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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07:01
욕을 욕으로 못 느낀다면 이미 자신이 욕에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행패를 행패로 못 느낀다면 이미 자신이 행패에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못 느낀다면 이미 자신이 부끄러움에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짐승이 짐승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이미 자신이 짐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슬픔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욕을 욕으로 못 느끼고 행패를 행패로 못느끼고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못 느끼고 짐승을 짐승으로 보지 못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피 빠는 모기를 향해 무슨 도덕적 명분이 필요한가요? 손바닥으로 찰싹 때려잡으면 됩니다. 달려드는 미친개를 향해 어떤 도덕적 명분이 필요한가요? 몽둥이로 후려갈겨야합니다. 도덕적 명분이 필요한 곳은 적이 아니라 친구를 쳐야 할 때이죠.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고 바라보는 세상은 늘 삐뚤어져 보일 밖에요.
인간이 태어나서 자기 본성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되는 시기는 유아기입니다. 시크 한답시고 시니컬해도 되는 시기는 소년기입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어른이 되어서도 유아기와 소년기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외모는 어른일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어른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어른아이입니다.
그저 자기 감정대로 제멋대로 안하무인인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그들의 ‘버르장머리 없음’을 위선에 대한 혐오라고 정당화합니다. 유년시절과 소년 시절에 부렸던 치기 그대로 주변 사람들을 향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솔직함’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걱정하는 어떤 시도도 그들에게는 위선이며 따라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입니다. 그들의 정의는 반도덕적 반항입니다. 그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문이 열려 있어도 담을 넘어 들어옵니다. 그들은 침을 뱉지 말아야 할 곳에 침을 뱉고 껌을 쓉으면 안 되는 곳에서 껌을 쓉고 정숙해야 할 곳에서 큰소리로 떠듭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짜장면을 시킬 때 짬뽕을 시키고는 짜장면 시킨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이유는 비웃어야 한다는 것이 그냥 이유입니다. 그들은 칭찬은 아첨이고 비난은 조언이라고 말합니다. 칭찬에 인색하여 비난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뿐인데도 말이죠.그들은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옳든 그르든 언제나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 일 뿐입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광대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고통과 공포를 공감하며 손을 잡아주는 대신 광대의 찡그린 얼굴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그들은 광대의 고통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에 광대와 함께 찡그리는 것을 위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말하거니와 버르장머리 없음을 솔직함이라고, 위선에 대한 경멸이라고 정당화 하는 그 어떤 사람도 무더운 여름날 벌거벗고 사람들 속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누가 보았나요? 그들이 그렇게 하는가요?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위선을 혐오한다고 선언할 자격이 있고 생각나는 대로 말할 수 있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고 사회적 합의와 사회적 상식에 순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위선이라고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설탕보다 더 하이얀 빤쓰 난닝구 속에
강원도 옥수수엿보다 더 누리끼리한 육신을 꾸겨 넣고 다니는 우리는
늘 기도의 첫 구절을 이 말로 시작해야 합니다.
먼저 어른이 되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