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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3 01:16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정(전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이 경찰수뇌부의 압력 때문에 사건이 축소·은폐됐다고 밝혔습니다. 권 과장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이번 국정원 사건은 전 정권과 현 정권 및 새누리당의 연루 여부까지 발전할 수 있는 초대형 권력 게이트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부실 수사와 권은희 수사과장의 폭로 및 각종 언론보도들을 바탕으로 이번 국정원 사건을 재구성해보겠습니다.
▲ 박근혜 후보, 서울경찰청, 새누리당, 국정원에 의해 사건의 본질이 바뀌다
지난 대선에서 3차 TV토론이 있기 며칠 전에 민주당 관계자들은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대선에 개입하고 있다며 일명 국정원녀의 오피스텔을 급습했습니다. 이명박의 오른팔로 알려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북관련 부처인 대북심리전단을 심리정보국으로 재편하면서 꾸준하게 제기됐고, 몇 개월의 추적 끝에 단서를 잡은 민주당이 범죄 현장을 급습함으로써 대선의 향배를 가를 초대형 사건으로 비화했습니다.
헌데 3차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박 후보는 댓글을 달았다는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며 수사 중인 사건을 예단하는 것도 모자라 민주당이 “집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고의로 성폭행범이나 쓰는 수법으로 차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을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제1야당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로 몰고 갔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억지주장을 기점으로 사건의 본질이 180도 바뀌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이것이 당시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에 대한 일종의 암시로 작용했을까요? 두 후보 간의 TV토론 결과가 문재인 후보의 압승으로 굳어지던 차에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이 서울경찰청장의 지시로 밤 11시30분에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비슷한 시간 새누리당과 국정원도 경찰 발표를 근거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여성이나 집단 성폭행하는 파렴치범으로 몬 것도 모자라 국정원은 이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방귀 뀐 놈이 단체로 성낸다고, 이런 과정을 거쳐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사건이 거대 정당에 의해 저질러진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그 결과 박근혜 후보와의 격차를 줄이거나 역전한 것으로 알려졌던 문재인 후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이 불어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권력기관들과 새누리당 및 박근혜 후보로 이어지는 보수 진영의 고리에 의해서 사건의 실체가 정반대로 변질됐습니다. 보수신문과 종편들이 난리를 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라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들이 일치단결하면 신이나 가능할 일이 창조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이명박은 원세훈과 수차례 독대했다
테니스장 사용에도 불법적인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여러 번 독대했습니다. 독대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배석자 없이 둘이서 나눈 밀담을 알아낼 수 있는 방도는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정부로서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서 어떤 짓도 해야 할 판이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는 정권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불법과 탈법을 일삼았던 것을 고려하면 둘 간의 독대에서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내용들이 오고갔을 정황은 매우 높습니다. 이에 대해 채동욱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밝혀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통해 둘 간의 대화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대강의 윤곽이라도 그려보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건의 핵심입니다.
▲ 결국은 박근혜 캠프의 연루 여부다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사건을 축소·은폐한 것이 대선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은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특히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의 맞장토론이었던 3차 TV토론에서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한 박 후보가 사건의 본질을 제1야당에 의한 집단적인 여성성폭행에 준하는 인권 범죄로 변질시킨 후 대선 판도가 크게 흔들린 것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납니다.
국정원 사건이 변질되는 과정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TV토론을 이용해 박근혜 후보가 화두를 던진 것에서 시작해, 서울경찰청과 새누리당 및 국정원, 보수신문과 종편, 지상파와 YTN 등으로 이어지는 보수화 메커니즘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희대의 정치 사기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문과 박의 3차 TV토론이 끝난 거의 한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더욱 의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채동욱 검찰의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사건의 변질과정이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기점으로 해서 180도 변질됐다는 점에서 지난 정부만이 아니라 박 캠프와 새누리당 대선 캠프 관계자들의 연루 여부도 밝혀야 합니다. 이명박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한 자료들을 모두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 죽은 권력 때리기는 지겹도록 봐왔다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선거 개입과 일부 직원들의 여론 조작 댓글들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계량화할 방법이 없지만 대선의 향배를 가를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분명합니다.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도 이것이지 깃털이나 가지들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권은희 수사과장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사건의 축소·은페 시도를 폭로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검찰 조사에서는 박근혜 캠프와 새누리당 대선캠프의 연루 여부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두 캠프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면 정권의 정당성이 확고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에 대한 분명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죽은 권력 때리기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봐왔기에 이번 수사가 과거의 재판에서 그친다면 검찰 개혁의 당위성은 더욱 커집니다.
국가권력기관의 국내정치와 선거 개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도 채동욱 검찰의 특별수사팀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음은 물론 어떤 정치논리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하며, 역사와 국민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정치에 종사하는 자들이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없다면 검찰의 손을 빌려서라도 썩은 환부는 도려내야 하며, 그것이 검찰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