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2005년 이혜훈, 송영선, 정두언 등이 출연하여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 막말을 쏟아내고 성적 비하 욕설을 했던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했던 것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이었고, 이 연극을 보고 키득거리면서 "프로 수준" 어쩌고 하며 즐긴 것이 박근혜 위원장 아닌가?
김용민의 막말에 대해서는 잘못한 것이므로 사실을 인정하고 당 차원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를 선거 쟁점으로 악용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 대해서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짖는다"고 호통을 치고 맞받아쳐야 했는데, 민주당이 했던 어정쩡한 대응은 최악의 자충수였다.
"사찰 80%는 참여정부 것"... 물타기 뒤집을 진정성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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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오마이뉴스> 총선버스 4.11에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운데)와 변호를 맡은 최강욱 변호사가 출연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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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파동이 있기 전 선거 최대의 이슈는 민간인 사찰이었다. 이미 밝혀진 김종익씨의 사례 외에도 민간인 사찰이 여러 건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숨기기 위해 컴퓨터 하드를 없애버리고, 돈으로 매수했다는 것이다. 일부 공개된 USB도 근처 안경점에 숨긴 것을 찾아낸 것이라는 사실은 이 사건이 희대의 코미디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사건은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아주 세게 받아쳤다. "공개된 사찰 문건의 80%는 전 정권에서 있었던 것이다"라며 물타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언론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반격을 거의 생중계하듯 보도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들의 반론을 해명하는 데 한참이 걸렸고, 합법적 감찰과 불법적 사찰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 역시 국민들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와닿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는 '나도 전 정권과 현 정권에서 모두 사찰을 받았다'는 식으로 자신이 사찰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한술 더 떴다. 결국 사찰 문제는 MB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정권과 현 정권 모두에서 있었던 잘못된 관행으로 치부되어 새누리당 박근혜 지도부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 것 같다. 특검이냐, 청문회 도입이냐는 국민들에게 그렇게 와닿는 차이가 없다.
결국 MB와 새누리당의 반격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는 민주당에게 더 센 것이 필요했다는 의미이다. <오마이뉴스>는 <새누리당도 놀란 반전, 이유 있었다>(이종필 칼럼)에서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했을 때 무기한 단식 농성을 했던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의 예를 거론하며, 한명숙이나 이정희 같은 야권 대표가 정권퇴진을 걸고 더 대차게 싸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재인, 천호선, 전해철 등 참여정부 인사들의 더 센 결단과 대국민 행동이 필요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책임 지고 정계를 떠나겠다. 형사 처벌도 받겠다"고 나서야 했다. 그래야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양비론 구도를 깰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물타기가 먹혔고, 국민들은 이를 MB정권 심판의 이유로 체감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민간인 사찰 문제를 활용하지도, 청와대 반박에 대처하지도 못했다. 물론 해명은 했지만 너무 늦었고, 또 너무 어려웠다. 물론 국무총리실 기자회견과 청와대 대변인의 한마디는 생중계하듯 하는 방송과 언론이 이들의 해명 보도에는 인색했던 것이 문제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 그랬으니 그들만 탓할 수는 없다.
'야권연대의 실패'가 아니라 '불완전 야권연대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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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에서 열린 '야권단일후보' 이상규 통합진보당 후보 유세에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참석해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이 이후보와 함께 손잡고 '야권연대'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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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야권연대의 실패로 평가하고 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도 "야권연대의 패배"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 평가도 따져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이번에 야권연대의 상징으로 거론되었던 곳이 바로 서울 관악을, 경기도 성남중원, 광주 서구을 등인데 여기서는 모두 야권단일후보가 당선되었다. 세 곳 이외에도 서울 은평갑, 경기 고양덕양갑, 울산, 경남 창원 등 야권연대가 성사된 곳이 많이 있다.
이번 연대는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진보연대'가 아니라 '야권연대'이다. 목표는 선거에서 새누리당을 이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득표율 5% 이내로 승패가 갈려 야권단일후보가 낙선한 곳 중의 상당수는 불완전한 야권연대를 이룬 곳이다.
먼저 정통민주당 후보의 득표가 승패에 영향을 준 곳을 살펴보자. 정통민주당은 민주통합당 창당과 공천 등에 불만을 품고 탈당한 이들이 주축이 돼 총선을 앞두고 만든 정당이다.
서울 은평을(통합진보 천호선), 서대문을(민주 김영호), 경기 의정부을(통합진보 홍희덕), 경기 평택을(민주통합 오세호), 경기 안산단원갑(통합진보 조성찬) 선거구에서는 야권단일후보가 모두 박빙으로 패했다. 이 지역에 출마한 정통민주당 후보들의 득표수는 모두 1, 2위 표차보다 많았다. 만약 이들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승패는 뒤바뀔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도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 은평을 이재오 새누리당 후보는 49.5%, 천호선 통합진보당 후보는 48.4% 득표하여 표 차이가 1.1%p인데, 정통민주당 후보는 2.1%를 득표했다. 서대문을 정두언 새누리당 후보가 49.4%, 김영호 민주통합당 후보가 48.5%를 득표하여 표 차이는 0.9%p였는데, 정통민주당 후보는 1.1%를 득표했다.
경기 의정부을에서는 홍문종 새누리당 후보가 49.1%, 홍희덕 통합진보당 후보가 45.5%를 득표하여 표 차이가 3.6%p였는데 정통민주당 후보가 5.7%를 얻었다. 평택을에서는 이재영 새누리당 후보가 44.9%를 얻어 42.7%의 오세호 민주통합당 후보를 2.2%p 이겼는데, 정통민주당 후보가 2.3%를 가져갔다. 안산 단원갑에서는 새누리당의 김명연 후보가 43.4%를 얻어 36.9%를 득표한 통합진보당의 조성찬 후보를 6.5%p 차이로 이겼는데, 이 지역에서도 정통민주당 후보가 6.9%를 얻었다.
서울 관악갑의 민주통합당 유기홍이나 경기 성남중원의 통합진보당 김미희는 정통민주당 후보의 출마에도 당선된 경우이다. 물론 정통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표가 100% 야권단일후보에게 가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비율이 그럴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진보세력의 단일화 실패 또는 분열이다. 애초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한 진보신당 잔류파와는 야권연대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국적인 차원의 야권연대에서 진보신당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야권단일화만 되면 '떼어놓은 당상'이라던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에서는 진보세력의 단일화 실패로 새누리당이 모두 당선되었다. 진보정치 1번지라던 창원에서는 진보신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가 끝까지 으르릉 대면서 싸웠고, 울산 북구에서는 진보진영 일부가 공개적으로 김창현 통합진보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해당 선거구뿐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영향을 미쳐 동남권 진보벨트로 불리는 울산과 부산, 경남 창원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몰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야권단일화보다는 독자노선을 선택한 진보신당은 1%, 정통민주당은 0.22% 득표에 그쳐 당을 해산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범야권의 단일화 실패 또는 분열로 인하여 낙선한 후보가 최소 10명 이상이고, 간접적 효과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당선자 숫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야권연대는 MB정권과 새누리당 심판을 위한 선거 승리를 1차 목표로 한 선거연대였고, 완벽한 야권연대를 이룬 곳에서는 대부분 승리 또는 선전했다. 그리고 박빙 패배한 상당수에 연대에서 이탈한 야권 세력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보듯 이번 선거 결과는 '야권연대의 패배'가 아니라 '불완전한 야권연대의 한계'라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팟캐스트와 SNS의 한계... 여전히 위력적인 조중동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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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 부근에서 열린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동료인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참석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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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을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게 만든 결정적인 힘은 <나꼼수>이다. <나꼼수>로 대표되는 수많은 팟캐스트 방송들이 기존 언론들이 하지 못했던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와 결합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도 많다.
이번 선거에서 팟캐스트와 SNS의 위력이 확인되었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드러내었다. 수도권,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다른 세대에서까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그것이 투표로, 또는 정치적 지지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이번 선거는 '여촌야도'와 지역구도라는 기존 정치적 지형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약간씩 사라지는 듯 보였던 이런 구도가 이번 선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세대별 이용 매체의 차이에 기인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도시지역, 젊은 층들에게는 팟캐스트와 SNS 등이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농어촌,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종이신문과 방송 3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 기간 방송사 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방송의 정치적 편파성이 두드러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적으로 폭로한 팟캐스트 <이슈털어주는남자>에 이어, 2619건의 사찰-감찰(첩보) 문건을 폭로한 것은 9시 정규 뉴스가 아니라 파업을 벌이는 KBS 새노조 쪽 '리셋 KBS 뉴스9'이었다. KBS 사측은 이를 보도한 기자들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다. 보수언론은 김용민 막말 파동을, 없는 것까지 왜곡하여 이슈로 만들었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언론들도 김형태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성폭행,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 언론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 현실이 선거 결과에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하는 것이 우리 정치 현실임을 이번 선거는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대통령은 박근혜가 대세? 아직 8개월이나 남았다
이번 선거 결과를 새누리당의 압승, 박근혜 대세론, 민주통합당 등 야권의 참패로 정리하는 것에 이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박근혜가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전망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인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서의 야권 압승, 부산 경남에서의 야권 낙선 후보들의 의미 있는 득표, 호남 지역에서의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자유선진당 지지율보다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득표가 많다는 점 등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에게는 우려되는 결과들이다. 그리고 대선까지는 아직 8개월이나 남았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새누리당이 100석 건지기도 힘들다고 했던 것을 상기해보라.
이번 선거도 투표율이 55%를 넘지 못했다. 대부분의 당선자들이 실제로는 유권자의 25%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느 정당, 어느 후보의 유불리를 떠나서 투표율이 낮은 것은 정치 발전에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
일반적으로 총선보다는 대선의 투표율이 훨씬 높다. 아직 변수는 많다. 새누리당이 대승 분위기를 12월 대선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반대로 범야권이 정당 지지율 박빙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야권 단일화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12월 대선이 더욱 주목된다. 이미 대선 레이스는 시작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