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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7 11:59
다음은 『루시퍼 이펙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아리엘 메라리가 자살폭탄테러 지원자가 계속해서 나오는 메커니즘을 밝힌 내용입니다. 메라리는 오랜 연구와 관찰 끝에 애국심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늙은이들이 분노한 젊은이들을 “폭발적인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공통적인 단계를 정리”했습니다.
ㅡ 우선 과격 단체의 간부들이 반이스라엘 대중 집회에서 하는 발언이나 이슬람교의 일부 원칙 또는 팔레스타인의 군사적 행동을 지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애국적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을 파악한다. 그 다음에는 젊은이들을 초대해 조국을 얼마나 진지하게 사랑하고 얼마나 이스라엘을 증오하는지에 대해 토론하도록 한다.
그러고 나서 특수 훈련을 받으라고 권유한다. 훈련을 받기로 동의하면 3명에서 5명의 젊은이로 이루어진 소규모 비밀 세포조직의 일원이 된다. 이들은 선배들로부터 폭탄 제조, 변장, 표적을 선택하고 폭탄의 시간을 맞추는 것 같은 요령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슬람교를 위해서 “살아 있는 순교자(알 샤히드 알 하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을 비디오테이프로 만듦으로써 개인적인 공약을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이들은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다른 손에는 총을 드는데, 머리띠에 있는 휘장은 그들의 새로운 지위를 나타낸다. 가족에게 보내진 이 비디오는 이들에게 마지막 행동을 결정하도록 구속하는 족쇄가 된다.
모집된 청년들은 또한 이들이 알라의 옆자리에 앉게 될 뿐만 아니라, 친지들 또한 이들의 순교 덕분에 천국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거라는 허황된 선전을 듣게 된다. 그리고 가족에게 매달 지불하는 연금의 형태로 상당한 재정적 보상을 약속함으로써 자살 공격을 유혹하는 파이에 단맛을 첨가한다. 이들이 임무에 성공하는 바로 그 순간, 지역 사회 곳곳의 벽은 이들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로 장식되어 다음 번 자살 테러범들에게 귀감이 된다. 폭발할 때 튀어나온 못과 파편으로 아주 고통스러울 거라는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첫 번째 핏방울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고 알라신 옆에 앉아 오직 쾌감만 느낄 거라고 보장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들의 마음은 평소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하도록 세밀하게 분비가 되었다. 물론 비인간화를 위한 미사여구도 희생자들의 인간성과 순수성을 부정하는 데 일조했다.
분노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영웅으로 변신한다. 죽음에 이르는 이들의 행동은 억압받는 자들의 대의를 진정으로 믿는 자로서 자기희생과 완전한 헌신의 모델이 된다. 이 메시지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 자살 공격자들에게 크고 선명하게 전해진다...이것은 무분별하거나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대부분 국가의 젊은 성인들에게서 보아오던 것과는 아주 다른 사고방식과 감수성일 뿐이다.
이런 세뇌 결과로 본성은 아주 착한 젊은이들이 자신이 뭔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젊은이들의 자살과 살인은 인류라는 가족의 천에 깊은 상처를 내는 것으로, 모든 나라의 연장자들이 합심해 막아야 한다. 늙은이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젊은이의 희생을 부추기는 것은 지역 정치와 이기적인 전략을 넘어서는 악의 한 형태로 간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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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자살폭탄테러가 단순히 이슬람 종교의 과격성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종교를 공부해보면 매우 평화적인 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모든 종교가 평화를 지향하지만 언제나 소수의 근본주의자(원리주의자)들이 문제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을 세뇌시켜 자신의 목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늙은이들의 편집광이나 사악한 충동질이 사단을 일으킵니다.
위의 글에서 보듯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자들은 세뇌당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경에까지 몰려 자살폭탄테러를 벌입니다. 어느 누가 죽음 앞에 서서 두려움이 없겠으며 가능하면 피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순수한 애국심과 종교적 열정으로만 이런 폭탄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본능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국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세뇌당하고 테러를 자행하지 않으면 가족이 피해를 입고 자신은 배신자로 몰리니 도살장에 끌려가듯 테러에 나섭니다.
이번 보스턴 폭탄테러가 이런 자들의 소행이라는 것은 섣부른 결론이고 지양해야 하는 추측입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행사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준비된 테러라는 것입니다. 이는 미국 내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테러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미국 사회는 극도의 혼란과 공포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극단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테러의 본질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 내가, 나의 가족이 타겟이 될 수 있다는 항상성에 있습니다. 이런 상시적인 테러 공포에 시달리면 내 주변의 평범한 이웃의 사소한 행태에도 극도의 두려움과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아마 이번 폭탄테러의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미국 사회는 무슬림이나 불법체류자들을 향한 개별적인 테러와 증오(또는 혐오)범죄가 이어질 것입니다.
FBI 등 미국의 수사기관들이 광범위하고 신속한 수사를 통해 범인을 최대한 빨리 잡아낸다고 해도 대규모 야외행사 때마다 미국사람들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오랫동안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폭탄테러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9.11테러처럼 미국을 상징하는 건물이나 기관에 대한 테러가 아니라 미국 내에서 이라크 등지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와 깊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고 범인의 국적이나 테러단체 가입여부에 따라 그 파장은 보복 전쟁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시 정권처럼 전면전을 벌이지 않겠지만 국민들이 받았을 충격과 보복 심리는 오바마로 하여금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보복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미국 권력기관들과 강경파들의 요구도 드세질 것입니다.
이렇게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이번 폭탄테러 성공으로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반미 테러조직들이 이번 보스턴 폭탄테러를 미국에서의 폭탄테러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은 더욱 커지고 대담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의 국토안전부와 CIA 등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 긴장감을 조성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인들은 외부와 내부의 이중의 압박 속에서 상시적인 공포가 만연한 위험사회 증후군에 시달리게 됩니다. 미국인들의 스트레스가 커지면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전체가 몸살을 앓게 될 것입니다. 행정 악이 다시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절호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는 강력한 보복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동력으로 작동합니다. 강경파들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의 대응이 강력하면 할수록 미국 밖에서는 오늘도 일부 극단적인 테러단체들의 회유와 세뇌를 받고 있을 젊은이들이 자살폭탄테러를 위해서 철저히 영혼을 파괴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종교의 근본주의와 착취 자본주의의 탐욕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띠는 이런 폭탄테러는 인류가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걸어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최악의 사건입니다.
피해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받아야 하고요. 테러를 일으키는 자들의 우두머리들과 보복을 유발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배출될 것이고 법정에 세워지기 힘들 것입니다. 근본적인 처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류는 이런 식의 삶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화를 위한 노력은 국제적 공조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또한 각국의 이해가 달라 쉽지 않습니다.
특히 테러와 보복이 되풀이 돼야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군산복합체와 에너지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인류 진보의 대가입니다.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란 존재할 수 없고 각각의 종교에서 극단적인 성향을 갖는 근본주의자들이 존재하는 한, 강자들의 착취 자본주의적 탐욕과 어우러진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은 인류의 숙명이 된 듯합니다.
어제 이어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평화로운 세상, 언제나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