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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30 18:19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거의 모든 것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두 명의 대통령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했지만 이념에 상관없이 국민 전체를 상대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주는 책임 때문에 진보적 개혁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북통일의 전초기지인 개성공단 구축과 복지 담론 활성화, 절차적 민주주의의 공고화 등 진보 진영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헌데 이런 민주정부 10년간의 결과물들이 MB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부 2달 만에 고사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성공단의 잠정폐쇄와 민주통합당과 진보정당들의 끝을 모르는 몰락입니다. 경제민주화 의제가 종적을 감춘 것도 모자라 사실상 경제부총리인 현오석 장관은 수도권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감사원의 업무보고에서도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 개성공단 잠정폐쇄가 의미하는 것
MB정부 시절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의 반 정도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것은 북한을 옹호하는 것이 아닌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의 의문 제기였고 설사 북한의 폭침이 맞다 해도 우리 영해에서 일어난 일이라 군의 무능력을 질타했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연평도가 휴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의 폭격을 받으며 천안함 사건은 북한 소행으로 결정났고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종북이나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진보 매체마저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확정한 채 북한의 인권문제로 의제를 옮겼습니다. 그 사이에 연평도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구제책을 받았는지, 천안함 사건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은 어떤 상황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어 북한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로켓 발사가 감행했고, 수구와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마저 북한에 대한 성토로 가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원인과 파장 및 향후 대책에 대한 냉철하고 진지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부와 한국 정부의 강력한 기싸움이 극대화됐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서 개성공단의 폐쇄가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정치권과 시민단체 및 입주업체들의 저항이나 활발한 토론이 진행됐을 텐데 이에 대한 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피해액에 대한 소모적이고 일방적인 정쟁만이 남았습니다. 평화통일의 전초기지로서의 개성공단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와 계량화가 불가능한 정치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의 최고 성과물이 이렇게 초라한 퇴장에 이르게 됐습니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도 수구와 보수의 논리가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이의 있습니다’라는 의견 제기가 불가능한 나라가 됐습니다. 특히 참여정부의 2인자였던 문재인 의원의 침묵(제도권 언론이 철저히 보도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통합민주당의 몰락
신자유주의의 득세에 따라 대중이 시민으로서 정치적 결정에 동원되는 노동자 집회나 시민들의 시위 및 대규모 민권운동 등을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서 이익집단 및 시민단체나 민변 등을 통한 소비자 소송, 각종 인권단체나 규제위원회 등을 통한 로비 등으로 개별적 이익을 실현하는 개인민주주의로 변질되면서,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정부와 개별적인 접촉면과 통로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하층민들의 권리는 갈수록 위축됐습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서 나오는 주권재민의 원칙은 계급의식의 부재로 가난하고 공부가 부족할수록 정부의 쥐꼬리만한 서비스를 받는 수동적인 고객이자 소비자로 변질됐습니다. 하층민이나 극빈층일수록 보수 진영에 표를 던지는 것은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받아낼 수 없는 능력 부재 때문에 쥐꼬리만한 서비스에 목숨을 걸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노동자와 하층민, 빈곤층을 대변하겠다고 정당을 만든 진보 진영의 전통적 지지층이 보수 진영에게 표를 던지는 계급적 이해의 역전 현상으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또한 보수 진영은 특정 집단(군필자, 정규직 엄마, 행복기금 수혜자, 강남과 분당의 아파트소유자 등)에 대한 가산점 지원이나 부채 탕감, 양도세 면제 같은 시혜적 복지나 편향적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지지층을 넓혀가고 있지만 전체적인 평등을 주창하는 진보 진영은 커다란 담론에 빠져 지지층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보수 진영은 진보적 의제를 덥석덥석 물어옵니다. 선거가 끝나면 진보적 의제들은 천대받고 대폭 줄어들지만 보수정권 임기 동안 공약이나 정책에서 진보적 의제들을 조금씩이나마 실행합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계급의식은 형성될 수 없고 이는 진보 진영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박에 없습니다. 민주통합당과 진보 정당의 몰락은 이런 보수화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게다가 언론마저 장악됐으니 어디서도 노동자와 하층민 및 극빈층의 삶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진보적 가치는 언급될 수 없습니다. 계급과 정치의 단절을 제도권 언론이 담당하고 있으니 기득권 논리만이 넘쳐나는 세상이 됐습니다. 경제민주화 1호와 2호 법안이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리는 것에서 이는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 개인민주주의
민주주의 정치에서 개별 시민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면서도 중산층 중에서도 상위에 속할수록 개별적 소송이나 정보 공개 등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개인민주주의는 중상류층을 위한 정치를 말합니다. 개혁적 자유주의자(민주당 비주류와 안철수, 김대중과 노무현)들이 보수화되는 과정에서 대중 동원을 기반으로 하는 참여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인맥에 따라 정부와의 접촉면을 개별화하고 다양화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실현하는 개인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로 축소됩니다.
신자유주의가 작은 정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재정긴축과 노동유연화 및 각종 규제 해제를 통한 정치행위의 시장화를 주요 목표로 한 것도, 진보적 가치(1원1표가 아닌 1인1표와 결과에 대한 최대한의 평등, 계급적 이익의 실현)를 대변하는 대중 및 참여민주주의를 정치행위를 개인별로 축소시키는 개인민주주의로 변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도 이런 미국의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통치엘리트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 개인민주주의의 득세는 미국보다 심화된 상태입니다.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보듯이 병원을 옮긴 환자 5명의 죽었는데도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시기에 비하면 너무나 잠잠한 반응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 정치와 사회의 동시 보수화라는 평행이론
개성공단의 허무한 잠정폐쇄와 민주통합당과 진보 정당들의 몰락은 정치와 사회의 평행이론이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대한민국의 보수화는 단순히 ‘안철수 현상’의 열풍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됐습니다. 대선 개입이 명백하게 밝혀진 국정원 사건이 이렇게까지 의제화 되지 못하는 것에서 진보 진영의 몰락은 최후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완료됐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현재를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납니다. 진보는 현재를 과거의 결과로 보지만 보수는 현재를 미래의 원인으로 봅니다. 진보는 과거의 잘못을 찾아 현재를 판단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추구합니다. 즉 미래지향적인 현재의 재구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보수는 현재의 상태를 기준(변증법의 정에 해당한다)으로 해서 미래를 재단하려 합니다. 현재를 바람직한 상태로 인정한 채 부분적인 개선을 통해 미래를 예측가능한 선에서 조정하려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정 상태(기득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현재지향적인 미래를 추구합니다.
신자유주의와 개인민주주의는 진보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평행이론입니다. 어느 것이 앞에 서든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현재를 장악했기에 여전히 기득권의 것으로 남으며 이렇게 국가와 사회는 보수화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