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home > 노무현광장 > 보기

자발적 가난뱅이, 세 모녀가 사는 법

댓글 0 추천 0 리트윗 0 조회 87 2012.04.14 05:30

ㆍ16년째 생태주의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도은씨네

경남 산청, 노인들만 남은 10여가구의 작은 산골마을. 그곳에 ‘아주 특별하게’ 사는 세 모녀가 있다. ‘싱글맘’ 도은씨(48)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딸 여연(18)·하연(14)양이 그들이다. 세 모녀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허름한 농가에서 직접 똥지게를 지고 손에 흙 묻히고 자급 농사를 지으며 산다. 무엇 하나 걷어낼 것 없이 소박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다. 330㎡(100평)도 안되는 남의 텃밭을 빌려 서툰 ‘삽질’을 거친 뒤 지금은 1600여㎡(500평) 밭을 일구고 있다. ‘개발’과 ‘성장’의 광풍 속에서 땅과 자연이 죽어가는 세상, 우리 가족만이라도 땅과 더불어 살아보자며 도은씨가 일방적으로 시작한 삶이다. 이렇게 산 지 벌써 16년째다.

■ 자발적 가난은 생태주의자의 덕목

도은씨의 집에는 승용차는 물론 TV·라디오·인터넷·휴대폰도 없다. 신문도 읽지 않는다. 현대문명에 종속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고, 소비를 조장하거나 폭력적·선정적인 소식들을 쏟아내는 매체에 대한 거부감이라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도은씨의 대답은 담담하면서도 명료하다. “이들 매체나 기기를 이용하지 않는 인간은 희귀동물 취급을 받는데, 문명 반대론자인 우리가 그런 희귀동물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싱글맘 도은씨(가운데)와 딸 여연(오른쪽)·하연양이 이른 아침 마을 어귀 보리밭을 거닐며 활짝 웃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kyunghyang.com

 인터넷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마을회관에 비치된 컴퓨터를 이용한다. 옷은 얻어 입고 집 안의 모든 물건은 주워온 것이다. ‘자발적 가난뱅이.’ 도은씨가 추구하는 생태주의자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그는 “현대사회가 너무나 많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고 이것이 지구를 아프게 한다고 생각해 모든 물건은 리사이클링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여연양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라도 학교생활을 경험해 봤지만, 하연양은 학교 문턱조차 넘어본 적이 없다. 도은씨는 “내 아이들의 삶이 실제 삶과 별 관련이 없는 조각난 지식들을 외우고 시험과 평가와 우열 나누기 등으로 왜곡된 학교제도 속에서 허비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낮에는 농사 짓고, 밤이면 세 모녀가 함께 누워 책을 돌아가며 크게 소리내어 읽으면서 토론을 벌이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인지 의젓한 여연양과 명랑한 하연양은 또래보다 훨씬 방대한 인문과학적 지식과 논리력을 보인다. 여연양의 경우 청소년용
영어소설 정도는 쉽게 읽을 만큼 영어도 능하다. 가난한 세 모녀의 유일한 사치는 책을 구입하는 것이다. 책 읽고 글 짓는 건 좋아하지만 수학이 싫은 하연양은 천성적으로 사랑이 많은 아이다. 집에서 기르는 수고양이 ‘아피’를 비롯해 길들여진 것이든 야생이든 온갖 생명체들의 엄마와 누나를 자처한다. 마당에서 닭, 강아지, 고양이들과 뒹굴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온갖 나물 캐기를 좋아한다.

■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살리라

도은씨는 전북 김제 만경평야를 일구던 소농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유독
공부를 잘해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렸던 그는 고교 입학과 함께 도시로 나왔다. 장학금을 받고 과외 아르바이트, 임시직 등을 하면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결혼 후에는 부부가 어린 여연양을 데리고 러시아 유학길에도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여느 엘리트들과 다르지 않은 도시인의 삶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여연양이 네 살, 하연양은 아직 태중에 있을 때 닥친 이혼의 아픔은 도은씨의 인생을 단숨에 뒤바꾸었다. 그 충격은 1997년 서른이 훌쩍 넘은 그를 고향으로 이끌었다.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그는 “개발과 부동산 열풍,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고향땅을 마주하면서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이 농촌과 자연에 폭력을 가한다는 충격적 느낌을 받았고 절망했다”고 회고했다. 고향은 이미 안온한 안식처나 모태 같은 곳이 아니었다. 도저히 그곳에 머물 수가 없어서 아예 낯선 마을에서 새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흙에 발을 담고 겸손하게 살겠노라!”고.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농사일이 서툴렀다. 인정 많은 시골 할머니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어딜 가든 푸성귀를 기를 만한 텃밭과 오밀조밀한 산과 들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텃밭농사만으로 세 모녀가 생활하는 데 경제적 부족함이 없을까. 게다가 애초부터 대량생산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도은씨는 그나마 소출이 있으면 선물은 해도 판매는 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지은
농산물로 세 끼 밥먹고, 필요한 물건은 리사이클링해 쓰는 데다, 교육비가 드는 것도 아니어서 한 달에 10만~20만원이면 세 식구가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요. 꼭 돈이 필요하면 번역을 하거나 이웃 농사일 거들어주며 충당하죠.”

■ 엄마와 딸, 전쟁과 평화

시골에 정착한 이듬해 봄에 하연양이 태어났다. 진통이 오던 4월의 어느 날 새벽,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트럭을 얻어타고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의료기관인 보건소에서 몸을 풀었다. 도은씨는 마치 ‘도인’의 표정으로 그때를 회고한다. “침상이 없어 하연을 낳자마자 타고 온 트럭을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온 산에 진달래가 잔뜩 피어있는 것을 보며 ‘참 예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첫째딸 여연양과의 전쟁은 길고 힘겨웠다. 가장 먼저 찾아온 전쟁은 육식 끊기와 병원을 대신한 자연요법에서 비롯됐다. 네 살 무렵 여연양은
아토피가 심했고 잔병치레가 많았다. 책을 통해 육식의 폐해를 접한 도은씨는 고기를 일절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고기맛을 알고 있는 여연양은 엄마의 강제조치에 반항했다. 고기 결핍증은 한동안 ‘단것 중독’과 ‘빵과 과자’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여연양과의 본격적 싸움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여연양을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했을 때부터다. 엄마는 딸을 농사일에 본격적으로 투입시켰다. 모녀는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렸다. 성난 엄마의 손에서 고무신, 호미가 날아다녔다. 눈치 빠른 하연양은 엄마와 언니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훌륭하게 중재자 역할을 해내곤 했다.

네살 터울의 여연과 하연양은 성격이 딴판이다. 여연양은 밭에서 괭이질을 할 때면 ‘지금 내 또래 아이들은 학교에 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종종 했고, 또래 아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게 부러웠다고 했다. 또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초라한 삶이 부끄러워서 언젠가는 보란듯이 도시로 나가 살겠다”고 결심할 만큼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 늘 꿈틀거렸다고 말했다. 반면 동생 하연양은 낙천적이다. “또래가 아니어도 친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괜찮아요. 맘껏 늦잠 잘 수 있는 것도 좋고요”라며 헤헤거린다.
톱밥과 왕겨, 풀, 나뭇재 등과 섞어 거름으로 쓸 인분을 직접 나르고 뿌리는 게 싫지 않냐고 묻자 “우리가 눈 똥과 오줌인데 우리가 안 치우면 누가 치워요? 똥과 오줌은 더러운 게 아니라 거름으로 쓰일 수 있는 자연순환의 일부잖아요”라고 대꾸한다.

한동안 엄마와 갈등을 빚던 여연양도 2년 전부터 달라졌다. 엄마와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특별한 삶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농사의 즐거움, 돈 없이도 잘사는 삶에 대한 자신감, 된장·곶감 등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편안함, 그리고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고 책을 읽으며 얻은 많은 깨달음, 돌아보면 지난 시간은 모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제도에 거부감이 많은 도은씨는 여연양을 위해 한때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곧 실망하고 좌절했다. “당시 대안교육운동에 적극 나선 이들 대부분은 도시의 중산층 부모들과 의식 있는 교사들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에 동참하려면 부모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 구조였어요.” 가난한 싱글맘에다 농부인 도은씨는 그들과 경제적 계급이 다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 사이 도은씨는 4년이라는 길지 않은 두 번째 결혼생활과 이혼을 경험했다.

■ 지금은 외로운 섬일지라도…

여연양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도전할 계획이다. 대학 진학을 반대한 엄마를 설득해 이미 동의를 구해놓았다. 여연양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많은 생각을 했다”며 “화학을 전공해 핵발전에 대해 공부한 후 녹색환경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울대나 서울시립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다시 흙을 찾아 돌아올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하연양은 “동식물이 좋지만 아직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에코 아나키스트’ ‘에코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도은씨는 두 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문명체제에서 소비하는 삶을 거부하고 생태주의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은 외로운 섬 같지만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 차차 많아지면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섬들끼리 이어져 의미 있는 큰 목소리가 되지 않겠느냐.” 도은씨와 여연, 하연양은 좌충우돌 시골살이 고군분투기를 담은 책 <없는 것이 많아서>(행성:B입새)를 최근 공동으로 펴내기도 했다. 산골의 고요와 평화를 닮은 세 모녀는 사람이 그리운 듯 기자의 옷소매를 붙잡고 잠자리를 내주었다. 삐비비빅 삑삑… 삐비비빅 삑삑… 멀지 않은 곳에서 박새소리가 들렸다.(경향신문20면)

 

<단지언니생각>

1)인간이란  무엇인가?

2)인간의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성찰하게 됩니다

 

 

목록

twitter facebook 소셜 계정을 연동하시면 활성화된 SNS에 글이 동시 등록됩니다.

0/140 등록
소셜댓글
끊은단지 1950lj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