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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13:15
하나의 사안을 해결하는 건 해결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해결의지는 주의 입장이다. 주류, 주체 또는 당사자의 해결의지에 따라 사안은 해결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이 때 주변인과 객은 주의 해결의지를 판단하며 지적 제안 제시 등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객이 주에 합류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객의 지위는 주로 바뀐 게 된다.
논쟁이 가정에서 출발하면 '탓'이다.
나의 방법이 아무리 옳고 확실해도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물러서는 게 맞다. 물러설 수 없다면 설득을 지속해야 하는 건데 설득의 방향이 강요나 비난 또는 지나친 비판이 된다면 설득은 커녕 대립만 유도하게 된다.
시기성이 있다.
선거는 시기성의 영향을 받는다. 미리 준비할 수도 있고 급하게 해결할 수도 있고 여러 상황 사정에 따라 임기응변도 따라 붙는다. 어느 당이든 어느 후보자든 완벽을 준비하고 선거에 임할 수는 없다. 100%의 준비가 불가능한 이유는 시기성이 주는 변수 때문이다.
판단의 잘못을 알았다.
내가 또는 당신이 잘못을 알고 난 후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주가 되지 못한 것이다.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펼치지 못한 것 1차 책임은 거기에 있다. 비판의 대상도 잘못은 있다. 그러나 그 잘못을 시기성에 맞게 바로 잡지 못한 것이면 비난에 가까운 비판보다는 당부에 가까운 비판이 서로에게 이롭다.
방향성 전략 모두가 어긋나 만족하지 못한 결과가 생겼다.
이 것을 문제 삼아 상대방을 상처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화는 빼고 당부를 담는 게 맞다.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해 주도할 수 없었다면 주도한 사람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자.
종적 입장이었고 주도적 입장을 취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번 야권의 참패를 안타까워 하는 것은 현재의 민통당의 주도로 치뤄진 선거에서 목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것 때문이다. 진통당이 민통당을 주도할 수 없는 이유가 뭔가 살펴보면 오래된 지역구도 탓이 가장 많다. 그런데 이 발상은 틀렸다. 진통당이 지역구도를 깰만한 감동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감동 받지 못하는 민심을 향해 무지를 탓하고 지역구도를 탓해봐야 개벽은 어렵다. 내실을 다지고 사람을 흡수하고 감동을 제공해야 민심이 돌아선다.
백날 '우리가 반듯하다. 우리가 해 낼 수 있다.'를 외쳐봐야 사람들은 그 걸 믿지 않는다. 큰소리로 외칠 수록 감동은 커녕 반감을 살 수 있다. 민심이 곧 "세"다. 세를 모으지 않으면서 이길 수 있고 반듯하고 저들은 틀렸다를 백날 외쳐봐야 내 꼴 난다.
반감 그 것을 지워야 해법이 생긴다. 참여하고 반듯한 생각을 들여 다 볼 수 있게 활짝 문을 열어 두어야 사람이 들어 온다. 시기성이 포함된 사안 집요하게 당신 생각들을 펼치는 것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끝까지 설득해서 바꿀 수 없다면 툭 해 버리는 말로서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당신이 주도하지 못했다. 나도 주도하지 못했다. 하여 선거를 두고는 할 말은 많아도 말을 아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