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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30 09:14
24일 저녁 퇴근길, 무심결에 튼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흑역사’를 다룬 다큐 <백년전쟁>을 놓고 보수 대 진보의 맞짱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적의가 넘쳐나고 살기마저 묻어났다. 이미 200만이나 봤다는 다큐를 뒤늦게 찾아본 건 순전히 그 살벌함 때문이었다.
컴퓨터를 끄면서 든 느낌은 “에이, 뭐 이렇게까지…”였다. 이승만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듯한 구도가 지나쳐 보였다. 해방 직후 좌익이 주도한 인공마저 이승만을 주석으로 모시려 하지 않았던가. 인공이 미군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겠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명망을 인정한 것도 분명하다. 우리 사회 모든 악의 뿌리를 친일파 탓으로 돌리는 역사관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해방된 지 70년이 다 돼 간다. 4·19와 6월 항쟁의 찬란한 역사가 있었다. 친일 정도는 진작에 극복했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하지만 나 나름의 ‘합리성’은 이틀도 못 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26일 오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의 ‘몸통’으로 김무성 의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무성의 부친인 김용주는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 해방 뒤에는 재빠르게 적산인 전방(옛 전남방직)을 불하받아 큰돈을 벌었다. 김무성의 형 김창성은 2003년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곤경에 처했을 때 천막당사에서 지내던 박근혜 대표에게 염창동 당사를 빌려줬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친일파의 두 아들이 다카키 마사오의 딸을 도와 대통령에 등극시킨 것이다.
핏줄보다는 행태가 더 닮았다. 개인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민족, 통일, 평화 같은 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김무성이 대화록을 써먹으려던 때는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이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시점이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선 처음으로 역전된 결과가 나왔다. 대선 승리를 위해 국정원법 위반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대화록 공개의 이유를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희번덕이는 생존본능이 느껴지면서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연상된다. 이승만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인 노덕술 등 친일 경관들이 반민특위의 표적이 되자, 경찰 80여명이 반민특위 수사관들의 무기를 압수하고 주먹질 발길질을 가했다. 박근혜 당선을 위해 뛰었던 국정원이 위험에 처하자, 대화록을 까발리며 반격에 나선 게 역사의 반복으로 다가온다. 이승만은 이런 경찰들에게 “자네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발 뻗고 잘 수 있다”고 칭찬했듯이, 누군가는 멸사봉공한 국정원의 등을 두드려줄 것이다.
이승만 등 뒤에 숨어 숨죽이고 있던 친일파들이 냉전을 틈타 휘두른 칼날이 ‘반공’이었다.
>>김무성도 빨갱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좌파세력이 원전의 방사능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둥 안철수 대선 후보의 복지정책이 마르크스 공산주의 슬로건이라는 둥 거침이 없다.
친일세력의 준동은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의 등장과 함께 어느 정도 예고됐다. 하지만 이념과 사상전에 머물던 수준을 넘어서 이제는 본격적인 실체로 확 다가서는 느낌이다.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고, 이승만 예찬론자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다큐 <백년전쟁> 말마따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콜라보(대일 협력자)들의 세상인가. 믿고 싶지 않다. 난 내 아들이 이렇게 묻는 게 제일 두렵다 “그럼 지난 70년 동안 민주화 세력은 뭘 했던 거야?”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너무 초라해진다.
김의겸 논설위원ky****@hani.co.kr
>>김무성 :
>>김창성(김무성의 형)
>>김문희(김무성의 누나)
知 彼 知 己 百 戰 百 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