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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 21:20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는 말과 언어의 산물입니다. 물론 인간의 삶 대부분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지만 정치는 유난히 사용하는 말과 언어에 의해 천양지차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의미를 표출하는 언어의 선택은 정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명박이 ‘한반도대운하’를 ‘4대강공사’로 바꾼 것이나 모든 정책 앞에 ‘선진화’니 ‘녹색’을 붙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분명 좋은 정책인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 선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정적 인식과 정책과 현실과의 괴리를 불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지하경제 양성화’입니다.
▲ 정치언어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란 다른 말로 하면 ‘조세정의 실현’입니다. 둘은 외적 지향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내적 의도에서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지하경제라는 말은 탈세(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상관없이)와 관계되는 모든 경제행위를 말합니다. 양성화란 이 모든 경제행위에 세금을 물려 음성적인 거래를 없애겠다는 정책입니다.
헌데 지하경제 중에는 정부가 하지 못하는 복지를 가족이 대신(부모나 형제의 주거비나 생활비 제공 같은 것)하거나 극빈층을 위한 예외적 면세혜택처럼 긍정적인 것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겠다면 이런 것들에도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 됩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행위들에 과세하겠다는 것이 아닌데도 공무원이 그렇게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박 대통령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기업들에게 과도하게 주어졌던 각종 면세혜택과 고소득자이면서도 이런저런 방법(예를 들면 연간 국민연금을 4000만 원 이상 받는 사람들이 피부양자 등록으로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것, 5월부터는 이것이 불가능해졌다)으로 탈세하는 것들을 바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기업이나 고소득자의 역외탈세, 고위공직자의 탈루, 기업들의 접대비와 비자금 조성처럼 최악의 지하경제 행위들을 양성화할 수 있을지가 양성화 성공의 핵심이 되는데 이게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기업과 고소득자의 역외탈세의 경우 잡기도 힘들지만 그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층이라 그들에게까지 칼날을 들이댈지, 흉내만 낼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지하경제 양성화란 정치언어는 박근혜 대통령이 부자 증세를 외면하고 국채 발행 등으로 복지재원이나 추경예산 등을 마련한다면 상당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입니다. 정치언어 선택의 중요성은 단어 몇 개에 의해 극과 극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정치언어를 선택했다면
만약 박 대통령이 조세정의 실현이란 단어를 선택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조세정의의 실현이란 각종 교묘한 수단을 동원해 탈세와 탈루를 밥 먹듯이 하는 개인이나 단체, 고소득 자영업자, 기업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을 내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하려고 하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화일보에서 인용
헌데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정치언어에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탈세나 탈루하는 경제행위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줄 뿐이지 불법적인 일이거나 파렴치한 행위라는 낙인을 찍지 않겠다는 것인데 반해, 조세정의 실현이란 민주주의 국가에서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행위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처벌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득이 있는 곳에 조세한다는 사회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지도자의 의지 표명과 같습니다.
같은 정책적 목표를 가졌다 해도 국민들의 호응도는 조세정의의 실현이 지하경제 양성화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과 탈법을 바로 잡아 조세의 정의를 세우겠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또한 조세정의 실현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부자 증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데 유리합니다. 불평등을 줄이려면 조세정의 실현만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하게 자신의 정치언어에 구속되는 경우 정말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하경제 양성화는 부자 증세라는 강력한 부의 재분배 정책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집권 기간 동안 지지층 이탈의 위험을 자초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과의 소통이 줄어들고 지지층에 매달리다 국민적 저항이 시작되곤 합니다. 모든 정부는 이런 것들이 쌓여 스스로의 레임덕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정치인들의 언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납니다. 정치언어에는 지도자의 인식까지 묻어나오기 때문에 언어의 선택이 제대로 됐을 경우에는 국민들의 호응도가 높아지고 정책의 수정의 타당성도 쉽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 모로 가도 서울, 아니 기왕이면 다홍치마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언어 선택은 그의 국정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선택한 정치언어들로 볼 때 통치의 일방성과 결정의 집중화라는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모로 가도 서울이면 된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엿보입니다. 국민국가가 중앙집중화를 통해 발전한 것처럼 대통령이란 자리는 행정의 수반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입법과 사법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최고 지도자의 위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대통령 주변에는 수십 겹의 단계들이 처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권력의 심부에서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투명한 수십 겹의 베일 안에서 세상을 보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어 자신의 내면과 측근의 감언이설을 통해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측근 정치라는 거리의 파토스는 국정원 등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이용하기 십상입니다.
이는 21세기판 유신에 다름 아닙니다. 대통령과의 거리에 따라 권력의 정도가 달라진다면 역사왜곡이나 방송장악, 낙하산 인사의 남발 등 전 정권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전철을 밟게 됩니다. 권력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일부 과잉충성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들이 난무하게 되고, 이는 격렬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오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비타민의 새 MC로 발탁된 은지원은 그대로 나두면 그 생명력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인기 연예인인데 과잉충성자들의 알아서 기는 행태 때문에 정권의 임기와 함께 인기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고성국이야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대놓고 박근혜 찬양을 떠들어대던 자였기에, 그의 K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발탁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은지원의 경우는 자칫 ‘독이 든 성배’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했습니다. 정치언어의 선택에서 보다 서민적이고 상식적일 때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하면서도 자신이 원했던 일들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나쁜 선례들이 양산됐습니까? 국격 상승은커녕 도덕적으로 완벽히 타락한 측근과 친척, 고위인사들의 비리, 탈법, 불법 때문에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이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부디 남은 임기 동안에는 정책의 방향과 실현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정치언어 선택에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그것이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청와대를 나올 수 있는 유력한 길 중에 하나입니다. 최고 지도자가 정도로 가면, 노예해방을 성사시킨 링컨처럼 마키아벨리식의 정치 술수들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라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의 폭을 넓히고 다양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일은 아무리 투명하게 만든다 해도 여론을 굴절시키는 미세물질들은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베일을 자주 걷을수록 여론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 또한 대통령이 수십 겹의 베일 뒤에 있을 때 가장 불안합니다. 예측 불가능성 만큼 두려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보 때의 박근혜는 대단히 명료하게 말했는데 지금은 다르네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고 하는데, 설마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