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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16:16
17대 대선 전후 ‘범죄의 재구성’ | ||||||||||||||||||
[기고] 김종철·언론인(전 연합뉴스 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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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중순에 개봉되어 크게 인기를 얻은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그 작품은 다섯 명의 ‘범죄꾼들’이 한국은행에서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50억 원을 인출한 뒤, 거액을 둘러싸고 벌이는 음모와 협잡,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영화는 완전한 창작이지만, 이 글은 검찰이 언론에 확인해준 사실이나 ‘최시중게이트’ 관련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 단, 건설시행업자한테서 거액을 받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최시중, 그리고 횡령 등 혐의를 시인하고 재판을 받은 파이시티 대표 이정배는 예외이다.(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경칭은 생략한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2005년 11월 24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서는 ‘서울 양재 파이시티’ 개발계획 승인 여부를 두고 다수 위원들이 “엄청난 안이다. 경부고속도로 옆인데다 교통난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면서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그로부터 불과 13일 뒤인 12월 7일, 파이시티의 대규모 점포 용적률을 400% 이하로 하는 안을 도계위에 ‘자문안건’으로 올린다. 도계위 사회자는 ‘교통 문제를 서울시 관련 부서가 보완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하자’면서 회의를 끝낸다. 이명박은 시장 임기를 50일 앞둔 2006년 5월 11일, 전체 연면적 77만5000평방미터에 대규모 점포와 창고, 터미널 등을 허용하는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을 고시한다. 파이시티 쪽은 2007년, ‘양재 파이시티 개발 계획안’을 마련해 투자자를 모집할 때 약 3조30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토지 매입비를 포함한 투자자금 2조3000억 원을 빼더라도 약 1조 원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한다.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2008년 8월 20일에 열린 도계위 회의에서는 현행법상 터미널 같은 유통업무설비에는 지을 수 없는 업무시설을 애초 6.8% 수준에서 23%까지 늘린 건축심의 안건을 두고 적법성과 규모의 적정성 논란이 벌어지지만 업무시설이 전체 면적의 20%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수정안이 전원 합의로 의결된다.
(주)파이시티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방통위원장 최시중은 이정배의 부탁을 받고 각종 청탁행위를 한다. 그는 2011년 11월 23일 방통위 위원장실로 찾아온 이정배가 ‘채권은행 관계자의 지분 요구 등 압박을 막아달라’고 청탁하자 그 자리에서 금융감독원장 권혁세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 민원이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말한다. (주)파이시티는 당시 워크아웃 상태에서 금융감독원에 지분 관련 민원을 넣어둔 상태이다. 최시중의 ‘양아들’인 전 방통위원장 정책보좌역 정용욱이 2007년 대통령선거 직후 파이시티 사업 투자자 모집을 한 것으로 2012년 4월 25일 밝혀진다. 파이시티 사업에 깊이 관여한 ‘A’가 24일 중앙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전 보좌역이 당시 사업을 하는 내 지인을 찾아가 파이시티 사업에 거액을 투자하라고 권유했다’면서 ‘투자 권유를 받은 사람은 여러 명’이라고 말한것이다. 2007년 대선 직후는 이정배가 브로커를 통해 최시중에게 5,6억 원을 건넨 시기(2007~2008년)와 겹친다. 이정배는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인허가 청탁 대가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으로 있던 박영준에게 2008년 1월 24일 아파트 구입 자금으로 10억 원을 건넸다’고 진술한다. 검찰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박영준이 서울시 정무국장을 그만둔 뒤 여러 차례 브로커 이 모를 통해 돈을 건네받았다는 이정배의 진술을 확보한다. 이정배는 최근 검찰의 소환 조사에서 ‘최시중 위원장을 한국갤럽 집무실과 식당 등에서 여러 번 만나 5000만 원에서 1억 원의 현금 뭉치를 건넸다’면서, ‘파이시티 사업의 인허가와 관련된 서울시 등의 중요 심의를 위해 최 전 위원장을 수시로 만났다’고 진술한다. 2012년 4월 24일, (주)파이시티 관계자들은 한겨레 기자를 만나, ‘수십억 원을 상납받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돈줄을 끊자, 곧바로 사업권 자체를 강탈당했다’고 주장한다. 2005년 12월부터 정기적으로 이루어진 상납이 끊기자 오히려 ‘지분을 내놓으라고 협박해왔다’는 것이다. 이 업체 한 관계자는 ‘2008년 회사에 자금난이 닥쳐 상납을 끊자, 최 전 위원장한테 돈 전달을 해왔던 브로커 이 씨를 통해 지분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해왔다’며 ‘지분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후에는 채권은행단 주간사인 우리은행을 통해 우회적으로 압박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결국 업체 대표는 2009년 5월 29일 지분 대신 사업 이익금 800억 원을 넘긴다는 약정서에 어쩔 수 없이 서명한다.
오마이뉴스가 ‘재경 구룡포 향우회’ 임원진 명단을 확인한 결과, 최시중과 박영준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건설브로커 이 아무개는 그 향우회 임원으로 드러났다. 향우회 고문은 최시중과 한 제약회사 부회장이다. 최시중과 박영준이 건설시행업자한테서 61억여 원을 ‘로비자금’으로 받았다는 언론의 보도가 4월 23일에 나온 뒤 최시중은 ‘이 돈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받아 쓴 돈이지 의혹이 제기된 것처럼 인허가 청탁의 대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MB하고 직접 협조는 아니더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이명박을 위해 그 돈을 썼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하루만에 말을 바꾼다. 그는 “돈을 받은 시점 직후가 대선이 다가오는 시점이었기에 얼떨결에 ‘내가 독자적으로 MB 여론조사를 하고 했거든’이라고 말했다면서, ‘이명박 캠프의 정식 여론조사비로 썼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이들 가운데는 ‘그 내용 가운데 범죄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느 대목이냐는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명백히 말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최시중이 인정한 ‘금품 수수’ 말고는 여기 거명된 사람들의 범죄 행위를 ‘특정’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진실은 앞으로 검찰의 수사 과정이나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첫번째 질문, 2005년 11월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다수가 파이시티에 대한 ‘용도 변경’ 특혜를 반대했고, 서울시 교통국장 정순구가 시설 변경을 하면 토지가치가 훨씬 올라간다. 로비 의혹 등의 위험이 있어 ‘애초 화물터미널로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침을 실무 직원들에게 줬다”는데 시장 임기 만료를 50일 앞둔 2006년 5월 11일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을 고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번째 질문, 파이시티 대표 이정배가 우리은행 관계자에게 수십억 원을 뇌물로 주고 무려 1조4000억 원이나 대출을 받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정배를 ‘후원’하던 최시중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금융감독위원장에게 그를 위해 청탁행위를 한 사실을 사정 계통을 통해 보고받은 적이 있는가? 그리고 최시중의 ‘양아들’인 전 방통위원장 정책보좌역 정용욱이 2007년 대선 직후 파이시티 투자자를 모집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는가? 세번째 질문, 2008년 1월 24일,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비서실 총괄팀장이던 박영준이 이정배한테서 아파트 구입비로 10억 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는가? 네번째 질문, 최시중에 대한 ‘상납’이 끊기자 파이시티 시공권이 포스코건설로 넘어가게 된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는가? 그렇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시공비가 걸린 사업이 정부의 면밀한 감독과 이해 없이 대기업으로 이전될 수 있었을까?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검찰이 얼렁뚱땅 불법대선자금에 대한 면죄부 수사를 하려 한다면 이명박 정권과의 전면전에 앞서 모든 것을 걸고 이명박 정권을 비호하는 정치검찰과 먼저 싸울 것’이라면서 ‘검찰은 최시중 씨를 즉각 구속하고 불법대선자금 특별수사팀을 구성해서 범죄 의혹의 몸통인 청와대를 향해 단호한 수사 의지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는 최시중의 금품 수수에 대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예외 없이 책임지고 법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당연히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박근혜의 주장은 이명박 정권과의 결별을 앞당기겠다는 말로 들린다. 결국 ‘최시중게이트’와 관련된 모든 의혹은 6월 5일에 문을 열 19대 국회가 풀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얼마나 성실하고 냉정하게 이 사건을 추궁해서 진실을 밝혀낼 것인지, 새누리당이 야권의 ‘진실 찾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인지 국민들이 준엄하게 지켜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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