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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23:08
손석희 교수의 jtbc행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손 교수가 MBC 생활을 접고 조중동의 일원인 jtbc로 이적하는 것은 뜻밖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고, MBC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도 비전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옮기는 것이지 어떤 이념적 가치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석희 교수가 jtbc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바는 없지만 몇 가지 면에서 볼 때 그의 선택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기업, 특히 계열관계에서 독립했다고 해도 삼성이란 기업의 특성과 방송사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있으면 그의 선택이 일면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과대포장된 종편의 신화
조중동의 신문시장 점유율과 제도권 공론장에서의 초우월적 지위 때문에 종편에 대한 신화가 진보진영의 우려보다 형편없이 적은 것으로 드러난 지금 종편들은 갈수록 쌓여가는 적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 종편을 허용해야 한다면 국내 광고시장의 규모로 볼 때 1개사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 언론학자들과 광고업계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헌데 이명박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준 조중동과 MBN 중에 1개 언론에만 종편을 줄 수 없어 4개사 모두에게 종편을 준 것이 결정적인 패착으로 작용했습니다. 광고시장이란 조중동과 MBN이 보도를 무기로 쥐어짠다고 해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갑자기 수십 배 늘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종편을 위해 온갖 특혜를 부여했지만 시청자들의 외면이 시청률 1%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의기양양하게 출범한 종편들이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광고수주가 형편없이 떨어졌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정 인물들만 초정해서 주구장창 정치토론만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광고 수주가 안 돼 프로그램 투자비를 충당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 초일류 삼성의 신화에 먹칠하다
중앙일보가 삼성과 계열분리를 끝낸 독립적 신문사라 해도 중앙일보와 삼성 간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깨끗하게 나눠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전두환의 강압에 의해 시청률 1위였던 방송사를 뺏긴 이병철 회장이 방송사를 되찾는 꿈을 버리지 않았듯이, 종편 허가를 받았는데 1%대 시청률에서 허덕인다는 것은 삼성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적 결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성이 처방을 내놓았을 것으로 봅니다.
지난 기간 동안 조중동의 신화가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확인한 마당에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것이 jtbc(또는 삼성)의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투자를 하지 않으면 치욕적인 1% 시청률이란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결론내린 jtbc가 본격적인 인재영입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삼성은 초국적기업의 반열에 오른 까닭에 굳이 조중동 시절의 논리를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은 이념적 지향성보다 jtbc를 지상파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란 판단은 저라도 내릴 수 있는 수준의 것입니다. 이념이 방송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종편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 인재영입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실적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업계의 논리이며 그 출발은 뛰어난 인재영입에서 시작합니다.
▲ 인재들로 넘쳐나는 MBC 보도 부분의 몰락
김재철 후임으로 임명된 사장이 제2의 김재철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여서 공영방송 MBC의 신화를 이루어낸 보도 부분 인재들의 박탈감을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최일구, 오상진, 문지애 같은 간판 아나운서의 연이은 이탈에서 이들의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jtbc입장에선 MBC의 간판격인 손석희에게 오퍼를 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요.
보도총괄사장이란 보직의 배팅은 손석희로서도 거절하기 힘들만큼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jtbc의 오퍼에 대한 손석희의 요구에는 편집권 독립에 대한 것이 포함돼 있었을 것이고, jtbc 경영진에서도 종편이란 이념적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손석희라는 인물이 가진 중립적 이미지에 걸맞은 대접을 해줬을 것입니다. 둘의 입장을 한 마디로 하면, Why not 또는 Not bad 입니다.
▲ 양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다
종합편성채널의 성패는 상당 부분 보도 부문(뉴스, 시사프로그램, 토론 등)에 달려 있기 때문에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보도의 중립성 여부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헌데 종편에 대한 시청자의 인식이 뼛속까지 보수 편향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jtbc 입장에서는 이런 치명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에 걸 맞는 중량감 있는 인사의 영입이 최우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손석희 교수의 입장에서도 MBC 라디오 간판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편성권은 물론 출연자까지 제한하며 종편 못지않은 편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MBC에 대한 충성도가 급격히 하락했을 것입니다. 손석희로서도 변화의 필요성이 간절했을 테고, 비록 종편이라 해도 보도총괄사장 자리를 제안하며 그에 걸맞은 제안을 했을 jtbc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양자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으니 이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겠습니까? 문도 두드려야 열리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굴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 국민의 상당수가 정치 혐오를 보이고 있고 중도에 대한 인기가 최고조에 이른 지금이 양자의 이해가 일치하게 만드는데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양자는 서로 손해날 것이 없는 장사를 했다 할 수 있습니다.
▲ 방송계의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까?
이번 손석희 교수의 이적은 상당한 파장을 불어올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MBC는 물론 KBS와 재야 고수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손석희 교수가 jtbc의 보도총괄사장을 하면서 jtbc의 보도 부문이 상당한 변화를 보여줄 경우에는 그 파급효과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손석희가 사장에 취임한 이후에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종편의 이념적 편향성에 상당한 전환이 일어나면 그 파급력은 예상을 할 수 없을 만큼 클 수도 있습니다. 손석희 정도의 신뢰감과 인맥이라면 종편 출현을 꺼려했던 정치인과 재야인사들도 jtbc 출연에 대해서는 전향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현 민주당 지도부가 종편에 출현하지 않아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졌다고 했으니 소위 진보 진영의 인사들의 jtbc 출연이 급격히 늘 것은 안 봐도 삼천리라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런 면에서 손석희의 jtbc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별한 기대도 없고 특별한 실망도 없습니다. 진보적 가치를 철석같이 믿는 저의 입장에서는 jtbc의 보도 부문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 제비가 돌아왔다고 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지독히 추었던 겨울이 가고 저기 어디쯤에는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꼭 그만큼만 손석희의 jtbc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4주기 행사를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