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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13:07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는 나도 좀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나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다른 어떠한 고려도 배제하겠다는 강력한 이기적 이데올로기인 먹고사니즘이 다른 가치를 압도하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이 먹고사니즘은 다른 사회, 정치적 테제들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블랙홀이었다. 문제는 이 먹고사니즘이 목표하는 바가 생존이라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내가 살고 난 다음에야 겨우 주변을 쳐다볼 수 있다는 치열한 생존의 울타리에는 진보니 보수니 이념이 작동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생존에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만이 선택의 요소가 될 뿐이다.
먹고사니즘의 기원은 지구상에 인류의 출현과 그 맥을 같이한다. 다만 현대에 들어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IMF 국가부도위기,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거치며 그 양상은 더 노골화되고 더욱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먹고사니즘의 속성은 이웃의 피해나 고통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안락이 먼저이며. 내가 속한 사회의 모두에게 피해가 가더라도 나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더 커야하고, 세금이 더 낭비되더라도, 내가 사는 동네가 개발되어서 내가 소유한 집값과 땅값이 올라야 한다. 이러한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욕망은 미래의 비전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진보든 보수든 이 현실적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버틸 장사가 없었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의 폐혜는 공공성에서 드러난다. 그 이유는 먹고사니즘의 근원이 바로 국가와 사회가 내 생존인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처절한 깨달음에 기초하기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은 먹고산다는 명제 아래서 인간은 좀 부도덕할 수 있으며, 이런 생존의 논리 앞에서 인간은 비겁해도 괜찮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사니즘의 이데올로기는 진보진영보다는 보수진영에 훨씬 더 우호적이다. 가령 국가 권력의 잘못된 권력남용이나 불법, 정당하지 못한 역사관이나 폐쇄적인 지도자관이 무엇이든 정권의 도덕성과 권력의 정당성을 구분하지 않을 정도로 포용성이 깊어 대중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였던 박정희시대의 고도성장이라는 우상의 동굴에서 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 아니 성장이라는 과실만 있다면, 그리고 나만 아니라면 어느 계층의 희생이라도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수용할 수 있다는 암묵적 비도덕성을 추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정치의 유일한 이성적 근대인이었던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필두로 노무현과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세력들의 더 나은 국가와 공동체를 향한 모색은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계몽주의 문제 이전에 당장 눈앞의 먹고사니즘을 우선 해결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박정희 독재정권의 경제성장 신화(?) 이후의 보수정권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였다는 근거는 없다. 차라리 IMF를 극복한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실적은 박정희 이후 대부분의 정권의 실적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지금의 박근혜와 이명박의 실정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국정농단은 먹고사니즘에 충실하였다는 박정희의 후예로 포장되어 이해되고, 수용되고 있다. 이러니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라는 탈법적 행태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의 국정 지지도가 오히려 9%이상 상승하였다는 형용모순을 상기하여 보라!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고도성장이라는 신기루는 이 고도성장을 통해 일거에 먹고사니즘을 해소했다는 우상과 신화로 굳어졌고, 진보가 이 허상의 신화를 제대로 깨뜨리지 못하는 한 진보진영의 발언은 그저 바위에 달걀던지기가 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에게 떨어진 명제는 대중을 계몽하는 과업 이전에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비전의 제시와 실천이다. 바로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는데 삶은 왜 더 팍팍해지고 어려워지고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일의 첫걸음은 김대중 대통령이 제기한 서생의식과 상인 의식의 결합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역시 보편적 복지의 실현에 있다.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먹고사니즘의 확보는 보편적 복지가 답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와 새누리와 극우동맹이 이에 동조할까? 천만에, 보편적 복지가 확립된 사회에서는 지금의 극우동맹들은 존재의 기반을 상실한다. 그들은 개과천선, 혁신하지 않으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보편적 복지를 수용할 의지가 전혀 없다. 지금 이대로가 그들에게는 천국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 자문해보자.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궁극적으로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런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법과 제도와 문화는 어떤 것일까? 우리 다같이 그 대안을 제시해 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