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과 공동善이 곧 정의는 아니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실체적인 정의의 본질이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란 가치중립적 요소가 현실화되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유동성 때문에 우리는 정의의 딜레마에 부딪칩니다. 그렇다면 정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정의란 어떤 형태로 나타나 우리의 삶을 규정합니까? 바로 법입니다. 법이란 생리적으로 법의 판결이 그렇듯이 좋은 삶과 정의를 묻는 질문에서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법이란 좋은 삶과 공동善을 묻는 질문에 분명한 가치중립성을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의의 유동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유동적이고, 편재적이며 전복적인 잠재성對 법의 고착적이고, 집권적이며 지배적인 가시성은 서로 대립할 때가 많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이명박 가카가 주장하는 법과 정의의 실전문제로 들어가면서 최근 국기문란 사건인 민간인 사찰 사건을 예로 들어 이 파렴치한 정권의 실태를 고발해보겠습니다.
우리 가카의 스캔들 감추기 신공은 대개가 다음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불법, 탈법적 정책 시행 → 문제가 됨 →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대부분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문제라고 둘러 댐 → 친절한 금자씨 들인 조중동,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방어해 줌 → 반대가 있던 없던 하고자 했던 대로 진행함 → 그 틈을 타 물적, 내용적 증거를 조작, 은폐함 → 결과로는 심증은 있는 데 물증이 없는 전형적인 문제적 사안으로 남음, 최대한 사과없이 시간을 끌고 버팀, 혹은 결정적 문제가 공개되면 가카 자신이 나서서 한 일임에도 '본의 아니게'나 '진심은 그것이 아니었지만'이라는 정작 자신이 아닌 자신의 주변 사람에 의해 일이 잘못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진실을 호도하는 것으로 흐지부지되게 만듭니다.
이제 총선 D-6일. 어떤 후보를 뽑아야 할까요? 정의론에 입각해서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지적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 헌신한 자'가 정답입니다. 일점이라도 사적인 이익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살아온 삶이라면 그 후보는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리십시오. 혹시나 했다가 우리는 4년을 넘게 나라의 주인이면서 사기 당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쯤 되면 아마도 새누리당이나 가카, 근혜씨와 개인적 인연을 맺었던 인간들은 다 쓰레기라는 것을 눈치 채셨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이 그렇다면 2013년 체제로 가는 첫 단추는 제대로 꿰어질 것 같습니다. 자, 동지 여러분,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분노의 짱돌을 던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4월 11일이 바로 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