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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8 08:52
손에 붕대를 감는 권투선수의 경건한 자세로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 발바닥에 테이핑을 했다. 건투를 빈다.
평택역까지 전철로 1시간 40분이 걸렸다. 옆에 앉은 여학생이 무지막지하게 머리를 들이대며 존다. 신문을 접는 척하면서 살짝 밀어주니 눈을 뜨는데 입가로 살포시 침이 넘치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
평택에는 박양의 대선수첩에서 지워진 쌍차 해고자들의 고공농성장이 있다. 얼마 전에 나무숲산님이 끌고가는 바람에 깨어 있는 시민 몇 분과 다녀온 사진이다. 나의 걸봉과는 상관이 없지만 평택은 어수선한 전철역사와 함께 이 분들의 처절함으로 각인되어 있다.
평택역에 도착하니 9시 10분. 역사 앞 택시승강장에서 뻥 뚫린 여인을 만났다.
허공의 여인이여, 그대는 좌측으로 가시나?
잠시 방향을 돌려 평택 외곽까지만 함께하시면 어떠신지.
역 앞 대로에서 우측으로 꺽어 신평로로 접어들었다. 첫 번째 교차로를 건너자 떼를 지은 사람들이 바로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신발을 보니 등산화도 있었지만 운동화가 더 많이 눈에 띄였다. 이 분들도 도보여행? 보행속도가 비슷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흰머리 비중도 비슷하다.
차와 마주보며 걷기 위해 길을 건넌다. 지방도로나 국도 도보여행의 철칙 아닐까 한다. 둘씩 짝지어 다니는 사람이 드문 것을 보니 어디 동호회 회원일 거라는 심증이 간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붙어 안성시 고삼면에서 발원한다는 안성천에 함께 도착했다.
깃발잡이인 듯 한 사내가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살핀다. 쉬고 있는 한 분에게 어디까지 가시냐 물었다. 천안까지란다! 예습에 의하면 성환역까지 가야 성환천을 탈 수 있다고 아는 척을 자 그 남자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옆에 있던 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닉이 ....?’하며 묻는다. 솔로 도보여행자라 소개하고 일행의 정체를 물으니 ‘길 위의 역사학’이란 다음 카페 회원들이었다. 지금 서울에서 제주까지 장기 릴레이도보를 하고 있는 중인데 방법은 나와 같았다. 행운이라면 행운.
10여 분 더 걷자 대홍3리 표지석 뒤로 국보 7호의 갈기비(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를 만났다. 고려 현종 12년(1021)에 창건된 절에 남아 있던 비석이다. 절터는 간 데 없고 갈비, 즉 절의 창건을 알리는 비석만 남았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지었고 백현례가 글을 썼다고 한다. 비몸 앞면 위쪽에 奉先弘慶寺 碣記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데 머리가 거북이 아니라 용이다. 또 얼굴 옆에 물고기 지느러미같은 날개를 새겨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비문 양옆의 문양이 화려하다.
특이한 것은 용이 머리를 정면으로 향하지 않고 우로봐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갈비에 대한 소개를 잠깐 보자. “이곳은 호남과 한양을 잇는 갈래길로 교통의 요지였으나 갈대가 무성한 못이 있고, 사람이 사는 곳과 떨어져 있어 강도가 자주 침몰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어려웠다. 이에 현종이 불법을 펴고 길가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항 봉선홍경사라는 사찰과 광연통화원이라는 숙소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상상의 동물 용은 천계를 통치하는 옥황상제의 사자로 받들어진다. 이 갈비의 용은 나그네의 재산을 털어먹고 사는 강도들에게 주는 속죄 기회의 메시지 즉, 유교적 경고이지 않을까. ‘내가 니들 한 짓 안 봤으니 얼른 원위치시킬 것.’
오마이뉴스 정재학 기자의 생동감 넘치는 설명이다. <이 비석의 귀부(龜趺)는 용의 아들 비희(贔屭)로 용두(龍頭)에 거북이 몸통과 뱀의 꼬리를 조합해서 만들어졌다. 얼굴을 서쪽으로 돌린 형상으로 조각한 것이 큰 특징이다. 얼굴의 옆면은 눈동자를 치켜뜨고 노려보는 눈매가 위압적이다. 또한,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어금니를 꽉 다문 채 입술을 다잡는 근육의 표현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런데, 고개 돌린 앞면으로 돌아서 보면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것 같은 반전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는 마치 십일면 관음보살이 여러 가지 권능과 서원을 드러내기 위해 자상(慈相, 자비로이 웃는 모습), 진상(瞋相, 성낸 모습),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모습), 대폭소상(大暴笑相, 크게 웃는 모습)으로 표현했듯이 진상과 백아상출상을 한 장면에 표현한 것 같아 흥미롭다. 느슨하고 무방비한 경계(境界) 위에 상존하는 허점과 무질서를 미리 대비해 경계(警戒)하고 단속하되 강압이 아니라 중생의 이해를 구하고 온화한 교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을 울린다.>
사당의 그물이 이렇게 뜯겨져 있다. 그물을 친 의도도 모르겠지만 용안을 찍을 수 있는 각도로 정면, 좌우가 다 이런 식으로 뜯겨져 있다. 관리자나 관객 둘 다의 배려가 아쉽다.
간단한 간식이 줄줄이 나왔다. 총 14명인데 나를 포함시켜 15명으로 계산한다. 고맙다. 여성이 네 분이었는데 환갑이 넘으신 분도 계시다. 막판에 좀 처지시긴 했어도 거뜬이 여정을 소화해낸다. 놀랍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성환천으로 접어들었다. 이미지 트레이닝과 달리 성환역을 만나기 전부터 개천이 이어져 있었다. 드문드문 강태공도 보이고 오리가족들의 나들이 모습도 나타난다. 드물게 농로로 들어오는 차가 있었지만 이런 길이 천안시 경계까지 이어진다.
성환역 뒷모습.
11: 48분에 성환천 공식 안내판 앞에 도착했다. 경기도 안성천을 건너 충남의 강으로 넘어온 거네. 일행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1km 정도가 된다. 후미가 올 때까지 즉석에서 점심 메뉴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그러나 GPS에 맛집은 커녕 식당도 잡히지 않는다. 문득 한강 고수부지에서의 짜장면 배달 서비스가 생각났다. 결국 성환천 다리를 건너가 보기로 했다. 잠시 후 보니 파란색 모자를 쓰신 분, 주량이 엄청나다. 저녁 때 조우하지 않았다는 데 살짝 감사했다.
일요일 오후라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식당도 다 문을 닫았다. 마침 지나가던 분의 안내로 가건물로 지어진 임진강한우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일요일이라 갈비탕만 가능하단다. 4천원 착한 가격이다. 누구도 한우인지 수입소인지 묻지 않는다. 4인1조로 소주도 한 병씩 추가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한 병씩 추가되었다. 돌아가면서 개인소개를 했다. 어디에서와 마찬가지로 닉으로 소개를 하면서 얼굴을 익히는데, 무명의 이 사람 뒷꽁무니라 인사할까 하다가^^ ... 모두 큰 박수로 맞아주며 솔로의 용기가 가상하다 덕담 한마디씩 던진다. 역시 밥은 단체로 먹어야 맛이 있다. 전부 싹싹 바닥까지 긁는다.
제일 우측에서 걷는 분이 Smilelee님. 노무현재단 시민학교에 두 번이나 참여하신 재단 회원이자 인천 시민학교 회원이다. 처음부터 살갑게 대해주던데 이미 마음으로 통하고 있었던 것일까. 노짱님의 정신을 기리는 이들이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오늘 하루의 보답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들의 카페 ‘길 위의 역사학’은 도보여행 위주로 전국을 쏘다니고 있었다. 경상도 분들이 많은 게 의외였지만 그래도 함께 낮술 한잔씩 했다고 모두와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가장 즐거운 도보여행 코스 중 한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봄바람 속에서 봉두난발의 자태를 뽐내는 나무도 반갑단다.
거봉포도로 유명한 직산읍의 직산역이다. 부역명이 충남테크노파크라 그런지 대로까지 많은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테크노틱한 십자가 디자인의 교회 건물. 전면과 우측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한 집단이다. 문어발식 교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패키지 서비스를 보장한다. 물론 유료이겠지. 하느님이 저 기업에만 돈폭탄을 내리셨을 리 없지 않은가.
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예수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서 지키려 하지 말고 나가십시오, ... 나가서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교황은 첫 미사 강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나
"걷고 (camminare), 세우고 (edificare), 고백하라(confessare)"
모텔 만큼 흔한 한국의 교회. "거두고, 세우고, 챙겨라!"
천안 방죽안오거리 직전에 만난 신부교 아래 산책길.
이 조형물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의 모습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겠지만 그 사진을 볼 때 오늘 하루를 받아준 그들에 대한 나의 고마움이 전해지길 빈다. 일부는 좌측의 고석버스터미널로 일부는 우측의 천안역으로 나눠지며 작별을 고했다. 역으로 가는 길에 나무숲산님의 응원 문자가 뜬다. 슬슬 힘이 풀려 벌어지던 양 다리가 자세를 바로 한다.
천안역. 원래 17시 도착 예정이었는데 15:37이다. 천안에 가면 천안 사람을 만나지만 난 천안대감님을 만났다. 전날 강화도에서 노영동 정모를 하시곤 바로 오셨단다. 천안에만 있다는 족가네 족발까지 두 사내는 손을 잡고 걸었다^^. 대화중에 대감님의 딸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절절한지 나의 팔불출 등급을 과감히 한 등급 하향조정하였다. 난 '미치겠다' 정도는 아니니.
잠시 후 일면식도 없었던, 천안의 노무현 역사 거봉포도님이 일부러 나오셔서 반갑게 환영해주었다. 어떤 각론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노무현정신의 실천에 있어서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이고 지금도 그러하시다는 데에는 할 말을 잊는다. 다시 얼마 후 오늘의 주인공 지발님이 합석하셨다. 예상보다 이른 나의 도착에 가게 문도 서둘러 일찍 닫고 오셨다. 미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환영식이 어찌나 열렬한지 7시 30분으로 예약한 귀경기차도 물리고 2차에 끌려갔다 ㅜㅜ.
금일 부상자: 그래도 물집 잡힌 오른쪽 발바닥. (천상 좌파인가. 계속 오른쪽 발바닥이 무기력하다.) 쌀가마 얹어놓은 듯한 양 어깨. 짐을 최대한 줄였는데도 그렇다.
누적: 27km/104.2km 비공식 누적: 109.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