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번째 도전하면서 바닥에서 시작해서 바닥에서 선거를 끝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또 낙선했습니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참 먹먹한 가슴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민주통합당 전재수 후보 페이스북에서)
40% 득표 넘은 후보들 접전 펼쳐 낙동강 전투는 끝났다. 새누리당 텃밭에 도전했던 ‘바보 노무현 키즈’는 19대 총선에서도 실패의 역사를 이어갔다. 노무현 키즈는 낙동강벨트를 중심으로 집중 포진했다. 북강서갑은 전재수, 경남 양산은 송인배 후보가 재도전했다. 전 후보는 세번째, 송 후보는 네번째 도전이었다. 사하갑은 해운대기장갑이 지역구던 최인호 후보를 이동 배치했다. 최 후보도 출마수로는 세번째였다. 남구을은 ‘남구지킴이’ 박재호 후보가 세번째 도전에 나섰다.
새 인물도 영입했다. 북강서을에는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형님(노무현 전 대통령을 의미)의 유지를 받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부산진갑에는 김영춘 후보가 서울 지역구를 버리고 고향으로 왔다.
총선 이전인 지난 5일 송인배 민주통합당 경남양산 후보가 한명숙 전 대표와 함께 유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송인배 후보는 “지난 10년간 온갖 수를 다 써봤는데 참 안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17대 총선에서 1102표, 2009년 재·보선때 3299표차로 졌다. 2009년 패배 이후 송 후보는 지역유권자들의 밑바닥을 훑는 전략으로 바꿨다. 2년반 동안 등산모임이라는 등산모임은 다 따라갔고, 온갖 계모임과 동창회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양산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가는 행사에도 다 참석했다. 조직도 없고, 돈도 없는 야당 당협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4999표차로 졌다. 득표율로 보자면 최대였다. 40% 이상 득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 후보에게 “또 나올 것이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간명했다. “이게 운명 아니냐. 운명은 뚫고 나가라고 있는 거다.”
송 후보는 19대 총선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50%에 육박하는 득표를 했더니 조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더란다.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얘기다. 또하나는 양산신도시다. 새 아파트들이 한 동 한 동 들어오면서 3040의 젊은 유권자들이 나날이 유입되고 있다. 19대 총선에서도 아파트가 많은 양주동과 물금읍에서는 이겼다. 그는 “4번 출마했지만 나는 아직 43세”라며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다음 총선까지 지역을 계속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출사표를 던졌던 박재호 후보도 “억울해서 안되겠다. 그냥은 못물러난다”고 말했다. “열받아서 안되겠다”는 말도 했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 서용교 당선자에게 5337표차로 졌다. 2004년 탄핵 당시 김무성 의원에게 패했던 6908표보다 더 미세했다. 서 당선자는 후보등록 직전에 전략공천됐다. 이미 1년반 전부터 골목골목 누비던 박 후보와는 지역 터닦기로 보자면 비교가 안됐다. 하지만 서 당선자 뒤에는 김무성 의원이 있었다.
박 후보는 그러나 활동범위를 올 대선과 2015년 지방선거까지로 한정했다. 그는 “20대 총선에 내가 도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올 대선과 다음 지방선거까지는 지역구 관리를 하겠다”며 “언젠가 봄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영춘·문성근도 지역구활동 계속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리턴매치에서 또 고배를 마신 전재수 후보도 아쉬움이 크다. 골목골목 뿌린 13만장의 명함도 당선증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 후보도 역대 최대인 47.6%를 득표했다. 박 의원과의 표차는 3532표에 불과했다. 18대 맞대결(9893표차)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게 줄었다. 모든 것을 퍼부었던 만큼 패배의 쓰라림은 컸다. 그러나 전 후보도 재도전의 뜻을 밝혔다. 전 후보는 “내가 부족했던 탓”이라며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확인한 만큼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문대성 당선자와 격전을 벌였던 최인호 후보는 “운명이다. 어떻게 피해갈 수 있겠느냐”며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는 “해운대에 있다가 사하는 이번에 처음 옮겨왔다. 지역에서 좀 더 일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대성 당선자의 박사논문 표절건이 불거졌다. 후보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텃밭 부산은 그래도 ‘문대성’이었다. 그러나 부산민심이 문 당선자에게 마냥 호의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최 후보보다 2380표를 더 줬을 뿐이다. 새누리당 텃밭인 사하갑에서 여당 후보가 이렇게 고전하기도 처음이다.
부산에 첫 출마한 김영춘, 문성근 후보도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작정이다. 지난해 부산진구에 아파트를 마련한 김영춘 후보는 가족 모두가 정착했다. 30년 만에 돌아온 고향 도전을 한 번으로 끝낼 수는 없는 일이다. 부산에 정치적 경쟁구도가 마련되도록 토양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정치인 김영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문성근 후보도 지역구 활동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북강서을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출마했던 곳이다. ‘노무현’ 때문에 출마한 문 후보에게도 북강서을은 정치적 고향이 됐다. 문 후보의 선거사무실은 문화강좌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예정이다.
노무현 키즈의 가장 큰 문제는 생계다. 집안 든든한 곳이 별로 없고, 있더라도 3~4번씩 떨어진 마당에 더 손벌릴 곳이 없다. 한 캠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그는 아내가 운영하는 세탁소일을 돕고 있었다. 선거 동안 바빠서 도와주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계면쩍은 목소리가 수화기로 울려왔다. 그에게 물었다. 다음 선거에도 또 캠프에서 도울 것이냐고. 그의 답변은 간명했다.
“당연하지요. 대선도, 그다음 총선도 같이 가야지요. 이게 노무현을 만난 우리들의 운명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