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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09:13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개헌 논의에 착수했습니다. 1987년 체제의 산물인 지금의 헌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온갖 정치적 이슈들이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양당의 개헌 논의에는 찬성합니다. 진보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지만 필자가 아무리 떠들어도 기득권 양당이 들어줄 리가 없을 것 같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글도 이런 면에서 보면 우이독경이며 벽을 보고 말하는 것이 되겠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개헌 논의에 착수한 양당 의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정치권이 국민과 유리된 이유 중 하나가 현행 정당법과 결선투표제 부재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글을 쓰게 됐습니다.
▲ 법원도 인정하는 정당법 개정의 필요성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효특표총수의 2% 미만이면 정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정당법 제44조 1항 3호는 위헌 소지가 다분합니다. 실제 작년 4ㆍ11 총선 후 법에 따라 등록 취소된 진보신당, 녹색당, 청년당 등 3개 정당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오석준 부장판사)는 받아들였습니다.
재판부는 “원내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득표율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적법하게 등록한 정당을 사후적인 등록 취소로 존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신생 정당을 정치생활의 영역으로부터 축출하고 기성 정당체제를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다”며 위헌 제청 신청을 받아들이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해당 조항은 군소정당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나 시ㆍ도의원 선거에만 참여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의 국회의원 선거 참여를 사실상 제한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국민의 결사의 자유에 의해 합법적으로 결성된 정당을 사후적 조치로 해산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 정당들이 정치를 독점하는 병폐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책의 차이가 거의 없고 이념적 차이마저 점점 줄어드는 양당 구조의 보수화는 언론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우경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 정당법 개정으로 실질적 다당제가 실현해야
민주주의는 국민의 중심이 다원화할 때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를 대변하는 다당제는 민주주의 정치의 하부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과 제도 같은 것이 국가의 하부구조를 이루면 그것에 따라 현실에서 다양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걸쳐 구체적 행위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부구조라고 합니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그 유명한 경구는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보조하고 장려하는 행정·입법·사법 및 문화·예술 등의 하부구조가 과시적이며 즉각적인 소비와 경쟁 만능, 승자독식, 쾌락적인 이기주의, 물질만능이라는 상부구조를 형성하는 것처럼.
이런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구조가 유독 한국에서만 거꾸로 된 것도 기득권화한 양당의 정치 독점이 불러온 병폐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반영하고 표출하는 다당제를 가로막는 법률과 제도는 개정되고 재구축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창조적 파괴’라는 것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특히 현대민주주의가 국민들이 개인적인 통로(소송, 인맥, 정보 공개 등)를 이용해서 국가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개인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든 것을 고려할 때 정부와의 개별적 통로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의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헌법 개정 논의와 함께 국민들의 다양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실질적 다당제를 위한 정당법 개정이 동시에 진행돼야 합니다.
▲ 한국정치의 고질병 후보 단일화를 결선투표제로 극복해야
대선에서 각 정당의 후보 중에 유효득표총수의 50% 이상을 넘는 후보가 없을 때 특표율 상위 두 명을 대상으로 다시 재투표를 해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결선투표제는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병인 후보단일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양당의 압도적인 우위 속에서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군소 신생정당의 정착과 발전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며 언로의 다양성을 확보해서 민주주의를 최대화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집단과 계층,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사회에서 보수화된 양당 구조는 기득권의 권리만 강화할 뿐, 정치를 국민과 유리시키는 결정적인 장애물입니다.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정당 구조란 민주주의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며, 극단적인 분열과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강화시킬 뿐입니다.
▲ 헌법 제3조는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된 현 시점에서, 남북한 분쟁의 씨앗 중 하나인 영토 개념을 담은 헌법 제3조의 개정은 현실에 맞게 개정돼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의혹에서 보듯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헌법 제3조는 국론 분열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당위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북한을 실질적 상대 국가로 인정할 때 한반도 전쟁 위협은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북한세습정권의 목표는 체제 유지에 있음은 상식의 수준이니 이런 현실을 헌법에 담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통일을 위한 기틀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분단국가라는 한반도 특유의 현실을 반영해서 헌법 제3조 개정과 정당법의 수정,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보수화된 양당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선입니다. 헌법 제1조에 나와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를 잠식하는 것들은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합니다.
남북 간의 극단적 대결 구도를 평화의 동반자로 순화하고 장기적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남북한의 차이를 극복하는 조치들이 진행되려면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바꿔야 하듯이, 남남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들을 보다 많이 이루어내려면 정당의 다양성이 확보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정당법 제44조 1항 3호의 개정과 결선투표제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민주주의는 도입보다 발전시키고 지켜나가는 것이 더욱 힘이 듭니다. 모든 국민이 깨어 있다 해도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풀어내려면 다당제가 필수입니다. 국민들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는 창구가 난립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많으면 많을수록 민주주의는 굳건해지며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충분한 내성을 갖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작동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신념과 정책들이 국민의 마음을 끌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견해의 차이를 조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저만의 바람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번 개헌 논의가 통치엘리트들의 기득권 나눠먹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시에 정당법 개정과 결선투표제 도입의 전기를 마련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