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과 관련한 일을 시작한지 올해로 21년째다. 어제 성남으로 출장 간 길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6호 장효순 대목장을 만났다. 1993년 성남 남한산성 망월사 복원공사 때 처음 만났으니 우리 인연도 20여년을 헤아린다. 술을 전혀 하지 못하시는 대목장을 모시고 점심 후 전통 찻집에서 대화를 이었다. 가끔 공주의 전통문화학교에 강의를 나가시고,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문화재청의 감수 요청에 응하고, 연세가 74세가 되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 현역으로 땀을 흘리고 있다는 말끝에 나무를 대하는 자신의 55년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좋은 목수는 절을 지을 나무를 고를 때 집의 남쪽에 쓰일 소나무는 산의 남쪽에서 자란 것을 사용하고, 집의 북쪽에 쓰일 나무는 산의 북쪽에서 자란 나무를 벌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이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이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문득, 좋아하는 문장가 김훈의 에세이 한 구절이 생각났다. 진도를 갔다가 해금(시나위)을 연주하는 악사의 연주를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떡 주무르듯이 해금으로 소리를 주무르는 악사를 보고 감탄하며 "아, 소리를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복된가, 소리를 손으로 주무르는 것이다! 그래서 해금의 소리는 그 소리를 주무르는 인간의 몸의 소리처럼 들린다. 몸이 겪어내는 온갖 시간감과 몸속에서 솟고 또 잦는 리듬이 그의 손바닥으로 퍼지고 그 손바닥이 소리를 주물러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소리를 주무를 때, 그의 손바닥에 와 닿는 떨림은 다시 그의 생명 속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나는 해금 악사가 소리를 손바닥으로 반죽해내듯이 내 문장을 주물러낼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의 힘이 모두 빠진 날 나는 해금 연주를 듣는다."고 탄식한 바로 그 구절 말이다.
진정한 목수도 해금 연주자에 다름 아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기가 막힌 설계도면이 존재한다. 그의 전 실존이 생생히 녹아있는 경험과 직관력이 생동하는 작업장에는 그의 생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의 소나무에 그대로 체현되는 손과 팔의 움직임만 존재한다. 작업 중인 전통 목수를 바라보면 나무와 그의 손과 대패는 그의 머리와 하나다. 그의 손과 대패질을 통해 아람드리 소나무는 비로소 우리 인간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김훈이 그려낸 해금 연주자가 소리를 손으로 떡 주무르듯 주무를 때, 목수 역시 우리가 기거하는 한옥을 오직 손과 대패로 주무르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자신의 삶에 깊숙히 뿌리내린 업과 삶과 일상이 한치의 흐트림도 없이 한 몸인 사람을 존경한다. 한 인간이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그대로 삶에 뿌리내려 일관성을 가지는 것. 그런 사람을 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렇다! 노무현.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