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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1
2013.05.24 11:22
1
바람은
냄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볼 끝을 스치는
섬세한 촉감 아니고는
인식도 불가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두리번거려도,
잠잠한 흐름으로 내 주변을 배회하는 바람에겐
눈길조차 줄 수가 없답니다.
바람은 그렇게
소리없이 내게 다가와
지친 나를 감싸고 어루만지고 보듬다가
잠시 한 눈을 팔아버린 사이
훌쩍
떠나버리고 맙니다.
나는
불현듯 떠나버린 바람끝 여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진도 찍고 딸아이와 함께 묵찌빠도 하고
어울리지 않게 너스레도 떨어보지만,
여운이
길 수록
마음 속 파동은
아~~ 나도 아직은 남자구나~
2
싫다는 아내를 뒤로 하고,
아이와 함께
에버랜드를 갔습니다.
에버랜드로 달리는 차 안에선
수륙양용차를 타고
기린들에게 밥도 주고,
바로 코 앞에서 새끼사자도 만져보는 상상에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좋아할 때 활짝 웃고,
불편할 때 짜증부릴 줄 아는 아이~
칭얼대다가도 아이스크림 하나에 바로 뒷끝을 털어내는 아이~
매마른 중년~
조금씩 조금씩 감성까지 상실해갈 즈음~
그 아이는 내게로 와서
아빠는 아직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고~
아직도 멋진 남자라고~
힘줄만 튄 손을 잡아줍니다.
3
새로생긴 사파리~
로스트벨리로 가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 식물들을 사진에 담고
아이와 묵찌빠도 하며
맘껏 놀았습니다.
딱밤이든 주먹뺨이든
아이는 언제나 아빠를 타격하고,
과장된 아빠의 고통을 즐깁니다.
이제 몸집이 커진 아이의 딱밤이 결코 만만치 않은 아픔이나,
웃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을만큼이지요.
그렇게 한 참을 소란스럽게 즐기고 있는데,
앞서 있던 어떤 아이 엄마가
내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아이고~
너무 소란스럽게 떠들었나부다!
그런데,
생글거리며 내게 전해준 말은
의외의 정보였습니다.
"저기요~ 입구 앞 쪽에 있는 삼성생명 센터에 가서
정보이용 동의만 해 주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 하네요~"
정말 뜬금없었지요.
한 네 살 쯤된 남자 아이는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주변을 맴돌았고,
젊은 엄마는 아이 때문에 난감해 하면서도,
딸아이와 놀이에 빠져 있는 내게
그런 정보를 전해 준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왜 안하셔요~ "
정말 난데 없는 정보제공자에게
당혹스런 표정을 간신히 숨기며 건넨 말이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저도 지금 알았거든요."
제길~
그런데 저 여잔 왜 말할 때마다 저렇게 생글거리냐?
한 참이 지나고,
딸아이에게 맞아
얼얼해진 등짝을 옴작거리며
주변의 꽃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이
아이의 엄마는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습니다.
"저 아이가 오줌이 마렵다는데,
그 병에 물좀 다 마시고 저 좀 줄 수 없을까요?"
급하게 물을 다 마시고 건네주니,
엄마는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바지를 까내리고, 고추를 내어
시원하게 오줌을 뉘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다시
그 생글거리는 얼굴을 들어
"고맙습니다."
라고 하네요.
나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정말 바보처럼
활짝
웃었습니다.
4
동물의 세계를 모두 보고 나서
저만치 또다시 아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머라 말하는 엄마를 뒤로 하고,
우린 다시 바이킹을 타기 위해 달렸습니다.
바람은
곡선을 타고 옵니다.
그래서 코끝을 스치는 향기처럼
정신히 혼미해지기도 하고,
살짝 아쉽기도 합니다.
그 아쉬움 뒤론
짙은 여운이 남지요.
연신 생글거리는 하얀 얼굴과,
살짝 묶어버린 생머리,
천방지축인 남자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 하나 하나!
심지어는 몇 가락 흘러버린 귀밑머리까지
그 설렘과 떨림을 혼자서 맘껏 즐기면,
나도 살아 있는 남자임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얼굴엔 이미 주름이 쪼글거려도
아~~
설렐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