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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3 11:30
어제 재단 회원 몇 분과 번개모임을 가졌습니다.
늘 그렇듯 대화의 소재에 끝이 없습니다.
세 번째 걸봉 이야기는 금주를 결심한 순간님과 행동하는 양심 술설교수님께 바칩니다.
두 번째 걷기에서 요령을 터득했다. 도시락은 생략하고 메실 음료수 2통과 초콜릿만 준비했다. 아직 쌀쌀하지만 남방은 벗어버리고 재킷은 내피를 분리하여 배낭에 넣었다. 최적의 습기관리 능력이 있다는 등산용 티셔츠를 입고 다시 노짱님 캐리커쳐가 인쇄된 노란색 반팔 티셔츠를 껴입어 몸을 가볍게 했다. 마지막으로 유효기간이 많이 지났으리라 추측되는 스프레이 선크림도 챙겼다. 자연보호 차원에서 최후의 한 방울까지 이 낯에 바르고자.
결과적으로, 둘째 날 인릉산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해 꼼꼼하게 예습을 했음에도 생고생으로 마무리 된 하루였다.
9시 30분에 판교역 도착. 역내 청소가 잘 되어 있나 순시하다 특별한 작품을 만났다. 디지털 도시에 걸맞는 디자인 조형물이다. 또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 했다. 반쪽짜리 무지개도 보이고 그 좌우에 원형의 무지개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때 나타나는 무지개다. 그런가?
역사 밖으로 나오면서 행군 준비운동을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최소한의 발끝 면적으로 발판을 디뎌주면서 발가락과 발목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다음 층에서는 한쪽 다리를 길게 뻗어 서너 칸 위의 발판을 디디고 무릎을 잔뜩 굽혀 종아리, 허벅지와 장딴지를 예열한다. 스트레칭은 천천히 그리고 호흡과 함께.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으니 편하게 몸을 풀 수 있다. 1호선, 2호선, ... 신분당선 등 전철구간이 새로 생길 때마다 번호 크기만큼 전철역은 땅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래서 등산에 나설 때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은 준비운동 하기에 딱 좋은 코스이다. 물론 통행인이 많으면 안 된다. 역사 밖에 나와 허리를 살살 굽혀 주고 꺽어주는 것으로 준비운동을 끝내고 선크림을 얼굴에 좍좍 발라줬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지? 판교역 3번 출구에서 잠시 헷갈렸다. 앞 도보구간의 마지막 코스 화랑공원을 생각하고 판교역로로 길을 잘 잡았다. 이내 그리 길지 않은 낙생지하차도를 통과했다.
수내로 옆의 탄천이다. 좌측으로 비스듬하게 햇볕을 받으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탄천에서 10시 방향에 분당구청이 있고 그 뒤로 분당중앙공원이 있다. 공원을 옆으로 끼고 계속 걷는 게 오전의 일과이다.
몇 분 걸었을까. 윤YS라는 분이 보낸 <시간의 방위>라는 넘이 가로수 옆으로 쓱 튀어나온다. 귀신 잡는 방위는 들어봤어도 시간의 방위는 처음. 건물주인의 무례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왜 보도를 막고 서 계시는 건가. 아파트 군락 만큼 길게 늘어선 가로수와 대화하며 샛별삼거리에 있는 샛별중학교까지 걸었다. 우측의 동국대학교 분당한방병원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서 오늘의 희로애락이 시작되었다. 꺾지 않고 직진하여 이마트 분당점까지 가는 게 원래의 목적이었는데 남방 즉, 좌편으로 비스듬하게 햇볕을 받으면서 가기만 하면 된다는 얄팍한 상식과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앞으로 터득할 진리이겠지만 도보여행 때 호기심만 줄여도 두 다리가 편하다.
불곡산은 900m만 걸어가면 되는 313m 높이의 동네 야산이었다. 도보여행 경험이 있었다면 불곡산 산행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을 거다. 비록 43번 도로 때문에 분당에 소규모 삼팔선이 생겼지만 블곡산은 오늘 가고자 했던 곳 중 하나인 구성역으로 계속 능선을 타고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낮은 산이었지만 정상까지 계속 올라가는 길이라 조금 힘이 들었다. 어찌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30분 정도 오르니 능선 위를 지나가는 머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능선에 서자 일요일이라 그런지 참 많은 분들이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부지런히 출퇴근하고 있었고. 이 여행자는 산 중간에서부터 올라갔던 것이다.
분당시장의 인문정치적인 감각이 돋보였다. 명상의 숲 구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를 적어놓은 판자때기가 내 폰카에 잡힌 것만 11개다. 맘의 평화는 거기까지. 정상에서부터 나의 협소한 지리상식과 스마트폰 부재 덕분에 생고생이 시작되었다. 친절한 동네 아저씨들의 정보로 불곡산을 타고 구성역을 향해 힘차게 걷는다고 걸었는데 서쪽 죽전디지털밸리로 향하고 있었다.
걷기에 딱 좋은 강도의 바닥과 적당하게 빽빽한 나무, 화사한 햇살. 이 길이 맞아야 돼ㅜㅜ. 산악 오토바이커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통나무가 군데군데 길을 가로질러 묻혀 있었다. 그러나 산책은 한시간 반도 안 돼 끝나고 다시 콘크리트 숲이 나타났다. 능선을 너무 빨리 포기했다고 판단하고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갔다. 왼발에 ‘미련’ 오른발에 ‘곰탱이’ 구호를 붙이면서.
분홍과 파랑색 타일로 꾸며진 건물 좌측이 동부화재 데이터센터이다. 거기 뒤 아파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우측의 송전탑을 끼고 빙 둘러서 내려온 거다. 씩씩 ... 이 미련 ㄱㅌㅇ ...
죽전1동 하늘의문 성당이다. 그 아래는 온갖 이름의 마을로 불리우는, 천주교 아니면 개신교 교회에 다닐 양들이 사는 아파트숲이다. 신도시에서 보는 대형 교회들은 건물들이 대부분 당당하고 규모가 크다. 미학적인 가치보다는 그냥 마피아가 애용하는 철제 캐비닛 모양들이다.
성당 사진을 찍은 곳의 뒤편 산으로 통하는 길, 구성역으로 향하는 길. 용인천주교묘지로 넘어가는 길인데 사람을 위한 길은 없다. 두 곳이 있지만 묘지 쪽으로 가면 가고자 하는 길과는 정반대이다. 또 한 곳은 아까 내려왔다 올라갔던 그곳이다! 일부러 그렇게 하래도 못 하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모친께서 파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다. 시장을 가는 길에 뭔 구경거리가 그리 많았는지 빙빙 돌아가다 채소류를 파는 가판대 앞에 섰다. 그때 나는 마늘을 샀다. 뭘 사오라고 하셨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단지 국에 넣을 거라는 건 알았기에 그게 파 아니면 마늘이라 추측했고 엄마가 저 긴 파를 어린 나보고 사오라 시키실 리는 없을 거라, 나 좋은 쪽으로 결정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모친은 그래도 자상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다. 그리고 나는 또 한번 시장을 다녀와야 했다. 이번에도 구경을 하면서 갔지만 제대로 사왔다. 아까 사온 것 빼고 내가 아는 것을 사오면 되었기에.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내마음 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서 다시 확인하고 파를 사왔다면 비록 두 번의 심부름이었지만 열패감은 없었으리라. 다 커도 마찬가지였다.
포은대로 갓길을 타고 서쪽으로 향한다. 자동차를 타고 수없이 왕복한 길. 신호등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대로를 횡단하여 남으로 남으로.
이강모의 사랑이라는 작품이다.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를 왼쪽에 두고 가다보면 나타나는 죽전 새에덴교회 건물 바로 옆에 있다. 맞다. 사랑은 퍼큐 해야 나온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또 우리는 주님을 향해 퍼큐하는 거다. 작가의 의식에 감사 드린다. 퍼큐.
1:55에 도착한 보정역. 오늘부터 도시락을 생략한 이유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제 그렇게 많이 보였던 방송국 맛집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도 거르고 커피 한잔만 마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초딩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따라 갈 때 가게들이 있음직한 곳을 선택하게 된다. 초콜릿 맛이 일품이다. 아침을 안 먹었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헝그리 모드로 급진입한다.
잠시 헷갈렸다. 칼빈대학교와 상갈역의 기준이 될 루터대학교를. 칼빈과 루터, (파와 마늘도 아니고) 두 글자는 맞는데ㅜㅜ. 칼빈과 루터가 상갈역 부근에서 같이 사는 줄 누가 알았겠냐고. 자세를 바로 하고 진지하게 배에게 묻노니, ‘진짜 배 고프지 않은 거지?’ 견딜 수 있단다.
삼계탕은 얘들 생각이 나서 접고 솔직히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1인분은 안 된단다. 어쩔 수 없이 먹었다. 한방삼계탕도 그렇지만 김치와 깍두기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국물이라도 남기면 쥔장부부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일념으로 정말 싹싹 바닥까지 긁어먹었다. 잘라놓은 김치와 깍두기도 싹싹. 일어나기가 힘들다. 미련 ... 씩씩 대며 일어나는 내 옆으로 산책로로 꾸며진 개천이 흐르고 그 덕 너머로 구성역이 보인다. 구성역이 있는 23번 도로를 타고 상갈역을 지나는 곳까지 4.8km까지만 갔었어야 했다. 거기에서 우회전 했어야 했다. 그걸 깨달은 거는 2km를 더 걸어 보라지구 지나 한일마을입구에 도착한 후였다.
보도도 없는 이런 길들을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OTL. 17:00경 여대생 정도의 아이를 만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물었다. 아이의 첫 마디. “스마트폰 없으세요?” 가능한 한 가장 큰 스마일을 띄면서 내 폰은 삼성 Anycall SHW-A280K의 구닥다리 폴더 폰이라 답변하고 청명역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은가 의견을 구했다. 아이는 '스마트' 폰을 보여주면서 차라리 자기 걸음으로 한 시간짜리 상갈역을 추천하였다. 조금만 내 낯짝이 더 두꺼웠으면 그 아이의 폰으로 청명역 가는 길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추천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아이를 만나 회군한 장소이다. 아마 용인시 보라지구는 당분간 잊지 않을 거 같다. 그래도 목숨은 귀하니 다시 횡단보도도 없는 국도를 타는 모험은 언감생신이라. 오른쪽으로 빙빙 돌아 왔던 길을 거슬러갔다. 집에 와서 확인하니 적어도 두 정거장에 해당하는 거리였다. 거기에서 한 정거장만 더 갔다면 애초의 목적지인 영통역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보라지구 한 아파트 단지에 세워진 최신현의 <태초의 아침>이라는 조형물이다. 한 방울의 물이 수평으로 지구를 관통하는 모습이다. 돌아가지 말라. 힘으로 뚫어라. 3차원의 해법인가?
경기도 용인시 기**의 상갈동에 있는 상갈역.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기 전에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농부 부부의 심정으로 역 앞 버스 정류장 벤치에 널부러져 한 대의 담배를 태웠다. 태초의 아침을 뚫은 것은 이 타일 위에 구워진 화살이었나. 하지만 상갈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보면, 마을 앞에 흐르는 내가 칡넝쿨 같은 형상이라 '갈천(葛川)'이라 하였다고 하며 '갈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갈천의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상갈동이 되었다고 한다. 화살과 활이 왜 등장할까. 차라리 쌍칼이 어땠을까. 상갈역과 헷갈리는 신갈역은 신촌과 갈천의 첫 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런 멋대가리 없는 발상이 나온 때가 1914년이라니 짐작할만하다.
17:55이었다. 많이 걸었나보다. 분당선을 타고 선정릉까지 1시간 4분이 걸렸다.
25.9km/45.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