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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05:12
일베는 극우주의적 회원들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사이버공간입니다. 그렇다 보니 일베에 저장된 그들은 차마 옮기기 힘들 정도로 사회적 상식의 수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필자가 ‘민주당의 착각, 일베를 퇴출시키겠고?’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일베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폭력은 국가와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 발언들로 가득합니다.
탈법적인 이들의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이며 인종차별주의적인 유사 파시즘은 일베 회원 대부분이 사회경제적으로 하층민에 속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에서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도입과 유지는 문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20세기 최고의 정치학자로 칭송받는 쉐보르스키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경제 위기가 1인당 국민소득의 수준에 미치는 영향이다. 어떤 국가든 소득 분계점 yH가 있다. 경제 위기가 이런 분기점 위에서 아래쪽으로의 소득 감소를 가져오게 되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이 분기점보다 아래쪽의 소득 수준이나 이 분기점보다 충분히 위쪽의 소득 수준에서 발생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일베를 만든 기업에 대해 잘 모릅니다. 나름대로 스마트폰 지향적인 토론 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는 벤처기업이 만들었겠죠. 수익은 당연히 지금은 떨어져나간 광고였을 것이고, 그 밖의 수익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정원이나 새누리당 외곽조직과의 관계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헌데 일베의 성향이 상당히 강한 보수와 극단적 성향까지 서슴없이 드러내는 극우주의자와 종교 근본주의자,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특히 10~20세대의 회원 상당수가 이런 폭력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것에 대한 분노가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요.
이는 제가 위에 인용한 글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정당이 권력을 잡던 간에 자신들의 소득 분계점이 경제 위기로 인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적대적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게 됩니다. 쉐보르스키가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밝힌 것은 1인당소득 분계점이 6,055달러(670만원) 이하로 떨어질 때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의 실증적 연구가 사실이라면 일베 회원 중 상당수가 위의 분계점 주변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열악한 경제적 상황에 처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필자의 추측이 맞다면 이들이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같은 권위주의 독재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편향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정치체제에 불과하고 차라리 권위주의적 독재 시설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물론 여기에 프로테스탄트즘과 자본주의 정신이 만들어낸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믿음과 정권 친화적인 기독교계의 사업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종편과 국정원이 도와주니 일베 회원들이 더욱 극단적인 사람들로 변해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회원들의 글들을 공유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극우성향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화되기에 이릅니다.
반면에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극좌들의 행태는 쉐보르세키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 속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독재 정권에 의해 탄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이 선거에서 패배한 자들과 같은 소득을 분배받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대효용이 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육체적 안전이 위협받고 있을 때는, 같은 소득이라고 해도 그 효용은 낮다.”
선거에서 진 극좌적 성향을 띠는 사람들은 같은 소득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해도 언제든지 정치적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받는 사람들보다 소득이 가져오는 비용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이런 상황에 빠져 들어가면 갈수록 좌파들은 자유방임적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극단적 재분배를 추진하려는 좌파 독재정권(최대 민주주의라 할 수도 있다)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결국 쉐보르스키는 1951~90년 사이에 1인당 국민소득이 6.055달러 이상인 경우에는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 유지됐고 그 이하인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극도로 위협받거나 독재로 변질되곤 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물론 인도처럼 가난한 나라도 부의 평등이 높고 총소독에서 국민의 소득이 높을 경우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좌파 독재정권을 최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은 인도의 경우(신자유의 성장 정책이 실시되고 있는 몇몇 주는 제외)에 근거합니다.
결국 좌파적 성향을 띠던, 우파적 성향을 띠던 잘못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압축성장의 과실이 일부 상류층에게만 주어지고 하층민에게는 주어지지 않거나, 신자유주의가 번성한 다음에는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기본적 삶도 불가능한 소득(정부의 재분배 포함)에 의지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패자(특히 젊은 세대)들은 극단적 성향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과 종교, 가족관계, 전통, 학벌, 관습, 언어, 환경과 심성, 교육에 따라 극우와 극좌가 나타납니다. 이들은 서로 극단의 위치에 서있지만, 최소 민주주의의 최대 피해자라는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계급적 이해를 공유해 한편이 되면 상류층 중심의 정치경제적 국가 운영에 반기를 들 수 있고, 더 발달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 관점의 차이로 그들은 갈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존 스튜어트 밀이 『대의민주주의』에서 한 말을 극좌와 극우로 나뉜 일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을 하는 쪽으로 더 쉽게 이끌리며 실제로 더 쉽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물론 『블랙스완』에서는 일단 관점이 서면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을 강화하는 것에만 집중한다고 했지만, 그가 말한 블랙스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은 보통 빈곤층으로부터 소득을 이전해 부유층에게 재분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명박이 주장한 ‘비즈니스 플랜들리’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대표적인 상류층 지향의 정책입니다.
반면에 진보정당은 부유층에게 높은 수준의 세금을 매겨 그만큼의 세입을 빈곤층이나 중산층 상당수에게 이전시키겠다고 공약을 내겁니다. 경제민주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박근혜 정부가 속도조절론, 대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의료와 교육을 개방해야 하고, 적자를 이유로 경주의료원을 폐업시키고, 수도권의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등등 전통적인 보수정당의 이데올로기로 회귀한 것이 진보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는 이유입니다.
쉐보르스키와 홈즈, 레이턴, 칼리바스 등의 분석에 따르면 극좌와 극우는 거의 동일한 계급에 속할 가능성이 높고 특히 나이 면에서 어리고 사회경제적 환경면에서 비슷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의 계급의식을 갖게 되면 보수와 진보를 넘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정치적 평등과 사회경제적 평등을 지금보다 더욱 높은 수준에서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세력화가 가능해집니다.
저는 바랍니다. 삼성도 현대차도, 애플과 MS도,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도, 이마트와 홈플러스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그들이 거두는 이익의 90% 이상은 중하류층의 소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중하류층의 주머니를 털어 대기업과 상류층, 정치·입법·사법관료 엘리트들의 주머니를 채워줍니다. 이른바 자본주의를 이용해 역류된 재분배를 하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가해지는 세금이 너무나 적어 제대로 된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고, 승자독식을 통해 수없이 많은 가난한 자의 주머니를 털어 극히 일부의 창고를 채워주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일베도 쌍용차 해고자들도, 진주의료원 노조도, 장기파업 중인 노동자들도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처지가 왜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제대로 알게 되고, 언론이 진실을 전해주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계급적 의식이 발생해 정치세력화에 성공할 것입니다.
똑같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양 극단에 처해 있는 두 그룹(일베와 통합진보당 내 극좌파)이 손잡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계급적 위치가 비슷할 것입니다. 양 극단에 위치에 있는 두 그룹이 통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일 두 그룹의 목표가 정권 탈취가 아닌 삶의 질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면. 선거에서의 승리는 그 다음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여러 정치경제학자들의 연구들 통해 밝혀졌듯이 산업화와 민주화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산업화의 역군이 민주화의 역군이었음은 지난 386과 486을 통해 충분할 정도로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두 그룹이 계급적 인식으로 서로 손을 맞잡을 때 사회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는 최고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시에 이룬 민주화와 산업화를 더욱 발전시킨 최초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뿌리가 같은 두 그룹이 계급적 의식을 이룰 수 있다면 한국 정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 복지, 참여, 대의 민주주의로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