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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21:13
헌다 의례식
<우리 노짱님>
김소희
선녀들의 춤사위가 펼쳐지는 듯도 하고 조선시대 사대부가 삶의 현장을 말해주는 것도 같다. 싱그러운 5월의 햇살아래 눈부시도록 깨끗한 여인들의 옷차림은 더 없이 이색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또는 영상을 통해 보았던 장면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실 모습을 보는 것은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아주 고운 자태는 정말 환상적인 무대를 연상케 할 만큼 귀한 모습이다. 나풀나풀 나비천사들이 납시는 모습인가하면 귀부인들 삶의 현장을 만난 것 같은 기분에 젖게도 하였다.
또 한 삼배三拜를 드리는 남성주인공들의 모습도 참으로 귀한 인연을 더해 주었다. 넥타이문화에 젖어 살아 온지도 오랜 세월이지 않는가. 그런데 여러 시간을 이곳에서 유교적 의상과 예식을 만나고 보니 그 옛날 할아버지들의 삶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한동안 과거의 시간에 동화될 수 있어 나 또한 행복한 시간을 맛 볼 수 있었다.
정말 더 없이 깨끗한 분위기는 세속의 흔적을 지워주기에 충분하였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때 꿈꾸던 모습을 비춰주는가 하면, 티 없이 맑고 경건한 시간들이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다주었다. 아주 조용히 각자 주어진 몫에 충실해 보이는 열성은 지금껏 흔하게 만나든 광경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이렇듯 많은 상상력을 키워주고 있는 이곳 품격의 주인공들은 대통령께 차를 올리는 ‘헌다’식을 거행하고 있는 중이다. 도포자락에 묻어나던 선비의 기품을 풍기며 우리 노무현대통령께 한해 수확한 장군차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전례 복을 나란히 차려입은 주인공들의 감사와 정성이 깃던 다례茶禮는 고인의 뜻을 받드는 극진함이 역역하다. 소리 없이 와 닿는 봉화산의 바람도 사방을 활짝 밝혀주는 햇살도 더욱더 자기의 소임을 다 하겠다는 듯 상쾌한 분위기다.
정말 그렇다. 우리 대통령께서 애지중지하던 차가 아니던가. 차를 통해 애향정신을 높이고 차를 통해 건강을 증진시키자는 취지가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려준다. 그 차가 어느새 수확이라는 결실을 가져와 우리 대통령께 드리게 되었으니 헌다라는 예식이 얼마나 성스러운 일인가. 이런 정성이 없었다면 그냥 우리만 즐겨 마시지 뜻을 기리는 마음을 가지는 기회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예식은 흔하지 않는 일이어서 가신님의 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없는 좋은 만남이기도하다.
나도 행사의 절차에 따라 경건한 마음으로 대통령께 한 잔의 차를 두 손 받쳐 올렸다.
"차 맛이 좋습니다."
"예, 대통령님께서 이루신 결실입니다."
천천히 음미하시는 모습은 그윽한 풍모로 다가섰다. 환영이 아닌 생전의 소탈한 자태가 차 물빛에 그대로 투영되는 듯했다. 분명 환청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졌다. 오늘의 차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갖은 풍우와 대통령의 사랑 속에 영글었으리라 생각을 하니 헌다를 통해 만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장군 차에 거는 기대와 정성이 얼마나 컸던가. 무너져가는 농촌의 뿌리를 되찾고 사라져가는 전통차를 보급하자는 의지가 대통령의 꿈이었으니 말이다. 그 꿈이 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이어져 결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오늘 이곳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도 그는 우리 차의 소중함을 자주 강조하였다. 대중화된 커피가 수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거기 따르는 국고지출도 지출이지만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한다는 정신을 소중히 여겼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은 이곳의 기후와 토질을 통해 체질을 만들어왔다. 가난과 수명도 우리의 것으로 이룩하고 극복해왔으니 그 모든 먹을거리는 이 나라의 것이 좋다는 게 누구 던 인정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장군차를 심은 까닭도 오늘의 헌다식도 결국은 내 것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뜻이 담긴 일이며 농부대통령으로서 당당히 해온 몫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다. 장군 차는 발효차이기에 솥에 덖어서 만든 녹차와는 다르게 소화력도 더 앞선다는 보고가 있다. 그 빛깔도 여느 차보다 숙성된 미를 띄우는 것도 그렇고 맛 또한 진함이 그런 연유였다는 것을 알 것 같다.
헌화 대 앞 내가 놓아드린 장군 차는 이 세상 삼라만상 질서가 녹아든 차라는 생각이 든다.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대통령의 자리에서 다시 농부로 돌아온 우리 노짱님의 살아있는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으니 말이다. 오늘의 이 장군차를 만나기 위해 가물세라, 마를세라, 큰물에 젖을세라,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자식 키우는 정성과 다를 바 없으니 이 시간에 마련된 한잔의 차가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 5월의 청명한 하늘이 더욱 그 뜻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어찌 주인의 마음만 기리겠는가. 스스로 잘 살아낸 차나무들의 의지도 큰 것이지. 우기를 맞은6~ 7월의 궂은날은 쨍쨍한 햇살이 많이 그리운 시기다. 젖은 뿌리가 숨쉬기 어려울 만큼 물과의 전쟁도 치러야 하고 그러다 물길에 패여 아예 물귀신이 될 위기도 넘겨야한다. 불화로 같은 염천도, 나목의 시간들도 잘 견뎌왔기에 차라는 이름으로 탄생된 것이다.
더구나 봉하의 장군 차는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과 관심도 깃들었고 추억과 사랑도 그 어느 농촌보다 남다르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고 찾아드는 방문객들의 간절함은 더 깊은 애정이 묻어났을 것이며 쉼 없이 토해내었을 절규마저 장군 차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 모두를 알고 받아드리며 여물어왔을 차 맛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특유의 향긋한 그 맛은, 희열과 애환의 결정체가 오늘의 헌다를 만나게 해주었는가도 싶다.
우리 노짱님도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 매년 잊지 않고 차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감사해 할 것이며, 이 땅의 습도 조절을 위해 열과 빛을 보내주는 햇님에게도 감사해 할 것이며, 행여 목이 마를세라 수분공급에 부지런한 자양분을 만들어 비님으로 보내주는 구름에게도 감사해 할 것이다. 행여 운동부족이 될까나 쉼 없이 불어주는 바람님에게도 역시나 무지 무지 고마워하실 게다. 이런 조화 속에 이루어지는 차 맛이 어찌 뛰어나지 않으리.
"그 차 맛 참 좋다!"
"어느 차가 장군차 향을 따라오겠나!"
우리 노짱님의 흐뭇한 미소가 헌화 대 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