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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17:16
다람쥐주인 13.06.12 09:22
<"5.16은 혁명이다" 최창식 중구청장>
왜 반대했을까?
만약 외국에 관광을 간 당신이 그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독재자의 기념공원을 발견한다면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어떻게 각인될까? 9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창식 중구청장이 추진하고 있는 ‘박정희 기념공원’건립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후보시절 국정조사를 약속했던 쌍용차 사태에 대해서도, 자신이 옹호했던 국정원여직원의 혐의가 밝혀져도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던 대통령이다. 그가 고작 이정도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아마도 자신의 아비를 기리는 공원에 반대하는 대통령의 '아량'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런데, 대통령에게서 아량을 느끼기에는 반대의 변이 너무 옹색하다.
다음 중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기념공원'조성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독재자의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2)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니 신중해야한다.
3) 불경기라서. |
1)번은 100점짜리, 2)번은 50점짜리, 3)번은 0점짜리 답이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선택한 답은 3)번이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독재자의 기념공원에 반대하는 이유로 고작 ‘불경기’를 지적한 것이다. 대통령이 이런 중학교 사회 수준의 문제를 풀지 못하다니 황당하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2017년까지 서울 신당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 일대 3600㎡를 기념공원으로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가경제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걸 쉬운말로 풀이하면 '마음만 받겠다'가 된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뿐 조성취지 자체에는 반대하는 않는다는 뜻이다. 경기가 좋았더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독재자의 기념공원에 반대해야 할 이유를 꼽자면 86237가지 정도가 될 거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불경기'라는 이유는 그안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관광자원 확보를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자금을 들여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것보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방문해 기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을 감안해 주셨으면 한다"
독재자의 사저를 어떻게 따뜻한 마음으로 기린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설사 그런 '반민주주의자'들이 있다해도 그들을 위해 세금 300억을 사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세금이 얼마가 들고의 문제가 아닌, 민주국가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민주주의국가의 심장부에 가장 반민주적인 상징이 세우려는 것이다.
신당동 가옥은 박 전 대통령이 5·16을 일으킬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즉 그가 군사쿠데타의 꿈을 키우고 무리들과 쿠데타를 모의했던 곳이다. 당장 세금을 투입해 헐어내도 부족할 그곳을 공원화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가 자신의 집안에 박 전 대통령의 사당을 기리든, 동상을 세우든 자유다. 그런데 그런걸 만드는데 세금 300억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300억이 아니라 300원도 안될 일이다.
소기의 목적 달성한 중구청장
자신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추진하려했던 사업에 대해 대통령이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최창식 중구청장은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분에게 자신의 ‘충심’을 전달했으니 그깟 공원이 만들어지든 말든 무슨 대수랴. 박정희 기념공원조성에 대한 반대여론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슈가 크게 부각될수록 그의 '목적'은 정확히 달성된다.
최 청장의 구시대적인 충성표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박근혜 대통령 사칭계정에 민망한 아부트윗을 날렸다가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가 하면, 다음 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조사 약속을 이행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던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습격∙철거해 '그분'의 심기를 평안케 하기도 했다. 참 낡아도 너무 낡았다.
<짧은 글에 두번이나 틀린 맞춤법이 인상적이다>
아찔한 망국적 코메디
이 해프닝에서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다. 하나는 대통령의 삐뚤어진 민주주의관이며, 다른 하나는 관료들의 탐욕스러운 충성경쟁이다. 두 가지 모두 대한민국에게 치명적인 문제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핸드폰에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매달고 다니며 충성을 과시했던 김병관 씨를 국방장관으로, 비상식적인 논리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했던 윤창중 씨를 초대 청와대 대변인으로 천거한 바 있다. 그들의 됨됨이가 어땠는지는 이미 처참한 결과로 증명됐다. 나라님이 탐관오리의 아부에 보답을 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인사방침이 저러한데 제2의 김병관, 제2의 윤창중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최창식 중구청장 역시 그런 부류중 하나일 뿐이며, 그들의 '충심'에 보답하는 대통령의 인사방침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런 자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아랫사람의 과잉 충성으로 인한 문제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매우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뜻이다. 반면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관료들이 과잉 충성의 보상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지 않다"는 대통령의 '완곡한' 부탁에 최 청장은 어제 "그래도 계속 추진하겠다"며 훈훈하게 화답했다. 이들의 망국적 코메디에 머리가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