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8
1
조회 158
2012.05.02 16:48
돌풍이 불고 비가 내렸습니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고,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려, 검은색 큰 우산을 받쳐 들고, 대검찰청 계단을 막 오르는 그를 저는 참 비현실적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저 사람, 방통대군 최시중. 권력의 멘토, 권력의 2인자, 아니 스스로 권력을 만들었다고 자부해 왔을 그의 몰락은, 이상하리만큼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꼿꼿이 허리를 세운 그가 계단을 올라오면서 빗줄기가 파인더 속에서 선연했습니다. 취재를 간 저는 자꾸만 생각이 헛돌아 몇 번인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렙 됐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안성기. 40계단. 우산을 가르는 칼날. 그것은 복수였을까요, 업보였을까요?)
그 잠깐의 혼미함을 깨우며 갑자기 소란이 일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뒤쪽에서 몇 명의 사내들이 “방송장악 몸통 최시중을 구속하라”, “최시중을 구속하고 국정조사 실시하라” 외쳤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피케팅에 당황한 그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가 펴졌습니다. 아니, 그러려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 |
||
▲ 지난 1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한 참가자가 최 전 위원장 탈을 쓰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 4월 30일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연루돼 결국 구속됐다.ⓒ언론노조 |
나름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사건이 처음 보도된 날의 뉴스화면을 보았습니다. 총선이후 갑자기 특정회사의 기자를 집안으로 들이고(그것도 아침에 파자마 차림으로), 뒤이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자상하게, “내가 돈을 받아 대선 여론조사 하는데 썼어”라고 기자에게 설명하듯 말하는 그는, 정말 편안해 보였습니다. 살짝 웃음을 띠우기도 합니다. 언론의 취재공세에 시달리는 사람의 표정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아 이 양반 진즉에 준비하고 있었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웬 걸, 이튿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바꿉니다, “개인적인 용도로 썼다”라고 말입니다. 청와대를 상대로 대선을 거론하며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을 쓰더니 이내 놓아 줍니다. 아무리 권력의 황혼이라지만 MB는 얼마나 식겁했을까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아! 이 사람 정말 치밀하게 계산했구나’라고 말입니다.
검찰과의 힘겨루기(?)도 벌입니다. 알선수재죄의 공소시효를 들기도 하고, 난 데 없이 수술일정도 들이댑니다. 누가 봐도 준비된 수순, 뻔뻔한 버티기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돼야 ‘권력을 누렸다’ 할 만 하겠지요. 아마 구속은 됐어도 우리는 조만간 휠체어를 탄 그를 보게 될 것이고, 추측컨데 MB임기 내에 형집행정지나 병보석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빠져나가겠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대선 전 마무리전략. ‘아, 정말 깔끔하고 대단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한바탕 권력을 해 먹고, 자리를 해 먹고, 돈을 해 먹은 자들의 퇴장이 뻔히 보이는 꼼수여서야 어디 ‘국격’이 바로 서고 ‘공정 사회’가 실현되겠습니까? 수많은 의혹과 악행에도 알선수재 하나로 ‘퉁치고’ 빠져 나가서야 어떻게 정의가 바로 서겠습니까?
무엇보다 온갖 비리를 다 제쳐두더라도 방통대군 최시중 씨의 가장 큰 죄는 이 땅의 방송을 완전히 정권의 통치도구로 전락시킨 일입니다. 그는 임기 중인 공영방송 사장 정연주, 엄기영 씨를 폭력적으로 몰아냈고, 김인규, 김재철, 배석규 씨를 앞세워 낭자한 유혈극을 벌이며 방송을 장악했습니다. 그들은 조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
||
▲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96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