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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0:36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을 널리 추상(追賞)하여 내외에 관직을 고루 나누어주었어며. 병기를 녹여 농구를 만들었고, 백성들을 인수(仁壽)의 경지로 이끌었다". 삼국사기 문무왕 유서 중..
신라 문무왕은 반도의 살육을 살육으로 끝내고 통일이라는 위업을 남기고 유품을 남겼다. 신화의 일부분이 된 그는 "만파식적"을 천존고에 보관했다. 그는 무력으로 이룩한 평화를 피리라는 악기의 감성적 유품만 전했다. 비정한 칼의 시대를 종식하고 후계자인 신문왕에게 남긴 유산은 피리다.
비정한 칼의 시대는 반복된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칼춤의 살육이 탐미주의로 흘렀다. 죽이지 않는다면 죽어야 하는 시대. 집안을 보호하기 위하여 합종과 연횡에 배신이 미덕이 된 시대를 낳았다. 강한 자에게 굴종하지 않으면 바로 죽음인 시대다. 칼의 시대다.
다케다 신겐의 등장..풍림화산(風林火山) 바람처름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란 화두로 기마병 전술로 전국을 제패하기에 이르른다. 그러나 영웅은 영웅을 부르고 그는 죽음에 이르른다. 다케다 신겐이 죽었다면 그와 동맹세력들 특히 군벌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가케무샤의 등장..다케다 신겐을 유지하는 세력들은 가케무샤(가짜 무사, 얼굴이 흡사한 저렴한 사람)를 등장시킨다. 그들이 유지하는 세력과 지키려는 보수의 마음으로 가케무샤가 등장한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카테고리
일본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으로 시대는 급변한다. 권력의 속성이 폭력에 기초한다는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의 도장까지 새기며 천하제패의 문앞까지 갔다가 수족의 배신으로 찬란하게 죽는다.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거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잡고 일본 막부시대를 열었다.
가케무샤는 신화가 극복되는 과정의 세계다. 공수래 공수거나 반야심경의 색즉시공즉시색이다. 화려하디 화려한 가케무샤와 일본 무사들 옷차림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찬미하는 마지막 예식이다. 비정한 죽음의 세계를 견디어낸 화려한 옷차림은 죽음을 찬미하고 숭고한 미학에 몰입한다. 하이쿠(5 7 5의 정형조)와 같이 아날로그적 감정을 디지탈이란 순간의 찰나에 미학이 있다.
중세 신들의 시대에 고딕 양식이 유행했다. 다음은 중간단계의 이상한 바로크 양식이 조금 유행했다. 아무래도 카톨릭의 주권이 희석되는 과정이었다 생각된다. 이후 화려한 로코코 양식이 유행한다. 사조는 짧게 반복되지 않고 지나친 확장으로 뻥튀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 비참한 중세 신들의 시대를 암흑기라 한다. 오직 신만이 있었다. 역사의 반동은 일으나기 마련이고 르네상스란 계몽주의 시대를 연다.
친노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발길도 방향도 놓친 것 같다. 문재인만 바라본다고 그것이 옳은 방향은 아니다. 다른 방향에서 본다면 문재인도 노무현 지지자들 움직임에 답답할 거다.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인데 지나친 노무현 지지자가 문재인을 옭아매지 않는 가 반성해야 한다.
문재인이 진화하길 바란다. 다만 노무현 지지자가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한다. 이번 국정원 사건과 NLL 대응은 안희정이 옳았다. 비난하는 사람에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 알아야 한다. 법도 지켜야 하고 정치인은 비난과 비판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것까지 외면하면 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이 노무현의 가케무샤 역할을 한다면 난 문재인 지지하지 않는다. 노무현은 그 자체로도 발광이 나고 이미 신화가 되었다. 지지율이 고작 20-30%라도. 예술사를 보면 그 시대에 엄청 인기를 끈 화가들이 사후 평가는 안 좋았다. 권력에 취해서 유행에 홀딱 반해서 진짜 예술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이 취업하지 못한 이유는 타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사후 그림값이 증명하니까.
..인간의 익숙한 편견 한 두개는 거론하자. "램브란트"란 화가란 위대한 화가가 있었다. 빛을 사용하는 대가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하지만 요셉보이스나 백남준에 물이든 인간들은 이 위대한 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작품 중 "야경"이란 작품이 있다. 미술책에도 나오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야경이 아니다. 가로세로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고 중세의 기사단이 제단까지 했다. 그러니 이 작품 원작자의 의도는 좌우대칭이 사라졌다. 결정적 증거는 이 작품은 대낮에 성문을 나서는 기사들의 그림이다.
멍청한 사람들이 야경이란 작품명을 선사했다. 과정은 석탄을 난로로 땐 그 시대에 그으름이 너무 묻었고 황당한 제목을 받은 이유다. 인종차별을 반대한 위대한 투사 "넬슨 만델라"가 위독하다. 이 지독한 인종차별의 나라. 독일도 인종차별을 사과하지만, 모짜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나치 장교를 선출하는 나라가 오스트리아다. 살아 생전에 모짜르트에 대우도 별로 안 해주었어면서 이제는 초콜릿에도 모짜르트 이름을 팔고있다. 아래에 있는 일본의 극우세력들을 본다.
..문재인이 진화하길 바란다. 노무현 근본주의자든 세속주의자든 문재인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난 문재인이 노무현 시즌2라면 문재인에게 기대를 갖지 않는다.
삶이란 장기적으로 가변적 편차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