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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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22:56
경계로부터 시작된 반목이 시작이다.
억울한 분노가 비극을 해소 할 수 없다.
여유를 잊은 그 날의 아픔 뒤로 삼년이 흘렀고 여전히 분노만 남아 조바심을 쉽게 내려 놓지 못한다.
대상을 겨냥한 분노가 아니었다.
우리끼리의 분노와 반목일 뿐이었다.
여전히 습관으로 남아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하지 못할 때 그의 존재마저 잊힐까 두렵다.
그릇은 노무현이고 담긴 것들은 잡탕이다.
맛을 내는 건 솜씨인데 누구의 솜씨가 맛을 내 줄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제 맛만 고집하는 망해가는 가게를 붙잡고 문제를 보지 않고 손님을 탓한다.
제 생각에 갇혀 문이 좁다.
이 좁은 문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으니 불편했을 거란 생각도 해야 하는데
철학 같은 애매한 기준들은 사람을 붙잡는 시도보다 맹목의 그 분들에개만 꽂혀 있다.
몸과 마음을 받쳐 충성을 다할 이들은 주류다.
부탁도 별다른 접근의 방법도 필요 없이 가만히만 있어도 알아서 따라주는 그 분들이 있어 세상 민심을 오해한다.
모집을 필요로 하지 않는 행위 그 것은 곧 참여를 거부한 독선과 같은데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아직 있어 둔하기만 하다.
왜?
묵묵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이 안스러울까?
관심이 살아 있을 때 곁을 서성였지만 관심이 죽고 나니 그간의 내 모습은 허사가 된다.
이렇게 저렇게 사람이 떠나고 나면 아쉬울 날이 있을 게다.
어쩌면 그런 날이 내일 일 수도 있다.
변하는 민심이 곧 내 마음인 것을 알아 조심하고 신중하고 다정하면 좋을텐데...
그만 아쉬워 하는 게 서로의 신상에 좋을 일 같다.
마음에서 하나를 지우려하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 되고 갑자기 아파진다.
이런 새상에서 부대껴 온 게 아프고 싶어서가 아니었는데 하나를 지우려하니 아픔만 남는다.
하루만 슬프고 내일은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