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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댓글 4 추천 2 리트윗 0 조회 51 2013.06.14 21:01

제가 지난 일주일 동안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건강이 악화된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대한민국이 정말로 민주주의국가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선택한 정치체제 중 민주주의가 가장 우월하며 자본주의의 미친 폭주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제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권위주의체제가 민주화 운동(과정)으로 무너지고 나면 민주주의가 도래합니다. 민주화 운동(과정)은 현재의 권력적 요구에 의해 위로부터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현재의 권력구조를 받아들일 수 없어 아래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운동을 권위주의체제의 후예들이 받아들여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와 경제 및 사회적인 면에서 민주주의를 최대한 보장하지만 실제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체제의 정경유착을 청산하지 못했고, IMF 이후에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득세로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인 사회경제적 평등마저 극도로 심화됐습니다.

 

 

자유주의자인 토크빌(『미국의 민주주의』)과 신자유주의자인 하이에크(『노예로 가는 길』)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좌우의 정치경제학자들이 인정했듯이 민주주의는 시민들 간의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초합니다. 1인1표라는 정치적 기본권이 실질적인 효력을 가지려면 모든 권력의 기원인 시민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이유는 개인과 기업의 사유재산권을 무한대로 인정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1인1표가 아닌 1원1표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크기는 개인과 집단의 정치적 권력의 크기로 전환되기 일쑤입니다. 돈이 많을수록 정치적 권한은 증가하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사법적 권력도 커집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1인1표가 핵심원리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이 절대적인 요소가 됩니다. 민주주의와 자연법의 보장하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타인(특히 자본)의 영향력에 자유로울 수 있는 기본적인 부와 기회가 재분배되어야 합니다. 이는 정치와 사법, 언론 등이 맡아야 하는 일입니다.

 

 

헌데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사회경제적 평등은 극도로 벌어졌고, 자본의 권력이 무한대로 늘어남에 따라 정치의 공간도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재벌총수에 대한 재판의 결과에서 보듯 사법부도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거의 모든 언론(특히 방송)은 권력에 대한 감시자라는 본연의 기능과 미미한 저널리즘마저 포기한 채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돈벌이에만 급급합니다.

 

 

기득권화된 이들은 기후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는데도 권력의 편에서 모른 채하기가 이제는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작금의 대불황이 금융 자본의 탐욕으로 몰아붙였을 뿐, 수십 경에 이르는 자금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역외탈세된 것에서 있다는 사실은 초국적기업과 자본의 힘 때문에 숨겨져 왔습니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들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민으로부터 떠나버린 정치는 그 작동의 범위가 엘리트간의 이합집산에 갇혀버렸고, 사회적 경제는 극단의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강화돼 갔습니다. 삶을 이루어지는 각각의 공동체란 시민단체의 몰락과 함께 급격히 줄어들었고 터무니없이 이기적인 존재나 사회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전세계를 빛의 속도로 넘나들게 했지만 미국 정부의 프리즘 사용에서 보듯 국가 안보라는 미명 하에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고 빅 데이터에 쌓여 분석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 권리가 생활의 영역에서 보장될 때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있는데 개인은 국가와 자본의 감시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미래세대에게 개인적 공간이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선거 개입까지 자행된 대한민국은 이중에서도 으뜸입니다.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법무부장관과 자신들이 왜 개혁의 대상인지 새삼 일깨워준 검찰의 수사결과는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접한지 알 수 있습니다. 종편과 일베충의 득세는 왜 우리가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민주화 운동에 나섰는지 후회스러울 뿐입니다.

 

 

“도둑이라고 해도 우리는 페론을 원한다”고 외친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처럼 “전과자라도 우리는 이명박을 원한다”라고 외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부와 기회, 권력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는데 경제 성장만 되면 자신의 주머니도 두둑해질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이지요.

 

 

이런 이유들로 해서 그 동안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삶을 힘겨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 이용되고, 조직과 제도, 폭력을 앞세운 정부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따라 차등적인 법의 지배를 강요한다면 내가 건강을 망쳐가면서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자유주의 기간 동안 태어난 1030세대의 의식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공기처럼 주어지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3무세대 출현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국 제가 지난 일주일 간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는 이 땅의 민주주의가 너무 왜곡되고 축소돼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보수 세력이 연이어 권력을 잡은 것과 상관없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지독하게 망가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저로 하여금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진주의료원 폐업조례의 날치기 통과는 그 정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공의료까지 신자유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진주의료원 폐업조례의 날치기 통과를 제자리로 되돌린다 해도 이미 조례가 통과된 것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제 시각으로 볼 때, 그렇게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실질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더욱 나빠져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사적 영역의 힘에 공적 영역의 가치들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정치적인 것이 귀환한다고 해도 제대로된 사회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좌파로부터의 감염이 사라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와 무엇이 다를까요? 촛불소녀 같은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저항의 헤게모니가 또다시 출현할 수 있을까요?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는데 결론은 다시 민주주의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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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바보 jir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