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
0
조회 117
2012.04.23 13:57
글이 적다. 총선의 과다한 영향인지, 개편된 사람사는 세상 시스템의 문제인지, 아니면 나의 삽질이 임펙트를 가했는지 우려가 된다. 글로 표현되고 글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한다. 시각의 한계가 들어날 수 있다. 가장 시각적 문자는 영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 시각적 현상도 착시를 일으키고 오독을 한다. 정치인의 우아한 수사인 "미스리딩"이 아니다. 개편된 사람사는 노무현 광장의 "태그"가 많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주제는 돋보일 지 모르지만 집중도를 방해한다. 태그는 6-7개가 적당하다. 철새의 이동이 주위의 철새들의 행동을 보고 방향을 결정한다. 집단지능이다. 전화번호도 그렇다. 선택적으로 보더라도 6-7개가 넘으면 인간은 오히려 판단능력이 떨어진다. 대형마트의 상품도 6-7개가 매출이 가장 높다고 한다. 꼭 반영했으면 한다. 우측의 "전체보기"의 글도 좀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 클릭 수라는 귀찮은 행동으로 가독성을 저하하는 요인이 된다.
총선은 끝났다. 40대의 무력감이 아니라 선거만 끝나면 이런 경험을 한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 행동은 굼뜨고 쓰잘데기 없는 생각만 많아진 것 같다. 몰입했다가 선거의 결과를 보고 난 후 좀 허망한 느낌이다. 한국의 정치에서 인물론으로 정당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총선 기간 중에도 정책논의가 실종된 이유다. 이것은 정치의 동력이 될지언정 지속가능한 잉여물을 만들진 못한다. 선거가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우린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결과에 따라서 허탈하고 승자의 미소에 배아픈 감정만 가진다. 이런 연유가 중도층이니 부동층이니 하는 정치에 대한 혐오세력을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마디로 재생산이 어렵고 이슈에만 몰입하여 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현상이 된다. 그저 모든 것은 정치인의 책임으로 넘기고 대중들은 익숙하게 니들만 나쁜늠들이야 하고 외친다. 정치인의 스펙과 수준이 과연 낮을까. 아니다. 정치인의 수준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이다. 미국에는 노동자 출신의 상원의원이 없다. 거진 백만장자 수준이다. 정치인의 물갈이는 어떨까. 선거마다 인물교체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대선을 향한 자기사람 심기라도 분명하게 인물교체는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 대중들의 수준이 정치인의 수준을 가늠한다.
정당의 다변화는 정치의 수준을 높인다. 다당제를 찬성한다. 그러나 정치발전의 단계를 보면 아직 아니다란 개인적 생각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인 진보신당과 녹색당의 실패다. 통진당도 참여계를 흡수하고도 지지율은 과거의 지지율 회복으로 겨우 만족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결과만 보면 대중들의 정치의식이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도 된다. 이러니 중도니 진보니 친노니 비노니 하는 논쟁이 나온다. 이런 발언이 나오는 현상은 좋은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지향점과 폴리페서 교수들의 정치성향을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의 호남 홀대론이나, 좌파연하는 진보교수들의 민주당 중도론을 위협하는 발언은 자신의 정치신념을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로도 분명하다. 자신의 목적에 민주당의 중도론을 분쇄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인영의 좌측 클릭 강조도 분명하다. 자신의 정치신념과 민주당의 정권획득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진보의 강화는 시대조류란 것을 인정한다.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서민층의 살림살이가 어렵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비정규직 800만 가계부채 1000조원이 넘었다. 이런 경제적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더 많다. 이런 서민들의 세상인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의 실패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옳은 것은 맞다. 그러나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민주당의 노선투쟁이나, 통진당의 선거부정이나 이런 함의가 숨어있다. 권력을 위한 내부투쟁이다.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투쟁이다.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다. 당권을 향한 복수혈전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전투를 용납한다. 내부투쟁으로 노선을 재정립하고 주도권으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사는 세상에서도 증명이 된다. 구참여계 지지자는 연일 민주당을 향하여 십자포화를 날린다. 그들의 주적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더 나쁜늠들이다. 왜? 민주당을 향햐여 공격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민주당을 공격해야 "떡고물"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일부 민주당 지지세력도 같았다.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그래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중요하다. 실패와 실수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대안이 중요한 이유다. 일회성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정치의 발전을 원한다면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개발이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도 대안이다. 교육으로 확산하고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와 민주주주의 발전을 향한 진보의 발걸음이 될 수 있다.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효과도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진보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꼭 필요한 교육이다.
일회성의 선거가 결과물은 얻지는 못했다. 대중들은 익숙하게 실패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실패의 잉여물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시스템은 교육이다. 부동층을 줄이고 중도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적 자산이 된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했다. 역사의 후퇴는 이런 자산을 이용하지 못했다. 중세의 암흑기의 특징은 신의 시대다. 신의 뜻으로 인간의 운명을 결정했다. 종교적 계급이. 지금은 정치계급이 이용한다. 르네상스의 숨은 뜻은 교육이다. 인간의 의식수준의 변화가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정치인에 대한 굴종이 아니라 비판과 대안이 가능해야 한다. 중국의 민주화가 가능할까. 아직 어렵다. 민주화는 언론의 비판이 없다면 불가능한 존재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몽테뉴의 친구인 "라 보에티"는 겨우 18살에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을 비판하는 책을 썼다. "자발적 복종"에 대한 글이다. 인물론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진다. 문제인도 김두관도 이런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비판을 받아들이고 비난은 극복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도 한 방편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진보의 생산이 가능하지 않다면 진보는 요원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끝임없는 교육과 학습이 필요하다. 흐름은 즐기면서 해야한다. 최근의 투표 인증샷은 놀이의 형태다. 정치를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서게 하는 요인이다. 민주대 반민주, 노무현대 이명박의 프레임을 벗어나고 정치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익숙한 프레임은 벗어나길 바란다. "패러다임 시프트"가 요구된다. 문제인과 김두관이 대중들을 선도할 수 있다면 난, 그들을 지지한다. 가능성이 없다면 사정없이 팽개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열정과 "호모루덴스"를 충족할 수 있는 지도자가 대권에 다가갈 것이다. 박근혜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최고점의 가치는 노출했다. 그래서 기대를 가진다. 민주주의를 위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정치는 분배다. 정치는 가치다. 이것은 교육으로도 가능하다. 일부분..재생산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진다. 문제인과 김두관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의 익숙한 관습은 버리길 바란다. 김대중 대통령의 미망인인 이희호 여사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대중들과 "반 발짝"만 앞서가라고. 진보연 하는 폴리페서들의 중도론 비판론이 가슴에 와닿지 않은 이유다.
삶이란 장기적으로 가변적 편차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