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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8:42
1970년대 한국은 유신체제가 지속되면서 정권에 대한 누적된 불신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게 표출되던 때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1974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전국민주청년학생 총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는 이 사태에 대처방안을 찾던 바, 각 교구의 사제들은 효율적인 반정부운동과 그것을 전담할 기구가 필요함을 공감했다. 이에 1차로 같은 해 8월 10일 서울대교구에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고 8월 26일 인천교구 사제단이 주체가 되어 첫 전국사제단의 입장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사제단이 출범한 것은 9월 23일 원주교구 원동성당의 세미나에서였다. 이때 약 300여 명의 사제들이 참석하여 전국 규모의 사제단을 결성했으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으로 명칭을 정했다. 다음날 사제단은 기도회를 갖고 사제단의 출범을 발표했으며 9월 26일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도회를 갖고 제1차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여 국내외에 사제단의 출범을 알렸다.
이후 사제단은 여러 차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수십 차례의 기도회와 평화적 가두시위를 벌임으로써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비민주적 정치상황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1987년 4·13호헌조치에 사제단이 단식으로써 강력한 저항을 표시하고 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하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다시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제단은 가톨릭 내 보수적 성향을 지닌 세력들에 의해 현실정치에 가톨릭이 깊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저지를 받기도 했다. 1987년 문규현 신부의 방북사건을 계기로 사제단은 '민족통일과 화해, 민족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북한동포돕기운동, 북한선교활동 등의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교회의 쇄신에도 힘쓰고 있다.
*종교라는게 현실과 동떨어져서 ~ 혼자서만 수행하고 ~ 혼자서만 평화롭게 사는게
그게 종교일까요? 그렇다면 종교로 인한 세상의 전쟁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아픔에 종교인으로서 죄책감이 없는 것일까요?
사회의 현실과 아픔에 가장먼저 눈뜨고 아파해야 사람들이 종교인이지요.
깊이 개입하고 , 약자들을 보듬고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는게 그게 종교인의 올바른 태도지요.
정의구현 사제단분들 업어드려도 시원찮은 판국에 ..
정말 존경하고 존경하는 사제분들,,, 언제쯤 세상이 달라지려나요...
정말 맘아픈 현실입니다.
그냥 궁금해서 사제단 홈피 들어가봤어요^^~
왼쪽에 화면이 계속 바뀝니다....
한국현대사가 그냥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저는 그시대에 태어났을때 너무 어렸거나 태어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가슴이 뭉클합니다.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
전쟁중단 파병반대미사
김지하시인 석방
인혁당사건(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아파하는 사건이랍니다 ㅠㅠㅠ 내부모님은 아니시지만)
시국기도회미사
지학순 주교 석방 환영미사
호헌철폐와 민주개헌갈구(호헌철폐가 무슨뜻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