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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13:22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귀태’ 발언에 대해 사과하며 원내대변인직을 전격 사퇴했다. 그가 ‘귀태’라는 단어를 인용하며 들었던 박정희와 기시에서 시작돼 현 일본과 한국의 최고 지도자에 오른 후손들까지 양 집안의 평행이론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연좌제까지 적용된 ‘귀태’라는 단어의 사용이 부적절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의견을 개진한 인물은 상당수에 이른다.
문제는 홍익표 의원의 잘못된 인식이다. 상식과 윤리, 도덕과 철학을 넘어 ‘귀태’라는 단어가 내포한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사람’은 없다. 어떤 탄생도 사후적 결과를 역으로 적용해 폄하되거나 배제시키면 안 된다.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없으며, ‘태어난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지정해 교육과 제도를 정비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수천만 명을 학살하면서도 가장 돈이 덜 드는 효율적 방식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인 히틀러조차도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이 아니라, 태어났지만 그런 최악의 인간이 최고 지도자에 올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비극을 저지르지 못하게 한 이유와 제도적 결함, 공조자에 대한 책임 추궁, 재발 방지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법과 제도의 정비, 역사적 교훈에 대한 교육 등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주국에서 동족과 중국인을 학살한 박정희와 기시처럼 온갖 악행을 저지른 독재자와 군국주의자의 후예인 박근혜와 아베가 그들처럼 ‘귀태’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권한 남용을
감시하고 비판하면서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뿐만 아니라, 독재와 권위주의가 자행되고 있는 나라에서도 정치 지도자나 권력의 소유자가 ‘귀태’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최악의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예수가 구약의 창조자처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생명체를 없애버리는 박멸의 선택인 ‘노아의 방주’를 따르지 않고, 자신을 버림으로써 모든 인간의 원죄를 사해주는 사랑을 선택한 것도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치인이자 여권 커넥션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시점에서 홍익표 의원이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귀태’ 논란을 자초한 것은 무능한 민주당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일 수도 있고, 이렇게라도 해야만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태'는 배제와 박멸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끝없는 보복과 말살의 정치만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인식이 극단에 이르면 히틀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정치인이 된다.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것에 반하여 민주주의는 개인의 평등과 인민재권,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시 등을 주장하기에 자유와 평등의 균형과 견제가 가능한 경쟁적 다원주의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할 수 있다.
정치란 경쟁의 관계이지 그 동안의 우파 진영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한 빨갱이나 종북처럼 박멸과 배제의 관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박멸과 배제는 모든 악덕의 근원이자 독재로 가는 출발점이자 끝이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세계를 ‘우리’와 ‘그들’, 즉 아군과 적으로 나누는 적대적 관계를 문명의 개념으로 넓혀 적인 '그들'을 박멸과 배제하는 끊없는 전쟁을 야기했듯이 '귀태'라는 단어의 사용은 사무엘 헌팅턴 같은 근본주의적 우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홍익표 의원의 ‘귀태’ 발언은 그 단어에 내포된 뜻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우경화가 지나칠 정도로, 이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나왔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유신독재와 일제의 군국주의를 경험한 사람이나 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홍익표 의언처럼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단어도 사용 가능한 사석에서는 그런 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공적 영역인 정치에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귀태'라는 단어의 사용은 극좌나 극우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단어이기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자신의 실언이 갖는 의미를 빠르게 인식하고 책임지고 물러난 홍 의원의 사후 처리는 미흡하지만 적절했다. 국정원장의 발언과 국방부의 성명 발표도 막지 못한 박 대통령이 여권 커넥션에게 면죄부를 준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날 정도다.
이번 기회에 민주당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도 모자라, NLL 논란을 극대화해 배제와 박멸의 도그마인 멸공과 마녀사냥을 또다시 들고 나온 여권 커넥션과 맞서려면 치밀할 정도로 완벽한 전술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추호의 빈틈도 보여서는 안 되며, 꼬투리가 잡힐 수 있는 자극적 언어의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그것은 나 같은 삼류 논객이나 쓸 수 있는 단어다, 극도로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지금처럼.
박 대통령이 국정원에게 셀프 개혁을 주문한 발언 이후로 방송3사와 종편, YTN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보수화 매커니즘을 총동원해 여권 커넥션에 최대한 힘을 실어주는 현실에서 도무지 약효가 먹히지 않는 민주당의 부활과 촛불집회의 활성화, 시국선언의 확대 등을 노리고 홍 의원이 총대를 맨 것 같으나 정치인의 입에 올릴 단어는 아니며 시기적으로도 최악이었다.
따라서 홍익표 의원의 원내대변인직 즉긱 사퇴는 그나마 다행이고 이로서 최소한의 책임은 졌다. 최종적 책임은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체제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의 사용도 못할 것은 없지만 거대 야당의 대변인이 쓸 수 있는 단어는 한정돼 있다. 민주당의 언어가 새누리당의 언어와 다를 것이 없으면 누가 민주당에게 희망을 둘 수 있겠는가.
민주당에게 부탁드린다, 문재인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라. 그는 민주당의 최대 자산이며 국정원 사태의 최대 피해자다. 그를 정치적으로 키워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가 정치적 위력을 키워서 새누리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있는 방안을 찾아라. 그만이 김장수, 김관진, 윤병세로부터 NLL 논란의 진실을 밝히라고 강하게 요구할 수 있으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 위법을 저지른 자들을 벌할 수 있다. 그게 정치다.
민주당이 이런 단어의 사용을 통해 단순히 새누리당과의 싸움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할 것이며, 민주당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홍익표처럼 능력 있는 정치인이 문재인과 손을 잡고 움직였다면 이런 실언도 없었을 것이며, 진선미 의원 등의 국정원 국정조사 의원 배정 문제로 골치 아플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싸움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김한길 대표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이번 싸움은 민주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전투이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는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이다. 홍 의원의 ‘귀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재인 의원을 내세워 김장수, 김관진, 윤병세를 포함해 김무성, 남재준, 정문헌, 서상기, 이철우, 권영세까지 국정조사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다. 배제와 박멸의 정치는 극우나 극좌처럼 근본주의적 생각에 젖어 있는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자들이 하는 정치와 다를 것이 없다. 이미 태어난 사람이 정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극단적 생각을 떠올릴 일이 없도록 민주주의를 지키는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국민을 믿지 못할 때, 그들의 순정한 분노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정의와 공정성을 실현할 수 없을 때, 불의한 자들의 불법적 권력 사용을 제지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만다. 촛불과 시국선언을 빼면 모든 것이 우파와 반민주 세력의 수중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작은 실수도 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하물며 그것이 만회하기 힘든 실언이라면 그 이후의 결과가 어떠하겠는가?
민주당의 분발을 촉구하며, 최상의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지키고 원상회복시키려는 국민과 함께 움직일 때, 그들의 순수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갈증을 이끌어갈 수 있을 때 민주당은 다시 집권의 가능성이 열린다. 무엇보다도 여권 커넥션과 맞서서 실족하지도 않고 가장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장수인 문재인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이번 실언을 통해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본격적인 싸움의 9할이 남아 있는데 지금의 민주당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