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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7
2012.05.01 19:39
근로자의 날 영화 한편 추천합니다.
제목 - up rising
즐거운 저녁되세요.^*~
존 애브넷 감독
그는 유태인 홀로코스트 쉰들러리스트 로서 전 세계인에게 휴머니티의 심금을 울렸던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를 필적하는 성격으로 업 라이징을 제작 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해 버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치중했다면 제작될수가 없는 영화였다.
업 라이징(봉기) 영화는 국지전적인 유태인의 불운한역사를 주제로 담은 영화였다.
이러한 점을 유추해 보더라도 미국내 유태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음을 느낄수있다.
2차대전중 전세계에 유태인의 박해역사를 알리는 목적의 영화란 입장에서 상업적인 흥행실패를 떠나서 진정한 휴머니즘의 진수영화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존 애브넷감독의 작품에 높은점수를 매겨주고싶은 영화이다.
배경
독일이 2차대전을 일으켜 폴란드를 침략하기전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유태인들의 문화와 삶을 영위하는 대표적인 도시였다.
그때까지 꾸준히 이어져온 유태인의 인구는 이 도시에서 약 35만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인구는 바르샤바거주 인구의 30% 를 차지하는 인구였다.
당시 이러한 유태인 인구의 규모는 지구상에서 미국의 뉴욕시에 거주하는 유태인 인구수 다음가는 2번째의 큰 규모였던것이다.
독일군은 1939년9월29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장악한후에 1940년10월 유태인들에게 그들만의 격리지구 게토(Ghetto)로 이동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유태인들은 1940년11월까지 바르샤바 시내에서 쫓겨나 우리같은 게토 에 갇히는 운명에 처해졌던것이다.
그리고 독일군은 이 격리지역에서 유태인들이 함부로 외부에 나오지 못하게 철저한 통제를 가하였다.
10피트의 담을 2중 적벽돌담을 만들어 올렸으며 그위에는 둥근 철조망을 씌웠다.
유태인들에게는 또하나의 바르샤바 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아우슈비츠로 계속 실려나가기 전의 대기소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차츰 외부에서 전해져 들은 유태인 개스학살의 진상을 알게된후 독일군과 생과사의 저항에 대한 투쟁거점으로 바뀐다.
1943년 4월19일 부터 5월16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격리지구 게토내에서의 28일 동안 벌인 필사적인 항전은 죽음에의 두려움보다 독일군에 대한 분노의 봉기였다.
폴란드 레지스탕스조차 독일군에게 대적못했던 입장과 달리 이들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웠다.
독일군은 처음엔 포격과 화염방사기로 불을 질렀다.
그리고 청음기를 이용하여 지하실 곳곳에 은신해있던 봉기군 거점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동족을 배반하고 은신처를 밀고하는자들의 정보로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한 경우도 상당수가 있었다.
독일군은 나중에 개스호스를 이용하여 지하거점으로 청산개스를 살포하는등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봉기군을 섬멸시켰다.
그러나 독일군의 유태인학살 인종범죄에 대한 이들 봉기군이 보여준 용감했던 저항정신은 폴란드 레지스탕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게토내에서 유태인 봉기군은 독일군에게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유태인의 당하지만 않았던 대단한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봉기군 폭약수송 전달임무를 맡아 토시아 알트먼의 연기를 했던 주인공 리리 소비에스키
영화 딥 임펙트 이후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모데카이의 친구 유태인 청년 안텍역으로 출연했던 데이빗 쉼머
밴드오브 브라더스의 깔끔했던 이미지로 출연하여 이지 중대원들에게 칼끝같이 대했던 소벨대위역 과는 또다른모습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 "파일아이"에서 한글로 "업라이징" 검색하시면 다운로드 하실수 있습니다.
비용 약간 들어가지만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