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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9 02:26
검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및 선거 개입 및 경찰 고위층의 축소·은폐 압력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MB정부의 국가권력기관들이 탈법을 자행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짓을 저지른 것은 이미 명백해졌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 대해 알고 있었거나 암묵적 묵인이 있었느냐 여부입니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원세훈 원장과의 독대에서 국정원 차원의 정치개입과 선거 개입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면 이는 지난 대선의 정당성이 무효화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정부가 국가권력기관인 국정원을 동원해서 지속적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면 이는 지난 총선과 대선의 민주적 정당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게다가 또 다른 국가권력기관의 수장인 서울경찰청장이 국정원 사건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외압을 넣은 것이 분명해진 상황이어서 지난해에 있었던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그 정치적 정당성이 근본부터 무너져 내립니다. 이는 두 기관의 불법행위로 인해 얼마의 표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갔는지를 계량화할 수 없다는 것을 넘어서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의 내용은 “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입니다. MB정부의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고 민주당 및 진보정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에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에 해당합니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254조 제2항을 보면 ‘이 법에 규정된 방법을 제외하고’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즉 공직선거법에 규정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적인 댓글과 여론 조작 용 글들은 ‘이 법에 규정된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선거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국정원 여직원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던 장소를 급습한 민주당 관계자들을 성폭행범에 비유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처벌된다면 원세훈과 수차례 독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처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확실한 물증이 없는 정황증거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지만 대통령이란 자리가 정부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인 만큼 어떤 형태의 불이익이라도 주어져야 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으로 당락이 바뀐 것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대선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국가권력기관인 국정원이, 다시 말하면 MB정부 차원에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활동을 조직적이며 지속적으로 펼쳤다면 정부에 의해 관리된 모든 선거가 원천무효화 될 수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의 내용만 놓고 보면 이는 100% 확실합니다. 하지만 쉐보르스키 등 여러 명의 정치학자들이 공동집필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나온 것처럼, 해당 법령에 대한 법관의 법리해석이 개인적 의지나 이념에 의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사법부로 이 문제가 넘어가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재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시와 고어가 대결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검표를 요구한 시민단체의 소송에서 부시의 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 대법원의 재검표 불가 판결로 부시의 당선이 확정된 것처럼,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입됐다고 해도 박근혜 후보나 그의 선거 캠프가 개입된 증거가 없는 한 그의 당선을 무효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검찰과 사법부에 그럴 만한 용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비현실적이고요.
대법관 신용철 파동에서 본 것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의 독립성이 약한 편인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난 대선 결과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부정선거 논란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연루됐다 해도 과거의 부정행위가 현재의 정의실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상호 보완적일수도 있지만 상호 모순적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민주권이나 천부인권의 실체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와는 달리 법치주의의 경우 현 최고 권력이 선거로 획득한 권력을 이용해 검찰 수사와 법리 해석에 보이지 않는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다아아몬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의 행위를 규제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책임 의식이 상당히 신뢰활 수준일 경우에만.......여당, 대통령 혹은 주권자는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규칙들을 지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실현시켜 나간다. 바로 이것이 헌법적 규칙들을 자기 강제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하면서 시민들은 법의 지재와 주요 제도들을 수호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생각과 이념이 다른 만큼 이들의 일치된 행동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최대한 의견들을 모아 정부기관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주건과 권력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고사되기 일쑤이고 불법적인 최고 권력의 행사는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민의 일치된 협의에 의해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전에 막는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할 때 검찰의 수사결과나, 그에 따른 재판을 통해 지난 대선결과를 무효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사건에 개입된 것이 밝혀지면 현 정권의 정당성은 극도로 약해집니다. 이럴 경우 미래 권력의 향배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기관들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을 원천차단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확립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개입돼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한 점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됩니다. 필요하다면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수사를 연장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국가권력기관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불법을 자행하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검찰과 국회는 최대한의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국가권력기관이 국가(국민의 총합)와 정권을 혼동해 국민이 부여한 권리를 남용하는 일이 되풀이 된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의 실현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법치주의마저 사상누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성역을 두지 않는 검찰 수사만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수치이자 모든 불행의 원천인 권위주의적 탈법행위들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난 촛불집회의 열정이 정당과 이어지면 무엇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