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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6 02:17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권위에 의한 성추행을 자행한 윤창중, 5.18을 왜곡한 종편, 극우적 망동을 일삼았던 일베충,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본적 지식조차 없었던 전효성까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들의 광기 어린 행태와 무책임한 발언들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들의 반인권적 행태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를 만큼 위험한 존재로 자라났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체주의적 행태와 동일한 이들의 반민주적 행태는 뉴라이트와 종편,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회귀한 국정원, 상업화된 대형교회 등의 삐뚤어진 역사관과 국가관, 근본주의적 종교관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결과물입니다. 이들의 행태는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일본의 군국주의처럼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띤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반합니다.
전체주의적 가치를 추종하는 이들의 일탈은 자유방임적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들과 이들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는 매스 미디어 시대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쩌면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경고한 것들이 이들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추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로버트 달이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지만 작금의 사태를 보면 토크빌이 올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가능했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모든 민주주의의 원형일 수 없음을 입증한 토크빌의 경고는 권위주의를 몰아내는 민주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도래하는 민주주의가 미국처럼 거저 주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이 없으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특히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 SNS 등에 중독된 인간이 표피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생각 없는 사람들’로 변하면서, 사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깊은 사고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립되는 이성과 직관에서 멀어질 때 인류가 동의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지 150여 년 전의 토크빌의 경고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의 특성을 추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모두가 평등하고 비슷비슷한 수많은 군중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소하고 하찮은 즐거움을 추구하며, 그것으로 자신들의 삶을 채워 나간다. 따로따로 살고 있는 이들 각각은 다른 사람의 운명에는 무관심하며, 자녀와 친구들이 그에게는 전 인류나 다름없다. 그 외의 다른 동료 시민에 대해서는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접촉해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혼자 살고자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토크빌의 예언은 각자의 TV와 PC, 스마트폰에 갇혀 있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떠올립니다. 길거리나 직장에서나, 친구와 가족과 있으면서도 우리는 따로 떠돌아다니는 섬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 텍스트를 영상으로 보며, 지식마저 검색하는 현대인들이 머리를 쓸 이유도, 사유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도 없게 됨에 따라 권리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는 민주주의란 타인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통해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가로막는 불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토크빌은 계속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 위에는 거대한 후견 권력이 생겨난다. 이 권력은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며 그들의 운명을 돌봐 주겠다고 자처한다. 이 권력은 절대적이고 세심하며, 규칙적이고 신중하며 또한 관대하다. 부모의 권위가 한 인간이 성인이 되도록 교육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 권력은 부모의 권위와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마키아벨리가 파헤친 권력의 전형을 떠올리는 토크빌의 추론처럼, 우리는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민주적 권력이 중앙 집중화된 관료조직을 관장하는 행정부로 집중되면서 권위주의적 권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지난 60년 동안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지독히 가부장적인 이들의 행태는 종종 자식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내세워 권력의 행사를 독점했습니다. 기업의 오너와 노동자들의 일방적 위계 질서도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권력은 반대로 인간을 계속 어린아이 상태에 묶어”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노력하면서, 이 행복의 유일한 대리인이자 중재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정부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생필품을 공급해 주며 유흥거리를 제공”하고 “걱정거리를 처리해 주고, 산업 활동을 감독해주고, 재산 상속 문제를 조정하고 유산을 분배해”준다는 명목 하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권위주의적 정부는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자유로운 주체로서 개인의 활동을 점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어떤 국가에서도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는 낙수효과(존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 논리)와 시혜적 복지를 평등의 원리로 포장한 정부의 거대한 지적 사기에 속아 정치경제적 자유를 박탈당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이런 정부의 행태는 “인간의 의지를 말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화시키고 굴복시켜”자유의지를 잃어버린 국민들을 양산하기에 이릅니다. 자유가 억압되면 생존을 위한 노동의 이름으로 사회경제적 평등이 왜곡되고, 자유를 박탈당한 개개인은 양도 불가능한 기본권마저 몇 푼의 돈과 통치엘리트의 프로파간다에 팔아야 하는 비극에 처하게 됩니다.
민주적 선거로 권력을 장악한 정부는 대놓고 “전제를 펴는 것은 아니지만, 인민을 억압하고 무력화하고 침묵시키고 마비시켜 마침내 개개인은 정부라는 양치기의 감시를 받는 겁 많고 부지런한 짐승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무한정한 사유재산권을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주장)를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가치로 만든 정치경제적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40년이 만들어낸 결과는 극도의 불평등으로 대변되는 현세의 지옥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인간의 권리와 복지가 최고로 실현된 유토피아인 ‘자유의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동일한 논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통해 균형과 견제가 필수적인 민주주의가 자본 친화적인 행정부 위주로 흘러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작금의 대한민국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크빌이 민주주의가 시작된 최초의 시점에서 추론해낸 이런 현상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김없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쉽게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스 미디어가 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등장한 인터넷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남에 따라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직위를 이용한 윤창중의 성추행, 종편의 5.18 왜곡, 일베충의 극우적 행태, 전효성의 무지한 발언 등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권력의 담합이 특정 지역을 독점한 보수화된 거대 양당 체제를 지탱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해야 할 언론과 인터넷마저 이들의 수중에 떨어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지난 몇 주의 대한민국이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희생과 노력을 통해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 공과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지만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민주정부 10년이 없었다면 탐욕적인 정치인과 관료적 특성에 사로잡힌 행정 및 사법 관료, 초국적 자본과 편향된 언론, 자본화된 종교와 상업화된 대학이라는 보수화 메커니즘이 공고하게 자리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소수 통치엘리트들을 위한 천국으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아이돌 위주의 한류를 얘기하되 청소년의 기본권은 논의되지 않고, 갈등의 충돌을 인정하자면서도 자신과 다르면 빨강색을 덧칠하고, 공통의 미래를 논하자면서도 과거의 사실마저 왜곡하고, 성장을 외치면서도 분배를 거부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극단적 대립을 부추기는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이중적 논리와 행태는 권위주의를 넘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최악의 범죄행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규범과 가치를 전제한 상태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인정하는 것이지, 초헌법적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몇 주 간 극단의 행태를 보여준 일부 광기 어린 세력들과 무지한 자들의 일탈은 민주주의마저 부정하는 것이어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고 반드시 퇴출시켜야 할 거악들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런 거악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민주주의에 있습니다.
소명 의식이 없는 정치인들이 많아질수록 권력은 타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