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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4 01:46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시도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반민주적 행태입니다. 모든 국민이 하나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이런 사고는 저명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우파 권위주의를 민주주의에 반하는 이유로 든 것입니다. 우파 권위주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 즉 정치경제적 기본권을 극도로 협소하게 보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 했습니다, 나치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극도로 축소시킨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작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퇴출 시도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100%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자체가 전형적인 우파 권우주의(유사 전체주의)를 뜻하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임에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는 보훈처와 극우 단체와 인사들의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초법적 발상이고 일종의 범죄행위입니다.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에 기반하며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정치적 기본권에 근거한 다양한 가치의 출동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는 자들의 행태는 민주주의에 반하기 때문에 범죄에 준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는 명백한 사실이며 정부 부처가 위반할 수 없는 절대적 규범입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이렇게도 허약한 이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민들의 경험과 인식이 부족하고 가부장적 전통과의 부조화에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권력을 획득한 자들이 민주주의를 당연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통치의 효율성과 정치경제적 이익의 독점 때문에 민주주의의 기본인 정치경제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가치의 표출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다시 우파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 최대의 적이 완벽한 결과적 평등을 주장하는 과학적 공산주의가 아닌 일방적 가치를 강제하는 우파 권위주의라고 경고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무한정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할 수 없는 자원과 기회의 한계 때문에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헌데 공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재분배가 배제된 사유재산의 무한정인 축적을 추구하는 기업적 논리(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자유와 평등, 박애를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가 갈수록 축소됐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소수의 집단이 정치마저 좌지우지 하면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우파 권위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이버 세상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어나니머스와 일베 같은 집단이나 개인들이 자신의 기술적 우월함을 무기로 불법적인 해킹을 자행하는 반민주적 행태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경제적 우월함만이 권위주의를 형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인식으로 무장한 기술적 우월함도 반민주적 권위주의를 양산합니다. 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주장만이 정의로운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들의 불법적인 해킹으로 인해 저항 불가능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의식도,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 미국이 증거를 조작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후 테러리스트를 사살한다는 명분 하에 무차별 사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들에 대해 '부수적 피해'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완벽한 것은 없다고 해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이나 개인이라면 양도불가능한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무너져 내릴 때 소수의 통치엘리트에 의해서 전체주의적 국가를 목표로 하는 우파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를 극도로 축소시키며 양도불가능한 인권마저 파괴시킵니다. 이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끝이기 때문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고자 하는 시도들도 민주주의를 죽이는 행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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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않는다고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기억의 움집에 족쇄를 채웠다고 흔적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혼에 새긴 기억들은 저승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용서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세월의 힘을 빌려 다시 세월 속으로 들어가려 노력했을 뿐이다.
권력의 심부에서 희대의 추문이 흘러나와
그날의 열망마저 부식시키고 있다.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린 저들의 행태에
어미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그날의 공포와 절망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썩은 냄새 가득한 오월의 싱그러움에 서럽게 오열할 수도 없다.
서러운 것은 그날의 진실마저 왜곡하려는 자들의 행태만이 아니다.
무심한 것은 바람과 햇살, 꽃들만이 아니다.
기억하고 위로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권력의 이름으로 너와 내가 총구를 겨누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날에는 이념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권력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욕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지역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오직 사람을 말했고 민주주의를 말했을 뿐이다.
피는 씻기고 씻겨서 이제는 투명해졌다.
분노는 부서지고 부서져 이제는 꽃가루로 화했다.
바람과 햇살에 누그러들지 않을 원망이 있겠는가.
기어코 퇴색되지 않는 슬픔이 있겠는가.
삶은 이어지고 남은 자는 살아가는 법이거늘
그렇게 하나씩 그날의 아픔들을 치유해 가는 것이거늘
저 광활하고 짙푸른 하늘에 한 점의 구름처럼 떠도는 자들의 눈물이
뚝. 뚝. 그날의 절규처럼 떨어지고 있어도
마음 놓고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를 수 없다.
1980년 자인하게 짓밟힌 오월의 광주처럼
2013년의 오월이 무력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떠난 영혼들을 부를 수도 없다.
이승과 저승 사이 단 하루의 만남마저 배척되고
역사는 더 이상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날에는 오직 민주주의만 말했을 뿐인데
오늘에는 민주주의조차 말하지 못하고 있다.
떠난 임들에게
이제는 노래 한 곡 올리기도 힘이 든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그날의 약속들은 지킬 수 없었는데
이제는 임들에게 노래 한 곡 바치기도 쉽지 않다.
가끔 이곳도 놀러와 주십시오. 늙은도령의 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