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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3 00:09
세상이 썩을 대로 썩은 것은 알았다. 세상은 공정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것은 오래 전에 알았다. 가장 지저분한 뒷거래(성접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가 이어지기로 유명한 건설업계 최고 기업의 회장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에 올랐으니 나라 전체가 어느 정도 썩을 것은 예상했었다. 국민들도 그의 도덕성은 상관하지 않고 잘 살게만 해달라고 뽑았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상식과 원칙이 죽어버린 정권 하에서 동방예의지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 타락할 것은 예상했기에 전 정권의 비리들 중 성 관련 사건들이 터져 나올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도덕적이 아닌 도둑적으로 완벽했던 정권이었으니 기상천외하고 추악한 비리 사건들도 터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썩은 줄은 몰랐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에 법무부 실세 차관으로 임명된 자가 성접대 논란 때문에 하차하고, 모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 현역 의원 3명도 성접대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필로폰까지 복용시켰다니 가히 막장 중의 막장이다.
참여정부 시절 신정아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깜도 안 되는 로맨스에 불과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현미경 보도를 했던 언론들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체 어디까지 떨어져야 만족할 것인가? 최소한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인 양식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찌 이리도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전직 경찰총창이었던 허준영은 자신이 이번 성접대와 관련이 있는 것을 밝혀지면 할복자살을 하겠단다. 그 말 반드시 지켜주기를 바란다. 같은 경찰총장 출신인 조현오의 행태를 보면 별로 미덥지도 않지만 제발 추잡한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런 파렴치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써 느끼는 자괴감이 너무 크다.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성이라는 것이 억압되기 시작한 것은 플라톤에서 시작돼 기독교를 거쳐 부르주아들이 이어받았으니, 인류의 문명사가 성적 억압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칠 것은 없기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성적 개방은 탓할 일이 아니다. 예수의 부활을 함께 했던 사람이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 아닌가?
하지만 성적 취향의 자율성과 책임성의 조화가 막장으로 치닫는 것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권이 개입된 성접대는 아동성폭행에 버금갈 정도로 비열한 성폭력이자 반인륜적 범죄다. 거기에 마약까지 동원됐다면 그 죄질의 정도가 도를 넘었다. 대한민국 특권층의 자화상이 이 정도로 타락했단 말인가?
압축성장의 결과가 전 국가적 타락이라면 차라리 압축성장을 반납하고 싶다. 불평등과 빈곤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선진화의 결과라면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하련다. 현장을 무시하는 재무와 회계 위주의 기업들이 보여주는 안전 불감증과 솜방망이 처벌, 관련 법률과 제도의 의도적인 방기,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저출산과 노인 빈곤률, 학교 폭력의 만성화와 서열주의 등등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나?
오마르 카이암의 탄식처럼 “이 세상을 완전히 분해해서 다시 조립할 수 있다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한민국을 분해해버리리라. 그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련다. 허나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시간이고 공간이지 않은가?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너무나 많은 것을 투자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정말 우리는 과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족속으로 전락했단 말인가? 집단적 망각에 기대, 자신의 이익만 중요해서 걸리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자위하게 됐단 말인가? 물질만능과 출세지상주의에 빠져 비리와 반칙을 서슴지 않는 짐승으로 전락했단 말인가?
이것도 지나가리라, 그렇게 치부하고 말 것인가? 더 이상은 안 된다. 필요하다면 대한민국 전체를 분해하자. 그리고 다시 출발하자. 비록 그것이 완벽한 폐허에서의 출발이라도 이런 식의 대한민국이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환골탈태가 필요한 것은 민주당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환부를 도려내고 치부를 잘라내자.
다시 시작하자.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도 했다. 필요하다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자. 각자의 자리에서,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내 비록 잘 살지는 못했으나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 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