 촉구했습니다.
지난해 말 통합 당시 당비를 내는 당원은 민주노동당 출신 3만 5000여명, 국민참여당 출신 8700여명, 진보신당 탈당파 1000여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계파별로 당원을 경쟁적으로 늘려왔고 특히 민주노동당 출신 중에 유령 당원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은 이처럼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입니다. 당권파, 비당권파 모두 "탈당, 분당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좀처럼 갈등이 봉합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최종편집 : 2012-05-09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