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7
0
조회 74
2013.07.14 22:15
몰약처럼 비는 내리고
나희덕
뿌리 뽑힌 줄도 모르고 나는
몇 줌 흙을 아직 움켜쥐고 있었구나
자꾸만 목이 말라와
화사한 꽃까지 한 무더기 피웠구나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인 줄도 모르고
오늘밤 무슨 몰약처럼 밤비가 내려
시들어가는 몸을 씻어 내리니
달게 와 닿는 빗방울마다
너무 많은 소리들이 숨 쉬고 있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진물이
낮은 흙 속에 스며들었으니
한 삼일은 눈을 뜨고 있을 수 있겠다
저기 웅크린 채 비를 맞는 까치는
무거워지는 날개만큼 말이 없는데
그가 다시 가벼워진 깃을 털고 날아갈 무렵이면
나도 꾸벅거리며 밤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
고맙다, 비야. ‥‥‥고맙다. ‥‥‥ 고맙다. ‥‥‥
==============================================
새벽 두 시
미친 사내 하나가 관악산 바위에 누워
하늘이 내리는 비의 세례를 받으며 중얼거렸다
고맙다 비야... 고맙다... 고맙다...
[시: 몰약처럼 비는 내리고-나희덕 / 음악:Lullaby- Jim Chapp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