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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4 21:12
조금이지만 가장 중요한 짐이 늘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4주기 추도식 때 구해 온 6가지 종류의 대통령님 사진과 노무현재단 후원 안내서, 재단소개 인쇄물, 추도식 초청장을 한 세트로 묶어 12개 봉투에 담았다.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곡온천행 2시반 버스로 현풍에 도착한 시각은 6시. 인터넷으로 찾은, 서로 원조를 주장하는 전국구 식당 두 곳과 현풍시장에 있는 지역 식당. 3번을 택해 저녁과 아침을 해결 했다. 쥔장의 넉넉한 밥인심에 봉투 하나를 드리니 크게 고마워 하며 여행의 성공을 기원해 주었다.
왼쪽으로 비슬산 자연휴양림을 끼고, 중부내륙고속도로 옆을 달리는, 나름대로 눈이 시원한 5번국도와 상견례하고
40분 정도 걷다보면 성산 방면, 왼쪽의 달청저수지를 향해 길이 나뉜다. 우측을 타고 가다 가스 충전소가 있고 그 옆에 사무실 겸 주택으로 사용됨직한 집이 나온다. 방향 확인이란 명목을 만들어 “똑똑.” 40대 주부의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리며 “고 노무현 대통령님 좋아 하시냐?” 물으니 “좋아 하구 말구예!” 반색을 하신다. 봉투를 드리고 내용물을 설명하자 기뻐하며 “자알 가시라예~” 화답하신다.
교통안내 표지판이 너무 좋아하지 말란다.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화요일 오전에 스틱에 배낭이다.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들이 한결처럼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좁은 도로에서 마주치는 트럭운전자들과의 손인사는 뭔가에 이끌려 한 장소 한 시각을 공유한 사람 간의 교감이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트럭, 특히 대형트럭에서는 거의 일백프로 앞바퀴에 미세한 방향전환이 감지된다.
경북에게는 작별을 고하고
대합면 십이리라는 독특한 이름의 마을을 지나 고개를 오르면 이국적인 가로수가 마중 나온다. 오전까지의 아스팔트 지방도로는 도보여행자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날이 더워 물을 두 통이나 마시고 다시 갈증이 날 때
원산지를 묻지도 않고 뼈다귀해장국을 시켜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시원한 식당의 음료수로 생수통 2개를 채우고, 오전의 성과에 고무돼 카운터 아가씨에게 “Do you love ...?” 물었다. 갑자기 안색이 싹 변하면서 “좋아 허지도 싫어 허지도 않는데예.” 드디어 오리지널 경상도 레디를 만났다. 간단히 걸봉 취지를 들려주고 귀 밑까지 입술을 말아 올리며 봉투를 건넸다.
부지런한 관조님 ...
이 동네는 유난히 다양한 이름의 치킨집이 많았는데, 노랑이 눈에는 노랑이만 보이는 건지. 오후의 피곤이 길을 건너가고 싶은 충동에 앞섰다.
30여 분을 걸어 낙영삼거리를 지나 시 외곽으로 오자 몸이 나를 거부했다. 사탕을 하나 물고 버스정류장 벤치에 누웠다. 2주만에 걷는 걸봉이라고 재적응이 쉽지 않았다. 사탕이 반쯤 녹았을 때 할매씨들 싸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세 분의 할머니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난상토론을 하고 계셨다. 일어나 잠시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내가 왜 뻗었는지 재밌게 말씀드렸다. 사실만을 짜깁기 해서 지금 보름 가까이 걷는 거라니 틀니가 빠질 정도로 감탄들을 하신다. 그 표정에 나도 감격했다. 할머니들은 떠나는 나에게 허리까지 굽히시며 무운을 빌어준다.
다시 가로수와 좌파그림자들, 나 셋은 한 몸이 되고 ...
옹벽 뽀샵질의 마스코트는 창녕 특산물 양파양. 시골에서 전동휠체어를 타시는 분이 적지 않다. 지나치면서 인사를 드리곤 의례적으로 지금 이 길이 (오늘의 예상종착지, 시래기밥상이 있는) 영산면으로 가는 길이냐 여쭸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우측 옹벽 밑으로 난 토끼굴로 끌고 간다. 그러더니 이 굴로 해서 나오는 길을 타고 좌로 돌아 계속 큰 길로만 가면 된단다.
성의가 고마우나 공부해온 지도에 따르면 지금 이 길도 거기에 간다고, 비위 안 거스르게 조심스럽게 대꾸를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신다. 되긴 되도 엄청 길다면서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애원하듯 말씀 하시며 가는 걸 보겠다는 투로 휠체어로 안 돌아가시니, 10여분을 설득 당하고 할 수 없이 어른의 분부에 따랐다 ㅜ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던 짬봉 잘하는 집이 나타나버렸다. 점심 먹은 지 2시간 밖에 안 되었지만 확인해보고 싶었다. 주문하고 10여 분이 넘어서야 나온 짬봉은 이 음식의 일반적인 색보다 상당히 진했다. 면발은 훌륭하고 돼지고기도 맛이 좋았다. 적절한 매운맛도 괜찮은데, 역시나 화학조미료의 맛도 단연 발굴이다.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손님들은 꾸준히 들어오고. 식감 좋은 면만 대충 골라먹고 나왔다.
속이 텅 비어 있다고 알려주는 계성 가야시대 고분군(경남도 기념물 3호)의 안내판을 꼼꼼히 읽었다. 경남의 역사란 것이 애잔하게 마음을 긁어준다.
소담한 언덕 하나를 넘어 따라가니 나타나는 창녕 우포 인동초한우 간판.
그러다 나타난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다녀가셨다는 시래기밥상. 원래는 이런 음식점이 있는 것도 몰랐다. 나무숲산님이 전해준 정보가 있기까지. 부지런히 이곳저곳 혹시 님께서 둘러보셨을 수도, 앉으셨을 수도 있는 곳을 핸드폰에 사진으로 담고 있는데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예?” 하며 구레나룻의 사내가 아는 체를 한다. ??? “혹시 중국집에서 만나셨던 분?”
여기 사장님이었다. 대통령님께서는 퇴임 후 시래기밥상을 중심으로 봉하의 반대쪽에 사시는 한 농촌운동가 한 분과 일부러 이곳을 몇 번 찾으셨다고 한다. 대통령님과의 사적인 관계에 대해 물으니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런 건 없다”고 대답한다. ‘있지만 말 하지 않겠다’로 들린다. 시래기와 인동초한우로 대표되는 국산 부자재를 기본으로 한 메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미 성공한 식당의 사장이었지만 그는 농민들의 시위에 지금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초딩 아들 녀석한테도 공부보다 사회를 보는 눈(=시위가 더 중요함)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면서 껄껄 웃는다. 대화의 끝 무렵에 사장님이 나의 까마득한 군 후배임을 알았다.
소주 한 병을 곁들여 밥을 또 먹는다. 시래기를 기본 재료로 삼은 소고기전골, 고등어자반 등 반찬만 6개에 맑은 시래기국이 나오는 식탁이 ‘밥상’이란 메뉴로 단돈 8천원이다. 너무 배가 불러 있는 상태라 전골과 (식당에서 직접 담근) 국산 김치 다섯 조각만으로 식사를 끝냈다. 직원에게 나머지는 손을 안 댔다고 일부러 알려주니 ‘저희 집은 한 번 나온 음식은 다 버립니다.’ 똑 부러지게 대답하신다. 사장님은 식대를 정중히 거절하시며 무탈한 봉하 도착을 빌어주었다. 부곡온천으로 가는 지름길을 자세히 알려주고 찜질방 ‘대천장’도 추천해 주었다. 시래기밥상의 계속되는 성공을 기원하며 나도 봉투 하나 드리고. 동으로 동으로 내려가다 (올라가다^^) 좌로 골프장이 나오는 길에서
좌로 굽은 길에서 온천장 쪽의 우측 길을 탄다. 지름길이라 약 2km를 절약할 수 있단다. 돌간판 뒤에 골프장 경비실이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대단히 자상하시다. 하긴 맨날 골퍼만 보시던 분이 ...
어두움이 내리는 부곡온천 뒷길. 가장 좋아 보이는 몇 곳의 호텔과 모텔에서 숙박가격을 알아보고 한 호텔에서 4만원의 헐값에 온천물로 지졌다.
누적: 38.4km//369.7km 비공식 누적: 386.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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