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초대형급 사건들이 터지고 있지만 원세훈의 지시로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만큼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특권층들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성접대 사건도 썩을 대로 썩은 고위관료들의 탈선에 관한 것이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처럼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의 핵심참모였던 원세훈은 이명박 임기 내내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내정치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왔음이 이번 ‘국정원녀 댓글사건’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에 ‘집단적 성폭력’에 운운했던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보수적 언론들까지 민주통합당의 행태를 일방적으로 비난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이 불러올 파장이 얼마나 클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 경찰의 수사가이드 라인 설정을 대선 후보 토론에서
민주당의 국정원녀가 댓글을 올리는 장소로 지목해 오피스텔을 점거했을 때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비판을 가했습니다. 대선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향해 성폭력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경찰의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설정해버렸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국정원녀는 피의자라고 했지만 그 발언도 언론들에 의해 난타를 당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국정원 내부 자료를 넘겨받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박지원 의원이 여론의 향배에 따라 자신도 증거가 부족한 이 사건에 말려들었다 하면서 꼬리를 내린 것입니다. 대선의 결과를 바꿀 수 있었던 이 사건은 박근혜 후보의 강공과 보수화 메커니즘에 의해서 경찰의 심야 수사 중간발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로 변질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문재인 후보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다
경찰의 발표로 민주당의 행태가 집단에 의한 성폭력에 준하는 범죄로 뒤바뀌면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상대 후보가 여성인 박근혜여서 이 파장은 생각보다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과정에서 십알단 등 새누리당 관련자들의 여론조작 행위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후로는 포털 등 인터넷 토론사이트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을 비난하는 알바성 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 거대한 흐름에 부동층의 여론이 문재인 후보에게서 이탈하는 조사결과들이 다투어 발표되었습니다. 대선의 승부령이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버린 보수화 메커니즘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상파
최근에 민주당 진선미 의원의 폭로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원세훈 원장의 지시로 지속적으로,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모든 언론들은 이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원세훈 원장의 출국 사실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가는 데도 지상파는 이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이버 테러를 당한 방송사와 금융권의 전산망 마비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몰고 간 것도 어떻게 보면 국정원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시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G2의 일원인 중국에 대한 외교적 결례는 얼마나 많은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예상불가의 상황입니다.
▲ 북한에게도 도발의 여지를 남겼다
사이버 테러에 대한 말도 안 되는 해프닝 때문에 연일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는 북한에게도 도발의 여지를 준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이번 사이버 테러의 주체로 북한을 지목했으니 북한으로서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도 문제의 심각성이 어디까지 튈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만일 사이버 테러의 주체가 북한이었다면 이번 사건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국정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제는 희석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사태가 재현되는 것입니다.
헌데 지상파와 YTN 등은 이에 대해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질타했을 뿐 여전히 북한 소행이라는 가능성을 남겨두기에 급급합니다. 물론 이번 사건의 주체가 북한일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버 테러에 대한 대응방식의 천편일률성에서 공안정국을 극대화함으로써 국정원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가 여기저기서 드러났습니다.
▲ 원세훈의 출국도 보도하지 않는다
국기문란이자 국가내란죄에 해당할 수도 있는 사건의 수장인 원세훈 원장이 출국한다는 사실이 인터넷과 SNS를 점령하다시피 하는 지금, 유독 지상파와 YTN 등은 이에 대해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사건 같았으면 검찰에게 당장 출국금지를 하라고 아우성을 쳤을 일인데 이번에는 조용해도 너무나 조용합니다.
게다가 지상파 시사토론에서 이 사건의 엄중함에 대해서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파장이 커질 만하자 내사 단계였던 경찰 수사가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더니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모든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임기를 보장한다던 경찰총장이 경질된 것도 이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김병관 내정자의 자진사태는 초읽기였을 뿐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는데, 청와대를 향해서 꿀 먹은 벙어리로 전락한 새누리당이 이례적으로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담당하고 있는 민정수석실에 대해서 비판을 가했습니다. 이 문제를 당분간 고위공직자의 성접대 사건과 정국의 쌍끌이 이슈의 부각시켜 국정원 정치개입에 쏠릴 여론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 민주당이 나서야 한다
대선 패배로 존재의 근거마저 흔들리고 있는 민주당의 침묵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헌법정신에도 반하는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에 매달릴 틈도 없는 민주당이 기사회생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반정치적 행태입니다.
문재인 의원과 진성 친노들의 행동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는 그들이 얼마나 ‘충성스런 야당’이며 보수화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민주장 내 비주류들의 완벽한 침묵은 도를 넘어서 반정치에 해당할 지경입니다. 그들에게는 당권 장악 이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가 봅니다.
민주당이 나서야 합니다. 지난 대선의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해도 다시는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초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의원을 지지한 48%의 국민들은 이미 준비를 마쳤는데 제1야당이자 진보의 제도권 맏형으로써 민주당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도 흐지부지 종지부를 찍고 말 것입니다.
▲ 국민들은 알고 싶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지 간에 국민들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에 대해 그 전말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승자 쪽에선 자신의 선택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패자 쪽에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번 국정원 사건의 전모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합니다.
이는 또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며 첨예화된 내부의 갈등을 줄이고 화합으로 갈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은 숨길 수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순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단 한 건의 비밀서류도 남기지 않는 만행을 저지른 것도 부정선거에 개입한 정부 기관들의 기록들을 모조리 소멸시킨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은 철저하게 조사돼 후대의 교훈으로 남겨야 합니다. 아울러 아직도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집권 한 달도 안 됐는데 마치 1년은 된 듯한 국정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게도 반면교사로 작용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으로 대선 결과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개입은 간접 영향을 줄 뿐 선거 자체가 부정이라는 결론까지 이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부의 정당성은 선거로 부여받는 것이기에 선거 자체에 부정 의혹이 여지가 있다면 명명백백 밝혀서 문제의 근원을 어떤 식으로라도 정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의 5년 동안 대한민국은 이명박 정권 5년보다 더한 편 가르기로 시끄럽지 않을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공영방송인 KBS와 MBC, 그에 준하는 SBS 등의 지상파들이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지상파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국민적 탄핵에 직면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국민은 알고 싶습니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 지난 대선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해.
여러분의 추천이 지상파를 움직이고 민주당을 깨어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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