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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7 20:22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들이 하나둘씩 철회되거나 줄어들고 있습니다. 후보시절에 했던 공약이나 약속 중에서 제대로 실현된 것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대탕평을 하겠다던 인사부터 시작해서 말장 도루묵이 된 경제민주화,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조경제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수첩과의 소통을 선택한 국민과의 불통, MBC 정상화에 대한 약속 실종,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보는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불신, 쌍용차 국정조사 추진까지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정의롭고 장밋빛 가득한 공약과 약속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파기되거나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인사가 끝났으니 본격적인 공약과 약속 실천이 이루어질지, 아니면 그간의 수모를 되돌려주는 권위주의적 정치로 나아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지난 50여 일 동안 보여준 것이 실제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닐까 우려가 됩니다. 수모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으로 나오면 여기저기서 곡소리 터져 나올 것이고 국민들은 또 다른 힐링을 찾아 헤맬 수도 있습니다.
▲ 외부와 내부 모두로부터의 스트레스 증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내부의 정치적 술수에 의해 국민들은 상처 받고 두려움을 삼켜야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치권의 권력투쟁에 국민들의 삶을 피폐해지고 예민해지며 폭발 직전의 분노에 물들어 갑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빛에선 불특정다수를 향한 적의가 가득하고 아주 작은 문제로 이웃 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곤 합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힐링이란 단어가 열풍처럼 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본질인 체제와 제도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겠다며 우후죽순으로 힐링을 얘기합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뒤로 미룰 수 없는 것이어서 당장 이루어져야 하지만 상처를 준 대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언제든지 상처가 또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 정치적 힐링이란
힐링이라는 것은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자본주의 체제가 잘 돌아가도록 개인들을 규범적 사법제도에 얽매이게 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정신분석학적 처방 같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미셀 푸코가 《광기의 역사》와 《감옥의 역사》에서 자세히 밝혔듯이 정치적 의도가 있는 힐링이란 체제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동원된 인문정치학적 접근입니다.
즉 정치적 의도가 있는 힐링은 정신분석학이 규범적 사법제도를 위해서 하는 일과 같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성원을 기존 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 지배 권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신적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힐링 열풍은 삶 자체가 지옥 같아서 정신적 치료보다 몇 걸음 더 나간 것이라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대한민국이 힐링 공화국으로 변한 것 자체가 수많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국가가 위험사회에 가까워질수록 힐링 열풍은 강해집니다. 작금의 힐링 열풍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깊숙이 위험사회로 접어들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힐링의 반대편에 막장 드라마와 정치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지나친 정치적 힐링은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의 행태가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합(이런 것은 절대 불가능한 전체주의적 발상이지만)을 이루는데 적절한지, 인사는 그런 정신에 부합하는지, 경제민주화는 말장 도루묵이 되었는지 하나하나 따져 바로 잡는 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영혼은 일부 치유됐을지 모르겠지만 정신적 예종이 물질적 안락을 추구하는데 집중하게 만듭니다.
▲ 진정한 의미의 힐링
정치는 갈등의 제도화이고 각각의 갈등과 이익의 충돌 속에 내재되어 있는 국민들의 이해들을 서로 조정하고 균형점을 찾아가는 공적인 작업입니다.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의 요구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대통령된 자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사실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그런 힐링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재인 후보를 통해 정책적으로 이루려했던 것들이 박근혜 정부를 통해 일부라도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맨붕 상태에서 각자의 일자로 돌아간 사람들이 삶의 열정에 빠져드는 진정한 힐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정책을 지지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가 하나에서만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치 엘리트들의 이익만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를 해서 제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소수에게 모든 것들이 독점되는 반칙과 특권이 없고 다양한 갈등과 이해의 충돌이 정치적 행위에 의해 지속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세상을 원합니다.
자유와 평등이 강물처럼 흘러, 소통의 정치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민주주의가 최대화되는 나라, 부의 재분배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선한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 지난 60여 년간 원수처럼 지내며 극도의 공포를 창출하고 있는 남북관계가 평화 속에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통일로 이어지는 나라가 국민 모두가 원하는 나라입니다.
▲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위대한 정치가의 기준은 당 세대만이 아니라 후세대에게도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에 있습니다. 미시적 안목만이 아닌 거시적 관점에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정책의 연속성이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때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오릅니다. 수천 년 전 요순시대에 가능했던 것이 인류가 거의 모든 면에서 발전을 거듭해온 지금에 실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치적 힐링이 필요 없는 나라가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단 하나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는 이 땅에 정착한 최초의 국가가 정립한 홍익인간이란 건국이념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부녀 대통령이 운명이었다면 그 결말이라도 웃음이었으면 합니다.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인 상명하달보다 하의상달의 창조적 파괴의 정치를 할 때만이 이는 가능합니다.
박 대통령의 실패를 바라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 하고 생존의 한계점에 이르러 있습니다. 일시적인 감정의 배출일 뿐,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적 힐링이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선택이 삶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시대의 명령입니다. 그 출발은 자신의 내면과 제한된 정보로 채워진 문제의 수첩에서 벗어나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에서 비롯됩니다.
▲ 힐링이 필요없는 정치가 필요해
힐링이 필요없는 정치를 하려면 박 대통령의 의지가 빈곤과 차별의 사각지대를 방치하지 않은 정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6.25를 겪은 분들이 북한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듯이,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인정할 수 없어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사람들의 날선 견해까지 청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생각과 선택, 결정의 출발점에 국민에 대한 통렬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행적만 놓고 보면 별반 점수를 드릴 것이 없습니다. 윤진숙 장관의 임명 강행으로 인사 실패에 마지막 점을 찍었고 최근에 들어서는 경제민주화까지 포기하려하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5월7일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마저 나쁘게 나온다면 이제는 마이너스 점수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말 많고 탈 많던 인사도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마무리했으니 박근혜 정부의 본격적인 행보가 가능해졌습니다. 더 이상의 인문정치학적 힐링을 바라지 않는 국민들에게 정책은 물론 법과 제도의 운영을 통해 51.6%의 국민이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에 올린 것이 잘한 결정이었음을 증명해주십시오. 필자를 비롯한 48%는 그 대척점에서 서서 부(不)로 더 한 발 옮길지 정(正)으로 한 발 다가갈지 결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