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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2 12:56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청문회도 받지 않고 사퇴한 김종훈이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올린 기고문에 대해 마냥 비난만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들이 김종훈의 기고문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의 기고문 내용 중에서 몇 가지 부분은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 들어있습니다.
한국의 정치관행과 언론의 행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장관직을 수락한 그의 처신은 그가 고백한 것처럼 ‘순진한 결정’이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철없는 아이의 변명 같아 심히 불쾌합니다. 하지만 김종훈이 지적한 몇 가지는 우리나라의 폐쇄성과 기득권들의 담합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일으렀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제 김종훈 사퇴자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차분해졌으리라 믿고 이번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저의 삼촌께서도 모 대통령의 초청으로 국내에 들어온 케이스라 김종훈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이 남 일 갖지 않아 뒤늦게나마 글을 쓰게 됐습니다. 물론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의 삼촌과 김종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국내에 들어오게 된 단초는 동일합니다.
▲ 기득권의 어마어마한 벽 앞에서의 아웃사이더
김종훈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의 정치 현실과 기업 환경에서 ‘아웃사이더’였던 저는 더 이상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해져 장관 후보직을 사퇴했습니다......변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정가와 관가 및 일부 재계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저의 장관직 임명에 대한 반대의사를 나타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이루고 있는 부류들의 전형적인 행태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득권들은 유별날 정도로 다양하게 얽혀 있어 그 속으로 아웃사이더가 진입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힘듭니다. 정가와 관가 및 재계의 폐쇄성은 양당 구조와 학벌, 혈연, 지연, 정략결혼, 전관예우, 후원 등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제가 사업을 할 때 우리나라 0.1%와 사업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인맥을 통해 우리나라가 정가와 관가 및 재계가 얼마나 얽히고설켜 있는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심부에서 행정·입법·사법은 물론 재벌 오너, 언론재벌 오너까지 그들만의 리그는 너무나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국민의 99%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의 인맥을 실감하지 않는 한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에 이르게 된 것도 결국은 이들의 눈밖에 낳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발전하려면 이 가공할 카르텔이 깨져야 합니다. 그들이 쳐놓은 기득권의 벽이 깨지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세대교체나 인적 자원의 선순환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김종훈은 그 앞에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 저급하고 선정적인 언론들의 행태
철저히 상업화되고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언론들의 현주소를 지적한 김종훈의 발언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종훈의 기고문에서 “인터넷은 물론 주류 언론들까지 마녀사냥과도 같은 독설로 가득 찬 반응들을 쏟아냈”다는 부분은 매우 적절한 지적입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의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와 선정성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칩니다.
특히 제도권 언론마저도 인터넷 판에 들어서면 다른 인터넷 언론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로 가득합니다. 한 마디로 쓰레기의 홍수입니다. 차마 어디에 눈을 둘지 민망할 지경의 광고와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규범마저 던져버린 낚시성 기사와 광고 및 홍보성 보도들의 범람은 이게 무슨 언론인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최대한 선정적인 타이틀과 내용들이 아니면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없는지, 아니면 우리 독자들이 그래야만 읽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인터넷 언론들의 황색 저널리즘은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기사 내용들도 하나같이 저급하며 출처도 없고 거의 찌라시 수준의 것들로 넘쳐납니다. 어느 기사에도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 외부에서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의 정확성
김종훈의 기고문 중에 “천연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그동안 근면한 국민들과 끈질긴 기업들의 노력으로 수출 주도의 경제를 국가로 성장해왔”지만 “상위 10개 대기업 재벌이 국내총생산(GDP)의 80%를 차지하는 반면 이들이 고용하는 인구는 전체 노동시장에서 6%에 불과한 것”에 대해 지적하며, 이는 “대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무역 파트너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말한 부분은 시의적절한 지적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은 실업률, 특히 대학 졸업자들의 실업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높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 등 땅덩어리가 훨씬 큰 이웃 나라들의 경제 성장 가도에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이 위협받고” 있다며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수출에 집중하는 대기업 대신 과학과 통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한 것도 정확한 지적이었습니다.
헌데 우리가 언론과 방송사들을 통해 김종훈의 기고문에 대한 뉴스와 보도를 접하면서 이런 부분을 언급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김종훈이 기고문을 통해 언론의 행태를 비난하자 기고문 전체를 진지하게 보도하기는커녕 자존심이 상한 듯 그를 비난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언론 보도에 놀아난 수많은 사람들이 김종훈을 비난하는데 합류했습니다.
저는 김종훈 사태의 전말과 그의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문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들을 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분명 한국의 장관감은 아니었지만 그가 지적한 것들 중 상당수는 정확하고도 폐부를 찌르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헌데 이런 부분이 완전히 묻혀버리고 지독히도 폐쇄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을 유도하고 드러내는 모습들에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해진 위험사회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헌데 인터넷과 SNS의 보편화는 온갖 정제되지 않은 즉각적이고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내용들로 상대에게 완벽함을 요구합니다. 이런 한국적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고 단 하나의 실수로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타를 당합니다. 감정의 배설이 빠르면 이성이 작동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이 쌓이면 패턴을 형성하고 습관이 돼서 사고를 지배하게 됩니다. 마약에 중독되듯 개개인의 심성도 극단적 감정의 표출에 익숙해지고 언어의 폭력성은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연결됩니다. 일어나서 안 될 일임에도 상대의 불행에 통쾌해하며 독설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상대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행위들은 우리나라가 이미 위험사회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김종훈의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헌데 그의 기고문은 최악의 대접을 받았고 정치와 관가, 재계와 언론의 엘리트들은 견고한 카르텔에는 조그만 흠집도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기득권에 대한 아웃사이더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저항하고 연대해서 투쟁하려는 것도 우리가 저들에 대해 너무나 미약한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김종훈이 우리와 같은 아웃사이더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 자신의 손아귀에 올려놓고 있는 기득권의 카르텔에 대해서는 같은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우리가 김종훈의 기고문에서 기득권 언론들의 분탕질로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1%도 안 되는 통치엘리트들의 견고한 기득권 밖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 죽어라고 노력하지만 거의 대부분 실패하는 유배지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1%에 대한 99%의 식민지,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