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대통령의 3주기 추모전시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평일인 지난 2일에도 그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를 방문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자전거를 타고 봉하마을을 한 바퀴 돌 듯, 전시회를 직접 관람해 보고 관람객들과 '동네사람'들 마냥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전시회 입구에 서면 강풀의 일러스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빗 속에 밀짚모자가 하나 떠 있고 모자를 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잘 지내시나요" "모르겠어요. 왜 비가 오면 당신 생각이 나는지"라는 말로 故 노무현 대통령의 빈자리를 드러내는 그림이다. 그 벽을 지나 '노무현이 꿈꾼 나라' 전시실로 이동하게 된다. 전시는 크게 ‘인간 노무현’ ‘노무현이 꿈꾼 나라’ '미공개 사진전' '봉하 영상' '특별 영상' '참여 코너'의 여섯 파트로 나뉘어 진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1946년 경남 김해시 *** ***에서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 씨와 어머니 이순례 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다"라는 글로 '인간 노무현' 전시가 시작된다. 노대통령의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졸업앨범, 그리고 권양숙 여사와 '돈 한푼 안들이고' 연애한 이야기까지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가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여느 전시와 달리 동선의 움직임이 매우 느리다. 진득하게 서서 노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꼼꼼하게 읽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이고 진영이면 단감이 유명한데 여기서 태어나셨구나" 중년 여성 관람객들이 대화를 나눈다. 연대기 사이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들도 많이 나온다.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 등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 중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름이 특이해서 밝히진 않겠다는 한 여성 관람객(29)은 "살아계실 때는 지지했던 것도 아니었고 비판도 많이했다. 그러나 살면서, 일하면서, 세금내면서 알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권빈씨(24)는 "어제 들렀는데 개관식 때문에 오늘 다시 오게 됐다"며 "살아계실 때 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아주 적극적인 지지자는 아니었다. 탄핵이라던가. 여러가지 정치적으로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아서 떠올리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는 노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여러가지 정책들에 대한 어록들과 자료들이 등장한다. '민주주의' 부분에는 노 전 대통령 마지막 신년인사회였던 2008년 1월 3일 "민주주의가 많이 아쉽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왜 일찍 만족하고 일찍 포기해 버릴까. 이런 답답함이 있습니다"라고 토로한 심경을 소개했고 복지에 대해선 "단순히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단순한 소모적 지출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는 발언을 정리해 생전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천안에서 온 황지령씨(45)는 "살아계셨을 때 부터 지지는 했지만 몇 번 찾아뵙지는 못했다"며 "노 대통령의 글들,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더 없는 진실성이 느껴진다. 적어도 일신의 영달을 생각하며 정치를 하지는 않았을 거란 확신이 든다. 오로지 우리나라의 발전만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전해진다. 가장 존경한다"며 "그러니까 평일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온 것 아니겠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외에도 경제, 외교, 대북 정책 등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업적과 정치 철학에 대해 정리되어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피규어와 함께 전시된 "방북 기념품"들. 북한 문화성에서 남북이 화해 국면을 맞이하던 2007년 10월 3일 노 전 대통령 부부내외에게 보낸 '아리랑' 공연 초대장과 당시 노동신문에 실린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 그리고 방북당시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의 여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쯤 발걸음을 옮기면 눈물을 닦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전시에 다달아서는 오열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한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손글씨를 사진으로 담아가는 이들이 많다. 또 노 전 대통령 생전 봉하마을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오시면 제가 안내하겠다"고 환하게 웃는 영상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들어 놓는다.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가감없이 볼 수 있는 '미공개 사진전' 코너.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 '소 집무실'에서의 노대통령의 모습과 대통령 관저 이발소에서의 모습은 물론 손녀 서은이와 함께한 '할아버지 노무현'의 모습 그리고 임기 중 밀양 맛집이나 해군휴양시설에서 휴식을 즐기던 '민간인 노무현'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또 "사랑하는 할매 할배"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사인하고 손녀들의 이름을 각각 적어놓은 손녀들의 장화 세켤레도 '밀짚모자'와 함께 전시돼 있어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 한 쪽 벽면에 빼곡히 들어찬 '방문객들의 메시지'가 있다. "그립습니다-이재정" "보고싶어요. 사랑합니다- 이해미"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꿈 꾼 나라 꼭 이루겠습니다-형규,민규 아빠" 등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쪽지'들이 한 쪽 벽 가득하다. 노 전 대통령의 살아생전 '말씀'을 '캘리그래프'로 손수 엽서에 적어주는 서비스도 시행한다. "팔이 아플까 미안해하지 마셔요. 저는 마음으로 씁니다"라는 담당자의 엽서도 눈에 띈다. 이 밖에도 판화 등을 나눠 주는 서비스와 노 전 대통령 관련 출판물, 강풀의 일러스트로 꾸며진 휴대폰 케이스, 뱃지, 티셔츠 등을 파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공연 기획에 참여한 성원호 노무현 재단 회원사업부 부장은 "4월28일 오픈 이후 현재(2일)까지 적어도 1만여명은 방문했을 것"이라며 "평일인 오늘도 이렇게 북적이는데 주말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저 바깥까지 줄이 늘어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차별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사동에서 열린 지난 2주기 전시회에는 노대통령의 선거인생을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13대 총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공보물과 벽보 등을 모두 정리해 한 정치인의 선거인생을 정리하는 최초의 컨셉을 시도했다"라며 "반면 이번 전시는 참여정부의 정책을 7개 파트로 나누어 정리하고 또 그 분의 인생을 각종 동영상, 사진 자료를 활용해 연대기로 엮는 등 한 인간이자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의 모습을 정리해보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어떤 전시보다도 관람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며 "연대기나 사진 등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고 영상도 오래 본다. 캘리 같은 기념품이나 메시지 적기 등 체험적인 부분들도 참여율이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전시회 관람은 무료다.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친구들과 전시를 찾았다는 김은숙씨(52)는 "문재인 의원 카페 활동을 하고 있다. 살아계셨을 때 노사모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 깊이 지지했다"며 "전시를 보는 내내 슬픔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밖에 보내드릴 수 없었을까 하는 분노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전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거하시기 전 봉하마을에서 농사짓는 모습"이라며 "정치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저게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이예빈씨(26)는 "전시를 보는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렇게 일반인과 가까운 모습의 분, 저렇게 비주류인 분이 대통령이 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노준희씨(75)는 "별로 좋아하는 사람 아니다. 근데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 와 봤다"며 "아 이 사람이 이렇게 살았구나. 일생이 이랬구나, 정치가 이랬구나 이렇게 한 번 되돌아 보고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군대에서 잠시 휴가 나온 아들과 전시를 찾았다는 서울 양천구 목동 거주 김철순씨(50대)는 "노사모 회원은 아니지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사랑하는 분"이라며 "서거시 광화문도 가고 해마다 봉하마을도 한차례씩 방문하고 있다. 작년 인사동 전시때도 갔었다"고 말했다. 또 "미공개 사진 등 노 전 대통령의 모습들을 보니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며 "이승엔 안계시지만 그 분의 정신, 철학 등은 가시고 나니 더 크게 마음에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해서 현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고 도를 넘어 비판해서는 안된다. 현 정권도 분명 가치관은 다를지언정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 다를 뿐"이라며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싸우지 말고 서로의 철학을 이해해주고 귀담아 듣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살아생전 소홀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짠하다. 짠하다는 말 외에 잘 설명을 못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