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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리아 에세이 2

댓글 3 추천 1 리트윗 0 조회 105 2012.04.14 13:19

 

-  일상적인 삶 -

 

누구나 삶에서 절망을 마주하기도 하고 희망을 찾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용기 없는 나를 위해서 비가 많이 내리던 89년의 어느 날이었다. ‘엄마 나 눈에 나비보여’ 나에게 찾아온 첫 경련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나 아무도 그것이 경련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넘어갔다. 2년 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경련이 91년 다시 찾아온 것이다. 다시 눈에 나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93년 들어서 경련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고 진료기록부에는 내가 알 수 없는 MRI의 내용이 영어로 적혀있었다. ‘3년 동안 약 먹고 경련이 없으면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짧은 한마디. 이상하게도 경련이란 놈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중학교 막 사춘기로 접어든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병이 다가왔고 경련은 학교생활의 어려움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싸워야 했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무언가와 항상 싸워야 했다. 시선들, 편견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경련 후 달라진 아이들의 시선과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는 소리들, 참지 않고 그것과 싸워야 했다. 살아가면서 아프던 그렇지 않던 친구는 변하지 않고 옆을 지켜 주리라는 믿음과 그러한 친구들이 나에게는 힘이 되어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대학을 들어가서도 병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옆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이의 아픔을 아는 나이, 그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맘을 나눠 주고 싶어 자원봉사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첫 사랑도 시작이 되었다. 96년 여름 방학 대구대 부설고등학교의 뇌성마비 장애우를 대상으로 수능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대구의 무더운 여름 뇌성마비를 가져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던 동생과 운동장을 지나 갈 때 온전치 못한 걸음으로 동생이 자꾸 넘어졌지만 난 그저 ‘야 일어나라, 형이 책가방 들어주잖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답답했는지, 화가 났는지 한 학생이 나에게 ‘너무 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삶은 누가 책임져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걸을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것 뿐이라고’ 짧은 대답만 해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다섯 살 꼬마아이가 길가에서 경련을 한다면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온정의 시선으로 그 아이를 바라봐 줄 것이다. 하지만 나이든 내가 그랬다면 그 시선은 어땠을까 ?

 

어느 여름날 갑자기 전조가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차를 잡아탔다. 거리에서 혼자 쓰러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간질환자입니다. 가까운 병원이나 경찰서 까지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건냈고 돌려받은 대답은 ‘이 새끼 미친놈 아니야 빨리 내려..’ 눈을 떠보니 집이었다. 내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오른쪽 혀에서 난 피만 경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을 떠나보내야 했던 것도 내가 가진 짐 때문이었다. 96년 12월의 어느날 조심스럽게 그 사람에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나 간질환자야, 경련하는 것 알지... 그래도 내가 좋으면 내일 연락줘, 연락이 안 오면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고 생각할게” 아무런 연락을 받을 수 없었고 그 후에도 이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인지하고 말았다. 결과는 항상 처음과 같았다.

 

2002년 코스모스 졸업을 하고 취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때 교수님 추천으로 사회생활을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담당 부장의 한마디 질문 ‘군대는 왜 면제 되었어요’ 너무 자신감이 넘쳤던 탓인지, 어리석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네 간질이 있어서요’ 라는 짧은 대답을 해버렸다. 다음날 회사를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후에도 병은 취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은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고립감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난 이 고립감을 이겨내야 했다. 일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배달 안 할래요’ 뭐든지 해야 한다는 강박, 아마 그것이 용기를 줬을 지도 모른다. ‘네’ 라는 대답이 망설임 없이 튀어나왔다.

 

일을 시작한지 5개월 어려움도 많았다. 전조가 올 때마다 화장실에서 남 몰래 약을 먹어야 했고,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많았다. ‘꿈을 포기해야 하고 남들과 같이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고민도 많이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삶에 만족한다는 것, 자신에게 만족한다는 것 모두가 맘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살아가는 동안 병이란 짊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왔다. 병이란 공포, 일종의 최면 혹은 병과 함께한 삶에 길들여져 와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는 헛되이 하나의 굴레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해왔는지 모른다. 부질없는 헛된 위안의 말들로 나를 위로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병’이란 하나의 이유로 정당화 해왔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 이해를 바란다.’라는 말 하나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왔다.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보다는 삶의 주변에서 그 삶의 주변인으로만 삶을 살아 온 것은 아닌지 되짚어본다. 내 삶의 변화를 위해서 내 삶의 뿌리를 찾아야겠다.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내 삶의 본질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빨간 가방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피자배달원,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고민과 자괴감에 빠졌던 삶에서 벗어난 ... 같은 아픔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도전 하는 삶을 살며, 자신이 가진 병에 고립되지 않고 거기서 빠져나올 용기를 가지고 또 다른 삶에 부딪혀보기를... 삶의 결과를 모두 다 안다면 우리의 삶은 시시하지 않을까 ? 알지 못하는 내 삶을 위해 난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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